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홍예원 기자 (nyaong127@skkuw.com)

재난 대응 매뉴얼 불분명하고 일부 자치단체 대응 역량 저조해

재발 방지 위해 수사와 별개로 전문적 재난 조사 필요

지난해 10월 참사 발생 4시간 전부터 접수된 11번의 신고에도 인파 통제가 이뤄지지 않아 159명이 사망하는 이태원 참사가 발생했다. 희생자의 유가족들은 지난달 진상 규명을 위한 특별조사위원회 설치 등의 내용을 담은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3일간 국회를 향해 삼보일배 시위를 벌였다. 과연 우리나라의 재난 관리와 재난 조사는 잘 이뤄지고 있을까?

재난 관리, 누가 어떻게 하나?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이하 재난안전법)에 따르면 재난은 국민의 생명·신체·재산과 국가에 피해를 줄 수 있는 것으로서 자연재난과 사회재난을 총칭한다. 자연재난은 자연현상에 의한 피해며, 사회재난은 화재나 교통사고 등에 의한 특정 규모 이상의 피해 등을 말한다. 재난안전법에 따르면 재난 관리는 △예방 △대비 △대응 △복구의 4단계로 구성된다. 예방은 재난 발생을 사전에 막거나 발생 위험을 줄이는 단계로 재난 방지 시설 설치가 대표적이다. 대비는 재난 관리 매뉴얼을 정비하고 이에 따라 훈련하는 등 재난 현장에서 대응하는 데 필요한 시스템과 인적·물적 자원을 준비하는 단계다. 이후 재난이 발생하면 대피 명령을 내리고 인명을 구조하는 등의 대응을 실시한다.

재난 관리는 △국가 전체를 관할하는 중앙행정기관 △시·도를 관할하는 광역자치단체 △시·군·구를 관할하는 기초자치단체 차원에서 이뤄진다. 각 차원에서 △재난 관리 시스템을 정비하는 안전관리위원회 △재난 대응을 총괄하는 재난안전대책본부 △재난 현장에서 인명을 구조하는 긴급구조통제단 등의 기구가 활동한다. 한국재난관리학회 문현철 부회장은 “재난 발생 시 최하위 단위인 기초자치단체가 가장 실질적인 재난관리를 수행한다”고 전했다. 


재난 관리 매뉴얼과 대응력에 한계 있어
재난 현장에서는 기본적으로 사전에 마련한 매뉴얼에 따라 대응한다. 그러나 일부 매뉴얼에는 특정 유형의 재난을 관리하는 권한이 다수 기관에 분배돼 있어 재난 관리가 비효율적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있다. 일례로 수해관리 매뉴얼에 따르면, 자치단체는 기상청의 기상예보와 환경부의 홍수예보를 통해 피해가 예상되면 대응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이에 강원대 방재전문대학원 AI소프트웨어학과 김병식 교수는 “이 경우 예보 권한이 한 기관에 통합돼 있을 때보다 자치단체가 예보를 처리하고 대응하는 시간이 길어져 비효율적”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해당 매뉴얼은 자치단체가 기상청과 환경부 중 어떤 기관의 예보를 대응의 근거로 삼아야 하는지 명시하지 않아 자치단체가 무엇을 근거로 대응했는지를 가려 대응에 관한 책임을 묻기 어렵다.

매뉴얼이 기관별 역할을 불명확하게 제시해 재난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기도 한다. 2020년 부산시 동구 지하차도 침수 사고 이후 행정안전부(이하 행안부)는 예방 차원에서 전국적으로 자동 차단시설 설치를 추진했다. 그러나 2021년 발표된 ‘도로터널 방재·환기시설 설치 및 관리지침’에서 터널 내 침수 사고 발생 시 국토교통부(이하 국토부)가 차단시설을 설치할 수 있다고 규정한 이후 행안부는 설치를 추진하지 않았다. 이에 국토부는 해당 관리지침이 대부분 화재 예방에 관한 내용이며 침수 사고는 행안부의 ‘지하공간 침수 방지를 위한 수방기준’에 따라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해 한동안 차단시설 설치가 중단되기도 했다.

한편 매뉴얼이 필요한 모든 내용을 규정할 수는 없기에 자치단체장을 필두로 한 자치단체의 재난 대응 역량도 중요하다. 이에 대해 문 부회장은 “자치단체장이 공직 경험이 없어 재난 관리 매뉴얼을 잘 모르는 경우가 많고 대응 시설이나 장비를 우선시하며 대응력을 간과하는 등의 이유로 일부 자치단체의 재난 대응 역량이 저조하다”고 지적했다. 자치단체의 재난 대응 역량에 대한 점검이 없는 점도 대응 역량을 저조하게 한다. 전문가들은 지난 7월 집중호우 당시 청주시에서 지하차도 침수로 14명이 사망한 참사에서도 자치단체의 부족한 재난 대응 역량이 드러났다고 분석했다. 참사 발생 전 여러 번의 홍수경보와 차량통제 명령이 내려졌지만 자치단체가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또한 자치단체의 재난 관리 매뉴얼이 재난 현장에서 사용하기 적합한지 점검할 필요도 있다. 문 부회장은 “자치단체는 관할 지역의 구체적 사정을 반영해 중앙행정기관의 매뉴얼을 재난 현장에서 적용할 수 있게 구체화해야 한다”며 “그러나 중앙행정기관이 제시한 추상적인 매뉴얼을 그대로 적용해 재난 대응력이 낮은 자치단체가 많다”고 설명했다. 
 

자동 차단시설이 설치되지 않은 오송 참사 현장.  ⓒ국민일보 캡처
자동 차단시설이 설치되지 않은 오송 참사 현장.  ⓒ국민일보 캡처
지하차도 침수 방지 자동 차단시설이 설치된 모습. ⓒ동아일보 캡처
지하차도 침수 방지 자동 차단시설이 설치된 모습. ⓒ동아일보 캡처

재난 이후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 필요해
재난이 발생하면 원인을 조사하고 이를 바탕으로 유사한 사고를 방지하려는 노력이 이어져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인명피해를 낳은 재난은 사망사건으로 분류돼 대체로 경·검찰 수사를 통해 재난의 원인을 규명했다. 경·검찰 수사는 재난의 인명피해에 관해 개인이 지는 법적 책임을 규명한다.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박상은 조사관은 “법적 책임이 부과되는 개인은 대부분 재난 현장에서 대응을 수행한 말단”이라며 “재난의 근본적 원인은 불명확한 매뉴얼이나 자치단체장의 저조한 대응력 같은 구조적 요인이 대부분이지만 경·검찰 수사만으로는 이러한 원인을 규명하고 개선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수사의 한계를 인지한 유가족과 전문가들은 재난이 발생할 때마다 경·검찰 수사와 별개로 재난의 근본적 원인을 규명하는 재난 조사가 실시돼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박 조사관은 “전문적 재난 조사에 대한 사회적 경험과 능력이 부족하고 합의된 조사 방법도 없다”며 “조사 기구를 구성해도 진상 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경·검찰 수사로 회귀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또한 재난안전법 시행령은 재난에 대한 수사나 재판이 진행 중일 경우 원인 조사를 별도로 실시하지 않을 수 있으므로 재난 조사를 의무화하지 않고 있다.
 

재난 관리, 어떻게 개선해야 할까? 
재난 관리 기관의 권한과 역할을 명확히 제시해 기관 간 책임공방에 의해 재난 관리 수행이 지연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재난 유형별 재난 관리 총괄 기관을 일원화할 필요가 있다. 김 교수는 “재난 발생 후 짧은 골든타임 내에 재난 관리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일원화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현재 재난안전법에 따라 매년 자치단체가 실시하는 재난 대응 훈련에서 매뉴얼 개선이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문 교수는 “훈련을 통해 대응력을 강화하고, 매뉴얼에 필요한 사항을 추가하거나 기관별로 불명확하게 규정된 역할을 분명하게 합의하는 등 매뉴얼의 한계를 찾아 개선해야 한다”고 전했다. 이에 더해 행안부가 매년 시행하는 자치단체의 매뉴얼에 대한 점검도 실효성이 강화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마지막으로 자치단체에 대한 꾸준한 재난 관리 교육을 통해 자치단체의 책임감과 전문성을 향상해야 한다. 

더불어 재난 조사의 방법과 조사위원회 구성에 대한 개선 논의도 필요하다. 재난 조사는 해당 재난 관련 전문가에 의해 수행돼 신뢰성과 전문성이 보장돼야 한다. 또한 재난 조사가 경·검찰 수사의 영향을 받거나 수사로 회귀하지 않기 위해 수사 이전 또는 수사와 동시에 시작돼야 하고, 재난에 관한 증거와 기록이 유실되기 전에 되도록 빠르게 시작돼야 한다. 박 조사관은 “재난에 대해 수사뿐만 아니라 조사도 필요하다는 인식이 더 확산돼야 하며, 참사 이후 해당 재난 관련 전문가들로 재난 원인 조사 기구를 구성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돼야 한다”고 전했다.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이태원 참사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삼보일배하는 모습.  ⓒ여성신문 캡처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이태원 참사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삼보일배하는 모습.  ⓒ여성신문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