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권위상 기자 (wisang03@skkuw.com)

자과캠 만남 - 이충기(건축공학 80) 동문

변두리에 살던 시골 소년에서 인정받는 건축사로

좋은 건축은 사람에 대한 이해가 전제돼야

인왕산 중턱에는 서울시 전경이 훤히 보이는 통유리 건축물인 ‘초소책방’이 있다. 이곳은 시민들이 소통하며 사색하는 힐링 공간으로 여겨진다. 이충기(건축공학 80) 동문은 바로 이 건물의 설계자다. 이 동문은 서울시립대 건축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책장 속 빼곡한 책과 붓글씨가 눈에 띄는 그의 연구실에서 이야기를 들어봤다.

동네의 구조를 꿰뚫고 있던 아이
유년 시절을 묻자 이 동문은 과거를 회상하며 말했다. “깜짝 놀랄만한 이야기인데, 중학교 3학년 때가 돼서야 제가 살던 마을에 전기가 들어왔어요. 그 정도로 낙후된 시골이었죠.” 이 동문이 자란 대구 변두리의 시골은 공간 구조를 익히기 좋은 환경이었다. “제가 살던 시골집은 한옥이었어요. *뜨락을 거쳐 대청마루에 올라가는 구조의 차이와 앞마당과 바깥마당의 차이 등의 공간적 위계질서를 느끼며 성장했습니다. 제가 자란 환경 자체가 건축적이었던 것 같아요.” 비단 주거 환경뿐 아니라 친구들과의 놀이 역시 이 동문의 공간 인식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의병 놀이’라는 마을 전체를 대상으로 한 숨바꼭질 놀이가 있었어요. 찾는 사람은 순사가 되고 숨는 사람은 의병이 돼서 마을 곳곳에 숨어요. 그런 놀이를 자주 하다 보니 집집의 구조를 다 알게 됐죠. 건축사가 되고 나서도 마을의 구조가 모두 기억 나서 마을 지도를 그려보기도 했어요.”
 

차분하고 성실하게 임했던 대학 생활
어릴 적부터 건축의 요소를 찾기 쉬운 환경에서 자란 이 동문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우리 학교 건축공학과에 진학했다. 이 동문은 주어진 일을 늘 최선을 다해 완수하자는 다짐으로 대학 생활에 임했다. “대학에 입학해 전공 수업을 들으며 제 머리가 좋은 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잘 놀러 다니는 성격도 아니었기에 성실하게 수업을 들었죠. 덕분에 상위권의 학과 성적을 받을 수 있었어요.” 이 동문은 단순한 학업뿐만 아니라 내면의 성장을 위해서도 노력했다. 그는 연구실의 책장을 가리키며 가장 대표적인 노력으로 독서를 꼽았다. “대학교 때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어요. 하루 종일 멍하니 있는 날도 있었죠. 그때 철학 분야의 이론 등을 이해하려고 『데미안』과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같은 고전소설을 많이 읽었어요. 그 과정을 통해 스스로 생각하고 계획하고 이뤄내는 과정을 훈련했다고 생각해요.” 

이 동문은 대학 시절에 흥미롭게 들은 과목으로 건축의 역사를 꼽았다. 반면 싫어했던 과목을 묻자 수학 공식을 사용하는 건축구조를 꼽았다. “저는 어릴 적부터 문학과 예술을 좋아했고 수학을 싫어해서 대학교 전공을 선택할 때도 건축공학과가 수학을 적게 사용할 것으로 예상하며 골랐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설계에는 수학이 많이 적용되더라고요. 그래서 공식을 활용해 철근과 콘크리트의 역학을 계산하는 전공과목들을 싫어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동문은 성실하게 대학 생활을 하며 균형 있게 지식을 습득했다. “좋은 교수님들을 만난 덕분에 게으름 피우지 않고 설계와 이론 등의 전공과목을 균형 있게 잘 배웠어요. 내실 있게 공부한 덕분에 바로 취업하기 충분한 상태로 졸업했다고 생각해요.” 이에 더해 그는 친구들과 함께 설계 모임을 만들어 활동하기도 했다. “학업을 위해 친구들과 스터디 그룹을 만들고 빈 강의실에 모여 공모전을 준비하곤 했어요. 또한 서로 자료를 공유하며 건축을 주제로 한 토론을 진행하기도 했죠.” 
 

모든 장소에는 사람의 기억이 존재한다고 믿는 건축사
졸업 직후 입대를 한 이 동문은 전역 후 곧바로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과거에는 실무 경험을 5년 이상 해야 건축사 시험 응시 자격을 줬어요. 그래서 바로 설계 사무실에 취업했죠.” 그렇게 5년의 실무 경험을 마친 이 동문은 건축사 시험에 응시해 합격했다. 이후 이 동문은 설계 사무실을 차리고 20년 이상 운영하며 본인만의 건축 철학을 세웠다. “건축은 사람을 위해 존재해요. 사람을 위한 설계란 그 사람의 과거를 알고 다가올 미래를 예측해야 함을 의미하죠.” 이에 더해 그의 철학에 따르면 건축은 사람의 삶을 해석하고 규정하는 것까지를 의미한다. “소설을 쓰는 사람은 대상의 삶을 글로 표현하지만 건축사는 그 글을 건물에 담아요. 건물 속에 대상의 삶에 대한 생각까지 담는 거죠. 공간 안에서 이뤄질 행위 자체를 상상해 만들어요. 건축은 사람의 삶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하고 구체화하는 일이에요.” 그래서인지 이 동문은 건축사 일을 하며 가장 보람을 느낄 때가 언제냐는 질문에 건축주가 만족했을 때라고 답했다. “건축사는 건축주와 대화를 통해 그의 삶과 생각을 완전히 이해해야 해요. 그래서 건축주가 입주하고 행복해하면 제 기분도 좋죠. 건축주의 삶과 생각에 대한 제 해석이 맞았다는 얘기니까요.”

이 동문이 초창기 설계한 ‘가나안 교회’는 그의 철학을 엿볼 수 있는 대표적인 건물이다. 가나안 교회의 외부 계단은 폭이 6m로 설계 당시의 다른 교회와 비교해 월등히 넓다. 여기에도 사람에 대한 이 동문의 예측과 이해가 담겨있다. “옛날 교회는 보통 계단이 매우 좁아서 예배가 끝난 후 나가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어요. 그래서 저는 계단에서 사람들끼리 앉아서 얘기도 하고 휴식도 취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가나안 교회의 계단이 사람들에게 그런 공간으로 인식되기를 바랐죠.” 그의 이러한 노력이 담긴 가나안 교회는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01년 한국건축문화대상 본상을 받았다.

이 동문의 건축 철학은 민간 분야에서 나아가 공적 분야로까지 이어졌다. 그는 업적을 인정받아 서울특별시 건축정책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건축정책위원회에서는 서울시의 건축과 관련된 도시 공간에 대한 정책을 만든다. 이 과정에서도 이 동문은 사람을 가장 주요하게 생각했다. “공적인 공간들을 어떻게 시민들이 향유할 수 있는 장소로 만들 것인가에 대한 계획을 미리 세웠어요. 그렇게 만든 정책을 토대로 좋은 건축물이 생산될 수 있도록 노력했죠.”
 

인왕산 속 숨겨진 건물을 재생하다
이 동문은 건물을 리모델링하는 일과 공공건물의 건축 등에도 관심을 보였다. “건축사 자체가 원래 사회적이고 공익적인 직업이에요. 설계를 잘못하면 수십 명의 목숨이 위험해질 수도 있기에 공공의 안전을 늘 생각할 수밖에 없죠. 따라서 재생과 공공디자인에 관한 역할까지도 요구된다고 생각해요.”

인왕산 초소책방도 본래 경찰초소로 사용되던 건물을 리모델링 건축한 대표적인 건물이다. 초소책방에는 기존 경찰초소에 사용되던 콘크리트 기둥이 그대로 남겨져 있다. 이는 건물 분석을 중시하는 이 동문의 태도가 반영된 결과다. “저는 건물을 사람처럼 봐요. 사람의 겉모습뿐만 아니라 눈빛이나 말하는 태도에서 그 사람의 심성을 보게 되잖아요. 건물도 잘 들여다보면 살아온 시간이 보여요. 그러다 보니 옛날 것 중 남겨두고 싶은 것이 생긴다거나 새로운 것을 더하고 싶어진다는 생각이 떠오르는 거죠.” 이 동문은 이처럼 설계 시 건물을 분석하고 관련 자료를 조사하는 것을 ‘인풋’이라고 부르며 그 의미를 강조했다. “장소의 역사, 문화, 지나간 시간 등 인문학적 요소뿐만 아니라 자연환경에 관한 요소들까지 모두 조사해요. 이렇게 관심을 가지면 그중에서 건축을 설계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길 만한 요소들이 나오는 거죠.” 서울시 전경이 보이는 통유리창 역시 이 동문의 인풋이 전제된 설계를 통해 건물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인왕산 중턱의 산책로와 접해있는 초소책방 건물은 과거 초소로 사용될 때는 시민들의 시야로부터 차단된 매우 폐쇄적인 공간이었다. 이는 경찰이나 군인과 시민들이 만나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이 동문은 통창을 내어 개방감을 더했다. “건물의 위치가 서울 시내가 모두 보이는 좋은 곳이었어요. 이에 유리를 개방감 있게 둘러싸 전망이 보이게끔 설계했죠.” 한편 이 동문은 초소책방을 방문한 사람들이 자신만의 감정을 느끼면 좋겠다고 답했다. “건물 내에서 특정한 의미를 찾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은 각자 삶의 경험에 따라 공간의 위치를 보고 느끼는 것이 달라지죠. 그래서 제가 설계한 건물에서는 특정한 의도를 느끼기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고 각자만의 느낌을 발견했으면 좋겠어요.” 초소책방은 2021년 서울시 건축상 우수상을 받아 뛰어난 공공시설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기도 했다.

이 동문은 초소책방을 보수를 받지 않는 재능기부 방식으로 설계했다. “공익적 역할을 늘 해왔던 덕분에 재능기부도 기꺼이 했죠. 좋은 선례를 만들어 주고픈 마음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도시재생에 기여한 점을 인정받아 이 동문은 서울시 명예시장에 오르기도 했다. 서울시 명예시장은 특정 분야에 대한 시민들의 다양한 의견을 서울시에 전달하기에 적합한 인물에게 주어지는 명예직이다. 


후배들아, 계속 걸어가라.
이 동문은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극복하는 방안으로 ‘새로운 시작’을 말했다. “물을 엎었을 때 계속 탓하고 원망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아요. 빨리 잊어버린 후 곧바로 다시 물을 떠 와야 합니다. 이렇듯 어려움을 빨리 딛고 새롭게 시작하면 이전의 일들은 잊어버릴 수 있어요.” 이에 더해 이 동문은 사회로 나갈 후배들에게 가수 강산에의 노래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의 가사를 생각하라고 전했다. “이 노래는 어려운 길이라도 걸어가다 보면 언젠가 그 길을 감사하게 여길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해요. 길을 걸어가야 풀밭도 나오고 초원도 나와요. 걷지도 않고 가만히 앉아서 꽃을 찾을 수는 없어요. 조건을 따지지 않고 나아갈 때 온갖 기회들이 눈에 들어오는 거죠.” 마지막으로 이 동문은 도전을 두려워하지 말라고도 조언했다. “도전은 실패를 각오해야 하지만 대부분 실패가 두려워서 도전을 안 해요. 그 실패의 경험이 자기를 발전시킬 수 있어요. 그러니 대학 생활에서도 망설이지 말고 경험하고 도전하길 바랍니다.”

◆뜨락=집 내부에 가까이 딸린 뜰

사진ㅣ권위상 기자 wisang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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