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규빈 기자 (kyubin@skkuw.com)

R&D 예산 삭감으로 연구의 지속성과 인건비 문제 심각해

비효율이 발생한 원인을 파악해 효율적인 예산 편성 이뤄져야

지난 8월 22일, 정부가 2024년 R&D 예산을 삭감하겠다고 발표했다. 우리나라 R&D 예산 삭감은 1991년을 제외하고는 단 한 번도 없었을 정도로 매우 드문 일이기에 이를 둘러싼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R&D가 무엇인지, R&D 예산 삭감이 어떤 파장을 불러일으킬지 알아보자.

우리나라 과학기술 발전의 기반이 된 R&D 투자
국방기술진흥연구소에서 2021년 발표한 ‘2021 국가별 국방과학기술 수준 조사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은 세계 9위 수준에 도달했다. 특히 반도체 분야는 세계 최초의 발명이 여러 차례 이뤄질 정도로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갖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김소영 교수는 “우리나라는 과학기술로 성공적인 근대화를 이룬 유일한 국가”라며 “우리나라 과학기술 발전의 배경에는 R&D에 대한 투자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R&D란 Research and Development의 약자로, 기초연구 및 기초연구의 결과를 토대로 응용 기술을 개발하는 활동을 통칭한다. 또한 과학과 산업이 만나 시설과 장비를 투자하며 새로운 기술을 만드는 과정을 의미하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국내총생산 대비 R&D 예산 지출이 세계 5위로 높은 수준이다. 1966년, 최초의 정부출연연구기관인 한국과학기술연구원의 설립을 시작으로 정부는 과학기술 육성을 통한 경제개발을 목표로 삼았다. 이후 꾸준히 R&D 예산을 늘리며 우리나라 과학기술은 빠르게 발전해 왔다. 1998년 외환위기 당시에도 R&D에 대한 투자를 중요하게 여겨 R&D 예산만큼은 안정적으로 유지했다. 이에 △한국과학기술연구원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한국항공우주연구원과 같은 정부출연연구기관이나 대학, 그리고 기업 연구소는 R&D 예산을 꾸준히 지원받아 상당한 자금을 투입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우리나라는 여러 분야에서 새로운 연구 성과를 내고 있다. 김 교수는 “정부의 R&D 투자는 개인에 비해 큰 규모로 투자가 이뤄질 수 있으며 기업과는 달리 불확실하고 장기적인 연구에도 기여해 과학지식 축적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전했다. R&D 투자는 학문의 발전을 촉진할 뿐만 아니라 경제 성장에도 영향을 미친다. 김 교수는 “R&D에 대한 투자로 기술이 발전하면 노동과 자본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 경제 성장에 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갑작스러운 R&D 예산 삭감 발표, 그 이유는?
2024년 정부 예산안에 따르면 2024년 정부 총예산안은 656조 9,000억 원으로 638조 7,000억 원이었던 올해에 비해 2.8% 증가했지만 R&D 총예산안은 25조 9,000억 원으로 31조 1,000억 원이었던 올해에 비해 16.6% 감소했다. 정부가 R&D 예산을 삭감한 가장 큰 이유는 예산 사용의 비효율을 개선하고 낡은 관행을 걷어내기 위함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최근 5년간 R&D 예산이 급격하게 증가하며 R&D 관리 과정에 사각지대가 발생하고 경쟁력 없는 사업에 관행적으로 보조금을 지원하는 등의 비효율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R&D 투자 규모에 비해 발표되는 논문이 적거나 기술의 상용화가 이뤄지지 않는 등 가시적인 성과가 보이지 않는 것 역시 비효율의 일종”이라며 “부처별로 통합적인 관리가 이뤄지지 않아 발생하는 중복 투자 등 사업 단위의 비효율과 연구비 사용에 관한 연구 단위의 비효율도 편재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정부의 R&D 예산 삭감이 R&D 비효율 개선에 적절한 방안이 되는지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2023년 R&D 사업 평가에서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은 사업 23개 중 21개의 예산이 6억에서 많게는 507억 원까지 삭감된다는 발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 A연구위원은 “사업의 당사자들도 이 사업의 예산이 왜 줄었는지 공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예산 편성 기준에 의문이 든다”고 전했다. 

연도별 정부 R&D 예산 편성 추이. 자료: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연도별 정부 R&D 예산 편성 추이. 자료: 과학기술정보통신부

 

R&D 예산 삭감이 미치는 영향
이번 R&D 예산 삭감 발표는 정부의 올해 초 R&D 예산 계획과는 모순된 것이었기에 거센 반발을 불러왔다. 세계 5대 연구 강국으로의 도약을 목표로 R&D 예산 비중을 국내총생산의 5% 수준으로 유지하려던 계획과는 달리 그 비중이 3% 대로 줄어들 것이라 예측된 것이다. 특히 국가적 차원의 연구를 하는 정부출연연구기관의 경우 주요 연구과제를 위한 비용에서 3,000억 원의 예산이 삭감될 것으로 발표됐다. 이에 많은 연구비와 연구 인력이 있어야 하는 장기 프로젝트 계획이 어려울 뿐 아니라 현재 진행 중인 과제조차 중단의 위기에 놓일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인건비 삭감 문제도 심각하다. 김 교수는 “인건비는 안정적으로 지급돼야 하는 만큼 인건비의 삭감은 연구원의 구조 조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며 “연구비를 바탕으로 연구를 진행해 졸업하는 이공계 학생들은 구조 조정과 연구비 부족으로 졸업조차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의 과학계 노동조합은 최초로 과학 단체들과 연대해 ‘국가 과학기술 바로 세우기 과학기술계 연대회의’를 만들어 정부의 일방적인 R&D 예산 삭감에 항의했다.

한편 대학에 지원되는 연구비 역시 삭감이 예고됐다. 예산이 삭감될 경우 연구를 지속하지 못하거나 연구 내용을 바꿔야 할 수도 있다. 연구의 질이 저하되는 문제 또한 발생할 수 있다. 더불어 불안정한 연구 환경에 외국 대학이나 기업으로 인재가 유출될 수 있다는 문제도 우려된다. 이에 대학 사회에서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의 ‘과학기술 분야 R&D 예산 전면 삭감 정책에 대한 성명문’ 발표를 시작으로 △고려대 △서울대 △울산과학기술원(UNIST) △포항공대(POSTECH) 등 여러 대학이 안정적인 연구 환경 보장을 요구하며 정부의 R&D 예산 삭감에 대항하는 목소리를 냈다. 지난달 10일에는 이공계 대학생과 대학원생들은 전국대학학생회네트워크와 울산과학기술원(UNIST) 학부 총학생회 등으로 구성된 ‘R&D 예산 감축 대응 대학(원)생 TF’를 조직해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기초연구 예산 감축 규탄 △학생 인건비 감축 반대 △R&D 예산 삭감 철회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기도 했다. 

정부 R&D 예산 삭감에 반대하는 대학(원)생들의 기자회견. ⓒ연합뉴스 캡처
정부 R&D 예산 삭감에 반대하는 대학(원)생들의 기자회견. ⓒ연합뉴스 캡처

 

효율적인 R&D 예산 편성을 위해서는
과학기술계에서 R&D 예산 삭감에 대한 반발이 거세지자 지난 13일 여당은 2024년 R&D 예산을 일부 복원하겠다고 발표했다. 특히 여당은 △기업 △대학 △연구소에서 정부 과제를 수행하는 젊은 연구자 처우 개선을 위한 예산 증액의 필요성을 인지했다며 인건비와 관련된 R&D 예산을 늘리고 이공계 R&D 장학금 지원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효율적인 R&D 예산 편성을 위한 고민이 필요한 때다. A 연구위원은 “지난 5년간 R&D 예산이 급증하며 낭비된 부분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러나 현재의 예산 삭감은 비효율의 원인을 체계적으로 파악하지 않고 이뤄진 것 같다”고 전했다. 이에 김 교수는 “현재 R&D 비효율의 근본적인 원인은 예산보다는 제도적 문제가 대부분”이라며 “무조건적인 예산 삭감보다는 적정한 R&D 예산을 측정하고 제도를 보완해 R&D 예산의 비효율을 개선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특히 R&D 예산을 분배할 사업을 선정하고 분배 정도를 정하는 과정도 개선할 필요가 있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 황석원 연구위원은 “사업 평가와 예산 배분 조정의 일관성을 강화하는 제도적 보완이 절실하다”고 전했다. 정부는 과학기술계의 목소리를 수용해 예산이 비효율적으로 사용되는 부분을 확인하고 해당 부분에 대한 예산은 삭감하되, 필요한 분야를 적극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 효율적인 예산 편성과 R&D 발전이 균형을 이룰 때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발전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