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홍예원 기자 (nyaong127@skkuw.com)

군 조직의 폐쇄성과 상명하복 문화는 군 사법절차의 공정성 방해해

군사법원법 개정에도 여전한 군 폐쇄성과 지휘명령 체제의 영향력

지난 7월 경상북도 예천군 내성천에서 해병대 1사단 채수근 상병은 호우피해 실종자를 수색하던 중 급류에 휩쓸려 사망했다. 해병대수사단 박정훈 대령은 조사 결과 해병대 1사단 임성근 사단장을 포함한 고위급 간부 8명에게 안전조치를 소홀히 한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가 있다고 판단했으나, 이후 국방부는 임 사단장 등을 제외한 2명의 혐의만 인정되도록 사건을 축소하고자 했다. 이렇게 군 사건이 조작되는 경우 이를 가능케 하는 군의 문화적 배경은 무엇이고, 군 사건 처리의 공정성을 개선하기 위해 군이 어떻게 노력해 왔는지 알아보자. 

각종 군 사건이 축소 및 은폐되는 경우 있어
군 복무를 마친 A학우는 “복무 당시 부대에서 선임이 후임에게 장기간 폭언해 후임이 이를 부대에 신고하자, 부대장이 따로 징계 절차를 진행하지 않고 당사자 간 금전적 합의를 주선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군에서 발생한 부조리 등 다양한 사건·사고들은 축소되거나 은폐되기도 한다. 법무법인 백상 강석민 변호사는 “군에서는 사건의 직접 가해자뿐만 아니라 해당 부대의 간부와 선임병들도 관리·감독 의무를 소홀히 한 책임을 질 수 있다”며 “이때 부대 전체가 책임을 지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며 자체적으로 사건을 축소하거나 은폐하는 분위기를 조장할 수도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부대 내 가혹행위로 인해 발생한 군 자살 사건이 사망자의 군 부적응이나 가족 사정 등 개인적 이유 탓으로 발표된 경우가 있다. 또한 2021년 공군 이예람 중사는 상관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해 부대에 여러 차례 신고했으나 부대 차원에서 이 중사를 회유하거나 협박하는 등의 2차 가해를 행하며 사건을 은폐하려 했고, 이 중사는 결국 극단적 선택에 이른 사건이 있었다. 

이에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전학선 교수는 “이처럼 군 사건이 조작되면 피해자가 정당한 보상이나 배상을 받기 어려운 것은 물론이며, 책임자를 공정하게 문책하지 못해 유사한 사고의 예방에 장애가 된다”고 지적했다. 이에 군 복무를 마친 B학우는 “2014년 윤 일병 사건과 임 병장 사건이 언론에 보도돼 논란이 되고 나서야 군인 처우가 개선됐던 것처럼, 군 사건이 은폐되면 근본적 해결을 위한 담론과 개선 노력이 이뤄지지 않는다”고 전했다. 

채 상병 사건에 대한 공정한 수사를 촉구해 5만 명의 동의를 얻은 국민 청원. ⓒ 국민동의청원 홈페이지 캡처
채 상병 사건에 대한 공정한 수사를 촉구해 5만 명의 동의를 얻은 국민 청원. ⓒ 국민동의청원 홈페이지 캡처

군의 폐쇄적인 상명하복 조직문화는 군 사건 조작으로 이어질 수도 있어
군에서 각종 사건이 조작될 수 있는 이유를 알기 위해선 군만이 가지는 특수한 집단문화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군은 국가의 안보를 위해 존재하는 조직이며 국민을 지키는 것을 최우선으로 한다. 특히 휴전 상태인 우리나라의 경우 언제든 전쟁이 재개될 수 있다는 위협이 존재해 군이 가지는 의미가 더욱 중요하다. 이에 군은 다른 조직들과 차별되는 특수성을 띠게 되는데, 대표적으로 높은 보안 수준과 상명하복의 지휘명령 체제가 있다. 군은 언론을 비롯한 민간에 군에 관련된 정보를 한정적으로 제공하고, 군인들은 효율적인 임무 수행을 위해 상급자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군 복무 중인 C학우는 “실제로 군에서는 상급자의 말이 곧 법”이라며 “상명하복 문화가 매우 엄격하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이러한 군의 특수성은 폐쇄적이고 강압적으로 작용하기도 하며, 이는 군 사법체제에도 적용돼 군에서 발생한 사건이 쉽게 축소되거나 은폐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든다. 또한 각 부대의 지휘관이 사실상 부대의 모든 사안에 개입할 수 있다는 점 역시 군 사법체제가 완벽한 독립성과 공정성을 갖추기 어렵게 한다. 강 변호사는 “군사경찰이 군 사건을 수사하기 위해 부대에 도착하기 전, 해당 부대 지휘관 재량으로 초동 조치를 수행할 수 있는 구조”라며 “이는 현장을 훼손하거나 수사를 방해하는 요소로 기능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기소와 재판을 맡는 군검사와 군판사 또한 군법무관으로서 상급자의 지휘명령 체계의 영향을 받는다는 점도 군 사법체제의 공정성을 해칠 수 있는 요인이다. 실제로 군사법원의 운영 방안을 규정하는 군사법원법에는 지휘관이 사법절차에 직접적으로 개입할 수 있게 하는 관할관 제도와 심판관 제도가 명시돼 있었다. 사건이 발생한 부대의 지휘관은 관할관 제도를 통해 부대 소속 군검찰부에 근무하는 군검사의 수사를 지휘할 수 있었고, 심판관 제도를 통해서는 군사법원의 재판에 직접 판사로 참여해 판결에 자신의 의도를 반영할 수 있었다.

채 상병 사건에 대한 군의 은폐 시도 정황. ⓒ mbc 스트레이트 방송 화면 캡처
채 상병 사건에 대한 군의 은폐 시도 정황. ⓒ mbc 스트레이트 방송 화면 캡처

2021년 군사법원법 개정으로 공정성 강화 시도해
2021년 이 중사의 사망사건을 계기로 군 사법체제의 공정성에 대한 논란이 일었다. 이에 국방부는 지휘관의 권한을 제한하고 군 사법체제의 폐쇄성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군사법원법을 개정해 군 사법체제의 공정성을 회복하고자 했다. 군 사법절차에 지휘관의 영향력이 작용할 수 있게 하는 관할관 제도와 심판관 제도를 비롯해 부대장의 구속영장 청구 승인권이 폐지됐다. 이에 전 교수는 “해당 제도들이 폐지돼 지휘관의 사법절차 개입 가능성이 상당히 작아졌다”고 말했다. 

한편 개정을 통해 군 사법체제의 폐쇄성을 완화하고자 시민사회의 견제 방안이 마련되기도 했다. 2심 재판은 군에 소속된 고등군사법원이 아닌 민간의 서울고등법원이 담당하게 됐다. 특히 군인이 저지른 △군 사망사건의 원인 범죄 △성범죄 △입대 전 범죄(이하 3대 군 범죄)에 대한 수사부터 재판까지의 전 사법절차를 민간에서 담당하게 된 점도 군 사법체제의 폐쇄성을 완화할 것으로 기대된다. 3대 군 범죄는 과거 해당 사건의 군 수사 및 재판에 대한 공정성 의혹이 제기된 것들이다. 법률사무소 호인 김경호 변호사는 “개정 전에는 1·2심 재판이 모두 군 기관에서 진행돼 2심에서 1심의 판결을 뒤집는 경우가 거의 없었지만 2심을 민간 법원이 담당하게 되면서 판결의 다양성을 확보하게 됐다”고 전했다.


다방면의 공정성 강화 노력 지속돼야
군 사법체제의 공정성을 확보해야 하는 이유는 군 사건 당사자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고 나아가 건강한 군 문화를 형성해 군 인권을 보장하기 위함이다. 이를 위해 국방부는 군사법원법을 개정해 군 사건이 발생한 부대의 지휘관이 사법절차에 미치는 영향력을 약화시키고 3대 군 범죄에 대한 전 사법절차를 민간에 이관했지만, 이 밖에도 다방면의 노력이 계속돼야 한다. 김 변호사는 “사법 업무를 담당하는 군법무관들의 역할도 중요하다”며 “군 사법체제뿐만 아니라 군법무관의 전문성 또한 개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군의 폐쇄성을 견제하기 위한 행정적 제도도 필요하다. 일례로 군 인권 보호관 제도를 통해 국가인권위원회 소속 군 인권 보호관이 부대를 방문해 조사하고 자료 제출 등을 요구할 수 있다. 군 인권 조사관은 긴급한 경우 부대를 불시에 방문해 군이 사건에 대한 증거를 은폐할 여지를 줄여 조사의 정확성을 높일 수 있으며, 조사 결과를 토대로 시정조치와 정책권고를 통해 인권침해를 예방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노력은 군 사법체제의 공정성 확대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까? A학우는 “보안을 이유로 군 사건을 외부에 알리지 않는 것을 정당화하는 군 폐쇄성이 계속되는 한 군 사건 은폐 및 조작 문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며 “군 사법체제를 폐지하고 민간에 위탁하는 것만이 해결책일 것 같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C학우는 “부대 내 핸드폰 사용이 허용되면서 부대 상황이 외부에 알려지기 쉬워졌으며 *마음의 편지 제도가 매우 활발히 운영돼 부대 내 부조리가 오래 존속하기도 어렵다”며 “부대가 점차 개방되고 있는 측면이 있어 천천히 기다리면 군 사건 은폐 및 조작 문제도 개선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전했다. 군 사법체제는 사법 정의와 군의 특수성을 모두 고려해야 하는 복잡한 과제를 안고 있으며, 군 인권과 국가안보 등 다양한 분야와 직결된다는 점에서 중요하게 다뤄질 필요가 있다. 강 변호사는 “결국 군인 개개인의 인권이 침해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를 위해 군 사법체제는 전시에 원활히 운영되기 위해 지휘명령 체제라는 군의 특수성을 어느 정도 반영하되, 다양한 기구의 견제와 제도적 보완을 통해 공정성을 강화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음의 편지 제도=부대 단위로 가혹행위 등에 대한 민원을 접수하고 개선하는 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