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이서연 기자 (sheonny@skkuw.com)

인사캠 만남 - 김수현(정외 07) 동문

발표를 좋아하던 소녀에서 e스포츠 캐스터가 되기까지

대중과 가깝게 소통하는 방송인이 되고 싶어

“킹존~ 드래곤 X!” 특유의 허스키한 목소리로 e스포츠 팀들을 소개하는 오프닝과 ‘안경 누나’라는 별명은 김수현(정외 07) 동문을 대표하는 하나의 시그니처가 됐다. e스포츠 아나운서로 게임 방송계에 발을 들인 김 동문은 시원시원한 입담으로 대회를 중계하는 e스포츠 캐스터로 역할을 넓혔다. 그는 교양 방송 아나운서부터 다양한 직업을 거쳐 현재의 e스포츠 캐스터가 됐다. 날씨가 조금 쌀쌀해진 가을, 송도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발표와 게임을 좋아했던 당찬 소녀
김 동문은 어린 시절 자신을 밝고 욕심이 많은 아이였다고 설명했다. “다양한 대회에서 수상하려고 노력했어요. 어렸을 적 웅변대회에서 상을 받기도 했죠.” 그는 모든 일에 열정적이었지만 특히 진행하고 발표하는 것을 좋아했다. “유치원 재롱잔치에서 사회를 보는데 짝이 말을 잘 못하니까 제가 대본을 혼자 다 읽어버린 적도 있어요.” 이런 그에게 어머니는 커서 아나운서를 하면 되겠다고 말씀하셨다. 어머니의 한마디는 김 동문을 자연스럽게 아나운서라는 꿈으로 이끌었다. 김 동문은 자신의 꿈을 위해 수원 청소년 인터넷 방송국에서 아나운서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곳에선 방송이 진행되는 구조를 많이 배웠어요. 촬영장에도 익숙해졌고 카메라 앞과 무대에서 긴장하지 않는 법도 알게 됐죠.” 

현재 e스포츠 캐스터로 활동하는 김 동문은 유년기부터 게임이라는 취미를 가졌다. 그는 게임을 하는 것뿐만 아니라 보는 것도 좋아했다. “스타크래프트나 심즈 등 유명하다는 게임은 장르를 가리지 않고 많이 해봤던 것 같아요. 제가 어려워하는 게임을 남동생이 잘하는 걸 보면서 쾌감을 느끼기도 했죠.” 


에너지와 도전으로 가득 찬 대학 생활
김 동문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수많은 아나운서를 보며 우리 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했다. 더불어 그는 방송을 전문적으로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에 신문방송학과를 복수전공 했다. “발표와 팀플이 많은 신문방송학과 수업이 적성에 맞을 것 같았어요. 수업에선 방송뿐만 아니라 미디어와 관련된 다양한 지식과 마케팅을 배웠죠.” 가장 인상 깊었던 수업을 묻자 김 동문은 정치 철학과 기호학이라고 답했다. “다루는 내용은 다르지만, 두 과목 모두 심도 있게 내용을 파고들어서 자신의 주관으로 해석해본다는 점이 흥미로웠어요.”

김 동문은 배우고 싶은 강의를 찾아 열심히 듣기도 했지만 동시에 다양한 활동에 자유롭게 도전했다. ‘재미있게 살자’는 마음가짐으로 그는 힙합 동아리 ‘레퀴엠’과 클럽 동아리 ‘스킵’ 등에서 열성적으로 활동했다. 무대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것을 즐겼던 그는 레퀴엠에서 힙합 춤을 췄다. “중앙동아리가 아니라 연습실이 없어 경영관 지하 3층에서 통유리를 보며 춤을 연습했어요. 매일 막차 시간 전까지 땀을 흘리면서 춤추며 에너지를 분출했죠.” 더불어 그는 동아리 부원들과 함께 PC방에서 서든어택과 스페셜포스와 같은 *FPS 게임을 하며 게임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됐다. 김 동문은 스킵의 창단 멤버로 활동하며 천막 속에서 학우들과 음악을 즐기는 ‘천막 클럽’ 프로젝트를 개최하기도 했다. “이전에는 보수적인 분위기 탓에 대학생 클럽 문화를 불건전하게 보시는 분들도 많았어요. 그러한 인식을 개선하고자 2010년 축제 때 천막 클럽을 개최했죠.” 당시 천막 클럽은 건전하고 재밌다는 평을 받으며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이는 김 동문에게 큰 보람과 용기를 줬다. 그는 대학 시절을 ‘가장 수수하지만 존재만으로 화려한 청춘’으로 정의했다. “무리하게 적금을 깨서 유럽 여행을 가기도 했어요. 수수한 시절을 알찬 경험과 도전으로 찬란하게 채웠죠.”


고난과 역경을 거쳐 이뤄낸 아나운서의 꿈, 그러나
2011년, 졸업을 준비하며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김 동문은 아나운서 아카데미에 등록했다. 그의 꿈은 정확한 사실을 전달하는 보도국의 앵커가 되는 것이었다. “아나운서를 준비할 때는 김주하 앵커처럼 신뢰감 있는 이미지를 가지고 싶었어요.” 하지만 아나운서 아카데미에서 마주한 현실의 벽은 높았다. “아나운서를 준비하며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은 이 세상에 정말 뛰어난 사람들이 많다는 거였죠.” 김 동문은 수많은 피드백을 받으며 현실을 직시하게 됐다. “제 강한 이미지가 아나운서와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진중한 보도국 앵커도 결국 저와 어울리지 않는 옷임을 깨닫게 됐죠.” 이러한 역경 속에서 김 동문이 택한 방식은 자신의 단점을 보완하기보다 장점을 살리는 것이었다. “강사님들이 발음이 좋고 발성이 단단하니 오디오를 살려보라고 말씀하셔서 매일 오디오 스터디에 매진했어요. 스터디를 안 하는 날에도 인터넷 카페를 통해 동기들과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묵묵히 노력했죠.” 

이러한 노력에 보답이라도 받듯 김 동문은 약 1년 반의 긴 준비 기간 끝에 2012년 겨울에 수원에 있는 ‘티브로드 방송국’에서 한 교양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게 됐다. “꿈꿔온 보도국 앵커는 아니지만 교양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아나운서 커리어를 시작했어요. 후에 스포츠나 기상 아나운서에 도전하거나 프리랜서로서 다양한 기업 행사 MC 진행을 맡았죠.” 꿈을 이룬 후에도 마음속 게임에 대한 열정은 여전했다. 그는 퇴근 후 매일 메이크업을 지우지 않고 PC방에 갔다. “하루는 PC방 사장님이 직업이 뭐냐고 물어보시기도 했어요. 낮에는 교양 방송에 매진하는 아나운서가 저녁에는 PC방에서 게임을 하며 밤을 새우는 것이 스스로도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준비된 자가 기회를 잡는다
김 동문의 게임에 대한 열정을 아는 친구들이 e스포츠 방송 ‘SPOTV GAMES’의 아나운서 지원을 권유하며 그는 e스포츠와 인연을 맺었다. “면접에서 FPS 게임에 관심이 많고, 인터뷰와 중계 모두 할 수 있다는 열정을 어필했어요. 다른 아나운서와 달리 파워풀한 목소리를 좋게 봐주신 것 같아요.” 그 간절함이 닿아 김 동문은 마침내 2016년, SPOTV GAMES에 입사하며 e스포츠 아나운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는 ‘넥슨 카트라이더 리그’와 ‘서든어택 챔피언스 리그’ 등 다양한 리그에서 선수들을 인터뷰했다. 수많은 선수를 인터뷰할 때 김 동문은 게임과 선수에 대한 깊은 이해를 가장 기본적인 능력으로 생각했다. “게임과 선수에 대해 알고 있어야 인터뷰와 분석 데스크 같은 프로그램을 수월히 진행할 수 있어요. 언어를 모르면 말이 안 통하는 것과 비슷하죠.” 인터뷰를 진행하며 그가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선수의 진심을 느낄 때이다. “선수와의 인터뷰는 직접 일대일로 경기에 대해 대화를 할 수 있어 선수의 감정을 깊게 이해할 수 있어요.”

e스포츠 아나운서로 활동하는 동시에 그는 e스포츠 캐스터로서의 역할을 틈틈이 인정받았다. 선수 인터뷰와 경기에 대한 분석을 맡는 e스포츠 아나운서와 달리 e스포츠 캐스터는 대회를 실시간으로 중계하는 역할을 맡는다. 그는 e스포츠 캐스터로서의 가능성을 언급했던 진태호 PD를 통해 중계 기회를 종종 얻었다. 처음에는 실수도 있었지만 많은 기회를 거치며 넥슨 카트라이더 리그에서 성공적으로 중계를 끝마치기도 했다. “카트라이더의 대가로 통하는 성승헌 캐스터의 대타로 우연히 나간 거라 준비가 부족해 걱정도 많았죠. 하지만 의외로 ‘캐스터를 해도 되겠다’는 댓글이 달릴 정도로 반응이 좋았어요.” 다른 e스포츠 캐스터의 빈자리를 잠시 채웠던 경험이 김 동문에겐 중계에 자신감을 얻고 전문 e스포츠 캐스터를 꿈꾸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그는 과정 중에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경기 중간의 빈 시간을 말솜씨로 채워야 하는 e스포츠 캐스터의 역할에 부담을 느낀 적도 있었다. “하지만 대본이 없고 높은 순발력을 요하는 어려운 직업인 만큼 더 도전하고 싶었어요. 저만의 중계 방식을 찾아가기 위해 기존 캐스터분들의 영상을 따라 하며 노력하기도 했죠.” 노력의 순간들이 모여 김 동문은 ‘발로란트 챌린저스 캐스터’ 정식 제의를 받아 2021년부터 e스포츠 캐스터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우연과 노력이 쌓여 현재의 자신을 만들어냈다고 전했다. “‘운칠기삼’이라는 말처럼 모든 일은 세상의 도움이 조금 필요해요. 하지만 찾아온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나의 능력을 꾸준히 올려놓는 것도 중요하죠.” 김 동문에게 중계는 시청자들과 함께 선수들의 마음을 느끼고 경기를 읽어내는 생동감 있는 무대다. “자신의 에너지를 모두 써가면서 선수들과 모든 시청자와 함께 호흡할 때 정말 짜릿해요.” 


시청자들에게 한 발짝 더 다가가는 방송인
대중과 가깝게 소통하고 싶다는 일념을 가지고 김 동문은 다양한 방송에 출연하고 있다. 사람을 좋아한다는 그의 강점은 방송을 진행할 때 빛을 발했다. “e스포츠 계열에서 일하면 유튜브 등에서 처음 뵙는 게임 개발자분들과 방송을 하는 경우도 많아요. 다양한 플랫폼에서 많은 게임 전문가분을 뵙죠.” 가장 기억에 남는 방송을 묻자 김 동문은 김효진 아나운서와 합동으로 진행했던 ‘소확잼’ 방송을 떠올렸다. 이는 ‘소소하지만 확실한 재미’를 모토로 게임뿐만 아니라 일상 속 다양한 주제에 대해 다루는 예능 방송이다. 그는 예능 방송을 촬영하며 즐거운 순간도 많았지만 어려운 부분도 많았다고 설명했다. “가볍게 던진 말이 왜곡되기도 하고 유튜브 댓글에 방송의 방향성을 논하는 다양한 의견이 달리기도 했어요. 모든 사람의 의견을 완전히 수용하는 건 어려운 일임을 깨달았죠.” 김 동문은 앞으로도 시청자와 소통을 잘하는 방송인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e스포츠 방송은 즐거운 마음으로 시청하는 만큼 제 쾌활함이 중계를 통해 전해졌으면 좋겠어요. 더불어 저 또한 즐겁게 게임 방송을 진행하는 한 명의 게이머로서 ‘덕업일치’를 이룬 사람이 되는 게 제 소원이에요.” 


모든 꽃이 봄에 피진 않는다
후배들이 대학생으로서 중요하게 여겼으면 하는 가치에 관해 묻자 김 동문은 건강한 인간관계와 도전 정신을 답했다. “대학에선 자신과 맞는 사람을 찾아 서로 의지할 수 있는 관계를 형성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서로 의지하면 힘든 시기도 이겨낼 수 있죠. 찬란한 시기인 만큼 자신이 하고 싶은 다양한 활동에 도전하며 재밌는 대학 생활을 보냈으면 좋겠어요.”

더불어 김 동문은 자신의 삶을 ‘모든 꽃이 봄에 피진 않는다’는 문장에 빗대어 설명했다. “저는 아나운서로서 탈락을 많이 경험했지만 늦은 시기에 만족스러운 꽃을 피워낸 것 같아요. 29살이라는 춥고 힘든 겨울에 꽃이 핀 거죠.” 김 동문은 우리 학교에서 진행한 강연에서 ‘모두에겐 각자만의 정원이 있다’는 말을 전했다. “대학생 때는 타인의 성공과 자신을 비교하는 경우도 많아요. 하지만 늦더라도 꽃이 필 것을 기대하고 자신만의 정원을 아름답게 꾸며나가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길 바라요.”


◆FPS 게임= First Person Shooting 게임의 약자로, 권총과 수류탄을 비롯한 현대 무기로 싸우는 1인칭 혹은 3인칭 슈팅 게임.

 

사진ㅣ이서연 기자 sheon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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