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의상 기자 (kimcloth1029@skkuw.com)

정신질환의 전문적 검토로 세심한 정책이 마련돼야

엄벌주의식 해결책보다 공동체의 응집성을 키우는 것이 중요해

“5일 오후 3시부터 밤 12시 사이 혜화역에서 칼부림하겠다” 지난 8월 4일 지역 생활 애플리케이션인 당근마켓에 올라온 글이다. 피의자 왕 씨는 8초만에 글을 지웠지만 이후 온라인 매체에 삽시간에 퍼져 인근 거주민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다. 김은진(통계 21) 학우는 “요즘 흉기 난동 사건이 전국적으로 많이 일어나는 것 같다”며 “우리 학교 역시 안전지대가 아니라고 생각하니 너무 무섭다”고 전했다.

흉기 난동, 전국으로 공포를 확산시키다
전국을 두려움에 빠뜨린 일련의 흉기 난동 사건의 시발점은 지난 7월 21일에 있었던 신림역 흉기 난동 사건이다. 피의자 조선 씨는 오후 2시경 신림역 4번 출구 근처에서 흉기 난동을 일으켜 남성 1명을 살해하고 3명을 다치게 했다. 조 씨는 치명상을 가할 수 있는 부분만을 집중적으로 공격했고 국민은 그 잔혹성에 크게 분노했다. 해당 사건 이후 분명한 동기 없이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흉기를 사용한 이상동기 범죄가 계속해서 발생했다. 지난 8월 3일 오후 5시경 피의자 최원종 씨가 자동차를 몰아 서현역 AK플라자 출입구 앞 인도의 시민들을 향해 돌진한 후, 차가 고장나자 백화점 내부로 들어가 행인 9명에게 상해를 입힌 서현역 흉기 난동 사건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흉기 난동의 그림자는 우리 학교 인사캠 인근까지 드리워졌다. 당근마켓에 흉기 난동 예고 글을 올린 왕 씨를 비롯해 지난 8월 17일 회칼을 들고 대학로를 배회하며 괴성을 지른 60대 남성 A씨의 사건은 우리 학교 인근 주민들에게 공포를 느끼게 했다. 혜화동에 거주하는 권예준(글경제 21) 학우는 “언제 어디서 흉기 난동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것이 가장 큰 공포”라며 “흉기 난동이 한창이었던 지난 8월에는 최대한 집 안에서 생활하려고 노력했다”고 전했다.

신림역 사건 피의자 조선 씨와 신림역 흉기 난동 피해 현장. ⓒ동아일보, 경향신문 캡처
신림역 사건 피의자 조선 씨와 신림역 흉기 난동 피해 현장. ⓒ동아일보, 경향신문 캡처

연쇄적 흉기 난동, 원인은 무엇인가
전문가들은 이러한 연쇄적 흉기 난동 사건에 다양한 원인이 존재한다고 밝혔다. 경상국립대 심리학과 윤상연 교수는 “일련의 흉기 난동 사건은 피의자들이 사회경제적 좌절 경험에서 축적된 분노를 표출한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신림역 흉기 난동 사건의 피의자 조 씨의 경우 △경제적 어려움 △도박 채무 △불우한 가정환경 △전과 등 다양한 좌절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경찰대 치안대학원 박정선 교수는 “반복되는 흉기 난동 사건과 산발적인 SNS 흉기 난동 예고 글들은 우리 사회 질서의 불안정성을 보여준다”며 “이렇듯 느슨해진 사회 질서가 연쇄적 흉기 난동에 영향을 줬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실제로 인터넷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에서 지난 7월 24일 한 익명의 사용자가 회칼과 함께 신림역에서 수십 명의 여성을 살해할 것이라 올린 것을 필두로 지난 8월 25일까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에 공식 조사된 흉기 난동 예고 글은 총 469건이었다. 해당 글들은 SNS를 거치며 빠르게 재확산돼 사람들의 공포와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한편 지난 7월 21일부터 지금까지 언론에 8건의 이상동기 흉기 난동 사건이 보도됐다. 그중 피의자가 정신질환을 겪은 적이 있던 사건은 5건에 달했다. 전문가에 따르면 정신질환자의 경우 자기조절 능력이 부족해 사회경제적 좌절과 스트레스를 겪으면 그 분노를 바로 행동으로 표출하기 때문에 범죄 충동에 더 쉽게 흔들린다. 경기대 범죄교정심리학전공 이수정 교수는 “이번 흉기 난동 사건의 피의자 중 상당수가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다”며 “범죄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정신질환에 대한 관리가 부족했던 점 역시 연이은 흉기 난동 사건을 조장했다”고 전했다. 실제로 서현역 흉기 난동 사건의 피의자 최 씨는 지난 2020년 *조현성 성격장애 진단을 받은 후 치료를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현성 성격장애나 조현병 환자의 경우 스스로 자신의 증상에 대해 인식하지 못해 꾸준한 치료 지원과 유인이 필요하다. 그러나 적절한 치료가 진행되지 않는 경우 환자의 조현병 증세는 이러한 범죄 행위로 이어질 수도 있다.

정신질환, 낙인을 넘어 진지한 고려가 필요해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지난 8월 23일 보건복지부는 환자의 동의와 관계없이 타인에 대한 위험성이 큰 정신질환자의 치료를 위한 강제 입원 과정에서 법원이 입원 여부를 결정하는 사법입원제의 도입을 논의 중이라 발표했다. 사법입원제가 적용되면 전문의나 가족이 치료를 주도했던 과거와 달리 법원이 의사의 소견과 환자의 환경 등을 고려해 입원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해당 제도는 강제 입원 치료 시 책임의 범위를 전문의와 당사자 가족에서 사법 기관에까지 확장해 국가가 부담을 덜어주고자 하는 취지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환자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은 입원 치료는 환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낙인만 찍을 뿐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이에 대해 윤 교수는 “확실한 범죄 예방을 위해 필요한 조치는 시행돼야 한다”며 “정신질환은 조기 치료가 중요하기 때문에 전문적인 진단 기준으로 위험성과 치료 정도를 명확히 구분해 치료하면 불필요한 낙인을 막을 수 있다”고 전했다. 특히 국립정신건강센터에 따르면 지난 2019년 아파트에 불을 지른 뒤 대피하던 입주민들에게 흉기를 휘둘러 사망자 5명을 포함한 22명의 사상자를 발생시킨 진주 방화 사건의 피의자 안인득 씨와 이번 서현역 흉기 난동 사건의 피의자 최 씨가 공통으로 앓은 조현성 성격장애의 경우 조기 약물치료만으로도 충분한 증상 완화가 가능한 것으로 밝혀졌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제도를 도입하기 전에 인프라와 지원 확충이 선행돼야 한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실제로 중앙정신건강복지사업지원단에 따르면 올해 정신건강 관련 예산으로 집계된 4,432억 원은 전체 보건 예산의 2.6%밖에 되지 않는다. 더불어 지난 8월 14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정신장애인은 약 10만 명, 중증정신질환자는 30만 명인 것에 비해 정신질환자가 사회 복귀 훈련을 받는 정신재활시설은 전국에 349곳뿐이다. 또한 이 교수는 “사법입원제 도입과는 별개로 근본적으로 지역사회의 정신재활시스템을 확대해 정신질환자들의 삶에 직접적으로 개입할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일본은 정신질환 확률이 높은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 문제 해결을 위해 지난 2015년부터 총 67개소의 히키코모리 지역지원센터를 설치했다. 센터에서는 지역의 △사회복지사 △임상심리사 △정신보건복지사가 협력해 히키코모리 상태에 있는 개인과 가족에 대한 직접적 상담 지원과 지원 연계를 통해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대표적 사례인 후지사토마치 지역의 경우 정책 시작 전 115명이었던 히키코모리가 지난 2020년 10명 남짓으로 감소한 유의미한 결과를 기록한 바 있다.

엄벌주의식 해결책보다 건강한 공동체에 대한 고민이 우선돼야
한편 국회는 이상동기 흉기 난동 범죄의 처벌 수위를 높이기 위해 가석방이 적용되지 않는 종신형 도입을 논의하고 있다. 또한 지난달 4일 대검찰청은 인터넷상 살인 예고와 같은 *공중협박행위를 테러 수준으로 중처벌 할 수 있게 법무부에 입법을 요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윤 교수는 “정부가 국민 정서를 고려해 엄벌주의 해결책을 선택했지만 그 실효성에 대해서는 재고가 필요하다”며 “강한 처벌을 내리면 일반 시민들은 조심하게 되겠지만 자기조절 능력이 떨어져 이상동기 범죄를 저지를 확률이 높은 사람들에게는 억제 요인이 되지 못할 것”이라 전했다. 더불어 박 교수는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를 간과하고 잘못에 대한 엄벌만을 강조하는 것은 잘못된 진단”이라며 “병든 사회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지역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고 공동체의 회복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1997년 하버드대 사회학과 로버트 샘슨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의 끈끈함과 교류 등을 포괄하는 집합효율성이 높은 도시일수록 범죄가 유의미하게 줄어드는 결과가 도출된 바 있다. 박 교수는 “인격 형성에서 중요한 청소년 시기에 공동체와의 교감 능력 향상을 위한 폭넓은 민주 시민 교육이 제공돼야 한다”며 “지역사회의 응집력을 키우기 위해 자경단과 마을 지킴이 등 지역민들이 함께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개발될 필요도 있다”고 전했다.

◆조현성 성격장애=사람과의 관계에 흥미를 느끼지 못해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거나 사회 구성원이 되는 것을 어려워하는 정신질환.

◆공중협박행위=불특정 다수에 대한 협박 행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