기자명 엄선우 (sunshine6833@skkuw.com)

여러 곳에서 소리 날수록 입체음향 효과 높아 

각 환경에 최적화된 입체음향을 제공하는 기술로 나아가  

메가박스의 돌비 시네마나 CGV의 soundX 같은 특별 상영관은 일반 상영관보다 생생한 음향을 들려줘 더욱 영화에 몰입하게 해준다. 최승범(건설환경 22) 학우는 *ASMR 콘텐츠를 보고 “귀를 만지는 느낌이 느껴지지 않는데도 소리를 들으니 귀가 간지러운 느낌이 들어 생소했다”며 그 후기를 전했다. 이는 모두 입체음향 덕분이다. 입체음향은 어떻게 내가 영화 속 한 장면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혹은 실제로 내 귀에다 무언가를 하는 것처럼 소리를 생생하게 들려주는 것일까? 

소리를 배치하는 입체음향 기술
입체음향이란 마치 내가 음원이 발생한 공간에 있는 것처럼 방향감과 공간감을 지각할 수 있는 소리다. 그리고 이를 구현하는 기술을 입체음향 기술이라고 한다. 입체음향 기술은 재생하는 스피커의 개수를 늘리는 하드웨어적 방법과 스피커의 개수보다 더 많은 곳에서 가상으로 소리가 들리도록 하는 소프트웨어적 방법으로 나뉜다. 게임용 헤드셋으로 많이 쓰이는 리얼 헤드셋에는 스피커의 개수를 늘린 하드웨어적 방법이 적용됐다. 리얼 헤드셋은 스피커 역할을 하는 드라이버 유닛을 여러 개 삽입해 소리가 여러 방향에서 들리도록 한다. 7채널 리얼 헤드셋의 경우 드라이버 유닛을 7개 설치한 것이다. 리얼 헤드셋은 스피커의 개수가 많아 무겁지만 소리의 방향을 더욱 명확하게 알 수 있어 게임용 헤드셋으로 인기가 많다.

실제 스피커의 개수가 많아야만 입체음향의 구현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가상 헤드셋의 경우 스피커의 개수는 양옆 두 개뿐이지만 소프트웨어적 방법으로 음향이 여러 곳에서 들리는 것처럼 만든다. 가상으로 공간을 만들어 각 위치에서 소리가 들릴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기존에는 스피커의 개수를 늘려 다양한 위치에 배치하는 하드웨어적 방법을 많이 썼으나, 스피커의 개수를 계속 늘리기에는 물리적 한계가 있기에 가상 헤드셋처럼 소프트웨어적 방식이 발전하기 시작했다. 공연장이나 영화관처럼 공간이 넓은 곳에서는 하드웨어적 방식과 소프트웨어적 방식을 함께 사용해 입체음향 효과를 극대화한다. 

스피커로 둘러싸 생생한 음향을 들려주는 영화관
영화관은 하드웨어적 방법을 이용해 입체음향을 구현하는 대표적인 장소다. 현실에서 소리가 모든 방향에서 들리는 것처럼, 영화관은 여러 대의 스피커가 앞뒤 좌우로 관람객을 둘러싸며 영화의 현실감을 높인다. 영화관에서는 5.1 채널이 주로 쓰인다. 이는 앞쪽 중앙에 한 개, 좌우의 전방과 후방에 1개씩 총 5개의 스피커를 놓는 방식이다. 여기서 0.1 채널은 보통의 스피커들이 재생하기 힘든 낮은 주파수만 재생하는 서브 우퍼를 뜻하며, 서브 우퍼까지 계산하면 스피커의 개수는 총 6개다. 앞쪽 중앙의 센터 스피커에서는 등장인물들의 대사를 재생한다. 나머지 스피커들도 각자의 위치에 맞는 소리를 재생하는데, 좌우의 전방 스피커에서는 음악 및 전방의 효과음, 그리고 좌우의 후방 스피커에서는 후방의 효과음을 재생한다.

5.1채널 스피커 배치. ⓒ제닉스 공식 블로그 캡처
5.1채널 스피커 배치. ⓒ제닉스 공식 블로그 캡처

스피커들이 서로 협업하며 입체음향을 구현하기도 한다. 영화에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총을 쏘는 장면이 나온다면, 총알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지나가는 듯한 소리가 들려야 한다. 대림대 방송음향기술과 김범수 교수는 “소리를 왼쪽 스피커에 틀고 잠시 후 오른쪽 스피커에서 틀면 뇌는 왼쪽에서 온 소리를 기억하고 있다가 오른쪽에서 똑같은 소리가 왔을 때 그 둘을 합성한다”며 “중간에는 스피커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뇌가 먼저 도착한 소리와 나중에 도착한 소리의 중간에서도 소리가 들린다고 착각하게 된다”고 전했다. 이렇게 시간을 지연해서 틀거나 음량을 조절하는 방법을 통해 청취자는 실제로 소리가 들리지 않는 곳에서도 소리가 들리는 것처럼 느낀다. 설치된 스피커가 많을수록 표현은 섬세해진다. 이처럼 영화관은 여러 대의 스피커를 통해 다채롭게 입체음향을 구현한다.

ASMR에는 머리전달함수의 원리가 숨어있다
리얼 헤드셋이나 영화관은 스피커를 많이 설치하는 하드웨어적 방법으로 입체음향을 구현했다. 하지만 사람들이 많이 사용하는 이어폰은 크기가 작아 스피커의 개수를 늘리기 쉽지 않다. 이에 이어폰에서는 주로 소프트웨어적 방법을 이용해 입체음향을 구현한다. 이어폰으로 입체음향을 구현하는 대표적인 방식은 바이노럴이다. 바이노럴이란 녹음 및 음향 편집 과정에서 머리나 귀의 모양이 미치는 영향을 음향에 반영하는 방식을 말한다. 사람 혹은 귀 모양의 마이크인 더미헤드 마이크로 음향을 녹음하는 방법이 대표적이며, 이 모습은 ASMR 콘텐츠에서 자주 볼 수 있다. 동아방송예술대 음향제작과 이수용 교수는 “더미헤드 마이크로 녹음을 하면 음향이 녹음 단계부터 머리나 귀의 모양이 미치는 영향을 받아 헤드셋이나 이어폰으로 들었을 때 음향이 입체적으로 들린다”고 말했다.

녹음 과정부터 음향에 머리나 귀의 모양이 미치는 영향을 반영하지 않더라도 해당 요소를 나중에 소프트웨어적으로 반영할 수 있다. 이때 사용되는 것이 머리전달함수다. 음향은 머리나 귀의 모양에 영향을 받아 굴절 또는 *회절돼 우리 귀에 들어온다. 머리전달함수란 말 그대로 사람의 머리, 즉 양 귀 고막으로 음향이 도달하는 경로에 대한 정보를 담은 데이터다. 플레이스테이션이나 온라인 게임의 설정을 보면 머리전달함수를 뜻하는 HRTF 활성화 여부를 선택할 수 있는 경우가 있다. 이는 입체감이 없는 음향에 머리전달함수를 적용해 입체음향을 구현하는 것이다. 머리전달함수는 소리가 울리지 않는 방에서 더미헤드 마이크 또는 피험자의 양 귀 안에 설치한 마이크에, 일정한 거리에서 다양한 각도로 음원의 위치를 바꿔가며 주파수를 보내는 방식으로 측정한다. 그러면 주파수는 더미헤드 또는 피험자의 어깨, 머리, 귓바퀴 등에 의해 굴절되고, 삽입된 마이크에 마이크까지의 도달 경로에 대한 정보가 녹음된다. 개인마다 이러한 방식으로 자신만의 머리전달함수를 측정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따라서 2020년에 출시된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 PS5는 머리전달함수 샘플 5개를 제공해 자신에게 더 생생하게 들리는 머리전달함수를 선택하도록 했다. 또한 지난해 9월에 출시된 에어팟 프로2는 얼굴 정면과 양 귀를 조금씩 돌려가며 촬영하면 휴대폰 설정이 자동으로 이를 적용하는 ‘개인 맞춤형 공간 음향 설정 기능’을 추가하기도 했다.

더미헤드 마이크. ⓒ유튜브 채널 Vito ASMR 캡처
더미헤드 마이크. ⓒ유튜브 채널 Vito ASMR 캡처

점점 편하게 다가오는 입체음향 
최근 입체음향은 어떤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을까? 이 교수는 “미디어 기기의 사용에는 편리함이 매우 중요한 요소”라며 “앞으로도 입체음향은 더욱 간편하게 즐길 수 있는 방법과 도구를 개발하는 방향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전했다. 돌비사가 개발한 ‘돌비 애트모스’는 기존에 앞뒤 좌우에서만 구현되던 입체음향이 공간의 위아래에서도 구현되도록 한 기술이다. 가상의 공간 안에 개별적으로 음향을 위치시켜 스피커가 없는 위아래 공간에서도 음향이 들리게 했다. 이전에는 돌비 애트모스를 영화관에서만 사용 가능했으나, 지금은 가정에서도 구입해 TV나 노트북 등에 설치하면 이용할 수 있다. 집에서도 간편하게 영화관 같은 입체음향을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돌비 애트모스는 각자 가진 기기의 채널 수에 맞게 음향을 입체적으로 만들어주지만, 호환되는 재생 기기가 별도로 필요하다는 단점이 있다. 한편, 올해 넷플릭스가 도입한 ‘앰비오 2채널 공간 음향’은 2채널 환경에 한해 별도의 장치 없이 간편하게 입체음향을 구현해준다. 앰비오 2채널 공간 음향은 여러 채널로 이뤄진 입체음향을 2채널 음향으로 변환한 후 공간감을 더해주는 기술이다. 따라서 별도의 서라운드 스피커 장비를 갖추지 않아도 기존의 2채널 기기, 즉 노트북, 헤드셋, 이어폰 등에 적합한 입체음향을 제공할 수 있고, 현재 ‘기묘한 이야기’ ‘웬즈데이’ 등 인기작을 포함한 700편 이상의 넷플릭스 콘텐츠에 적용돼 있다. 이 교수는 “입체음향은 최근 각광받는 메타버스나 가상현실의 핵심적인 기술이므로 이에 대한 진보는 꾸준히 이뤄질 것”이라고 전했다. 김 교수 또한 “문화가 바뀌며 음향도 개인 기기 위주로 즐기게 됐다”며 “이어폰 등 개인 기기에서의 입체 음향 기술도 더욱 발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나만의 맞춤 입체음향 시스템을 통해 더욱 생생하게 콘텐츠를 즐기면서 앞으로 다가올 입체음향의 발전을 기대해보자.

 

◆ASMR=자율감각쾌감반응(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의 약자. 청각의 자극을 통한 심리적 안정이나 감각적 경험을 뜻함. 

◆회절=파동이 장애물 뒤쪽으로 돌아 들어가는 현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