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허예련 기자 (aerong@skkuw.com)

인터뷰 - 서수연 음성해설 작가

국내 최초 음성해설사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해

비장애인의 이해 돕는 도구로 활용되기도 

다음 문장을 읽으며 머릿속에 그림을 그려보자. ‘이것은 풍경화다. 화폭을 가로지르는 지평선을 중심으로 상단에는 푸른 하늘이 끝없이 펼쳐져 있고, 하단에는 짙푸른 바다가 넘실댄다. 하늘에는 바람에 실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오는 듯한 두 점의 뭉게구름이 있다. 바다의 파도는 붓 터치로 표현된다.’ 보지 않았지만 머릿속에는 하늘과 바다가 있는 풍경화가 떠오른다. 드라마와 영화, 전시 작품과 공연장에서 많은 이들의 귀에 이미지를 불어넣는 서수연 음성해설 작가를 만나봤다.

음성해설이란 무엇인가.
음성해설의 주 목적은 시력이 약한 이용자가 스토리나 작품 속 맥락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따라서 시각 없이 해설만 들었을 때에도 해당 이미지를 머릿속으로 생생하게 그려낼 수 있게 해야 한다. 일반적인 작품 해설의 경우, 관람객들이 눈으로 그림을 보고 있다는 전제 하에 설명이 이뤄진다. ‘여기를 한 번 보세요’ 나 ‘이쪽으로 모이세요’와 같이 듣는 대상자가 지시하는 대상을 보지 않으면 완성되지 않는 문장들이 사용되기도 한다. 음성해설에는 이러한 전제가 없다. 또한 음성해설은 늘 공간의 제약을 받는다는 특징이 있다. 여기서 말하는 공간은 대사와 대사 사이의 공백이나 공연의 암전 시간, 공연 시작 전 소개 시간 등 음성해설을 할 수 있는 음성적 공백이다.


음성해설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음성해설 작가를 시작하기 전에는 구성 작가나 만화 스토리 작가, 광고 작가로서 일하며 글로 할 수 있는 일은 전부 했다. 그러던 중 2003년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에서 처음으로 방송국 드라마의 화면 해설 제공을 시작했다. 음성해설의 대본 작성과 낭독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는데, 그 작업을 맡아 달라는 관계자분의 제안을 받았다. 그렇게 작업하게 된 첫 작품은 KBS 드라마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였다. 당시 음성해설이 국내에 처음 도입됐기에 정해진 절차나 선례가 없는 상태였다. 지금은 파일을 사전에 제공받지만 당시에는 방영 시간에 맞춰 비디오 플레이어로 방송을 직접 녹화하고, 밤새 작업해 다음날 방송국에 녹음본을 넘기곤 했다. ‘대추나무 사랑 걸렸네’의 방영 이후, 기존에 해 오던 작가 업무와 음성해설 작업이 동시에 들어왔다. 드디어 드라마를 볼 수 있게 됐다는 시각장애인 시청자들의 피드백에 큰 보람을 느껴, 두 작업 중 음성해설 작업을 선택했다. 그 후 지금까지 23년 동안 음성해설 작가로 일하고 있다.


장르별로 음성해설의 차이를 설명해달라.
영상의 경우 대본과 프레임이 정해져 있기에 작업이 수월한 편이다. 손이 클로즈업되는 장면의 경우 손을 위주로 프레임 내부의 이미지를 해설하면 된다. 하지만 공연의 경우, 대부분의 전면 무대는 180도며 어떤 공연은 360도까지도 관객의 시선이 자유롭게 움직인다. 따라서 극을 이끄는 이야기와 등장인물을 중심으로 해설이 진행되며, 대사와 대사 사이 공간이 남는 경우에만 주변 환경을 추가로 설명한다. 한편 무용공연의 경우, 오른쪽으로 팔을 뻗고 왼쪽으로 다리를 뻗는다는 식의 동작 서술에만 치중하기보단 움직임과 함께 그것이 결국 어떤 의미를 만들어 내는지 설명하는 것이 중요하다.


전시예술 작품의 음성해설만의 특징이 있다면.
설명만으로도 비슷한 그림을 그려낼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작품에 따라 다르겠지만, 작가의 이름과 제목, 재료 등에 대한 기본적인 정보와 함께 구도를 설명하고 구도에 따라 배치된 요소들과 사용된 색에 관해 설명해 준다. 마지막에 작가의 의도를 간결하게 한 문장으로 설명한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제공되는 정보의 방향이 일관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시각이 움직이는 방향을 따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요소들을 언급하거나, 시계방향으로 설명한다거나, 전체와 부분으로 나누어 설명하는 등 음성해설의 순서에 따라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질 수 있게끔 명확한 기준을 갖고 작품의 요소들을 언급하는 것이 중요하다.


음성해설을 비시각장애인도 활용할 수 있을지. 
잘 적힌 음성해설은 한 편의 라디오 드라마가 되기에 비시각장애인들에게도 큰 인기를 끈다. 진행했던 작업 중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나 ‘더 킹: 영원의 군주’의 음성해설이 화제가 된 바 있다. 음성해설 전 회차를 모두 필사했다는 사람도 있었다. 작년에 진행했던 <파우스트>는 작품 자체의 난도가 높아 이해가 어려운 공연이었다. 당시 공연장에 방문한 노부부가 음성해설을 들을 수 있는 음성 수신기를 빌려 공연과 함께 음성해설을 감상하고, 공연이 끝난 후 담당 PD님께 음성해설 덕분에 공연을 잘 따라갈 수 있었다는 감상을 전하신 게 기억이 남는다. 이처럼 음성해설은 그 자체로 즐길 수 있는 콘텐츠가 되며, 관객이 예술을 보다 친절하게 이해할 수 있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사진ㅣ허예련 기자 aerong@
사진ㅣ허예련 기자 aer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