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의상 기자 (kimcloth1029@skkuw.com)

파독 근로자,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해

파독 근로자들의 기여에 걸맞은 실질적 지원이 마련돼야

“글뤽 아우프(glück auf, 지상에서 만나자)” 작업을 나가기 전 파독 광부들은 손을 맞대고 이렇게 외쳤다. 이주노동자 84만 시대, 60년 전 우리 역시 이주노동자였던 적이 있었다. 한국인이자 이주노동자인 파독 근로자, 그들은 누구일까?

파독 근로자의 역사
파독 근로자는 1960~1970년대 실업문제 해결과 외화 획득을 목적으로 우리나라에서 서독으로 파견된 근로자다. 이들은 1963년 체결한 한독근로자채용협정을 통해 파견돼 올해 파견 60주년을 맞이했다. 1960년대 한국은 미국의 원조 감소와 인구 급증으로 인한 실업난과 빈곤을 겪었고 같은 시기 서독은 극심한 노동력 부족에 시달렸다. 이러한 고민이 맞물려 파독 근로자들이 독일에 활발하게 투입됐다. 이들은 크게 광부와 간호요원으로 나뉜다. 파독 광부는 1963년 ‘한국 광부의 임시 고용계획에 관한 한독 정부 간의 협정’ 이후 본격적으로 투입됐다. 이들은 1950년대 서독 광산업계에서 일했던 일본인들이 자국의 경제 발전으로 본국에 귀환하면서 공백이 생긴 서독 광산업계의 노동 인력을 대체했다. 한편 파독 간호요원은 간호사와 간호조무사로, 서독의 간호 인력 부족으로 인해 한독근로자채용협정 체결 이전에도 민간에서 파견된 바 있다. 이후에도 서독 정부의 외국인 노동력 통제로 1976년과 1977년 각각 간호요원과 광부 파견이 중지될 때까지 파독 근로자들은 활발히 유입됐다. 2008년 과거사정리위원회의 ‘파독 광부 간호사의 한국경제발전에 대한 기여의 건’에 따르면 1960~1977년 사이 파견된 근로자는 파독 광부 7,936명, 파독 간호요원 1만 1,057명이었다.

근무복을 입은 파독 간호요원들의 모습. ⓒ국민일보 캡처
근무복을 입은 파독 간호요원들의 모습. ⓒ국민일보 캡처

 

파독 근로자,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와
이처럼 적지 않은 수의 파독 근로자들은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근무했다. 1977년부터 3년간 파독 광부로 일했던 한국파독광부 간호사간호조무사연합회 김춘동 회장은 “지하 1,000m 아래 키보다 낮은 막장에서 40℃의 열을 견디며 일하니 인간의 한계를 느꼈다”며 “독일인의 큰 체구에 맞춰 제작된 30kg의 장비 역시 당시 60kg도 되지 않았던 한국인들이 들기에는 너무 무거웠다”고 회상했다. 또한 우리 학교 동아시아역사연구소 나혜심 선임연구원은 “간호요원의 경우 독일과의 간호 문화 차이로 인해 한국에서는 간호사의 업무가 아니었던 화장실 청소와 시체 닦기 등의 육체노동을 수행했다”고 전했다. 열악한 노동환경은 파독 근로자들을 죽음으로 내몰기도 했다. 재독한인글뤽아우프친목회가 1997년 발간한 『파독광부 30년사』에 따르면 1963년부터 1979년까지 서독에서 사망한 광부와 간호요원은 각각 65명과 44명이었다. 김 회장은 “실제로 근무 중 동료의 사망을 목격했던 순간이 아직도 큰 충격으로 남아있다”고 전했다. 근로자 파견 중지 이후 독일에 남은 약 40%의 파독 근로자들은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 김 회장은 “독일에 남은 사람들은 향수와 외로움을 느껴 대체로 귀국했던 사람들보다 빨리 생을 마치는 경우가 많다”며 “살아있는 파독 근로자들도 대부분 고령과 은퇴로 인해 생활이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광부들의 경우 석탄 가루를 흡입해 폐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고 전했다.

파독 광부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는 모습. ⓒ캐나다 한국일보 캡처
파독 광부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는 모습. ⓒ캐나다 한국일보 캡처

 

파독 근로자들에 대한 실질적인 대우가 필요해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도 1965년부터 1975년까지 파독 근로자들의 송금액은 약 1억 달러에 달했다. 경상국립대 독어독문학과 이영석 명예교수는 “당시 파독 근로자들의 송금액이 국가 경제에 상당한 도움을 줬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에 비해 그들을 위한 실질적인 대우는 부족한 상황이다. 국내에 파독 근로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직접적인 제도는 지난 2021년 시행된 파독 광부·간호사·간호조무사에 대한 지원 및 기념사업에 관한 법률(이하 파독광부간호사법)이 유일하다. 파독광부간호사법 제3조와 제6조에 따르면 정부가 대통령령에 따라 정한 사업 수행 주체는 파독 근로자에게 △교육 또는 상담 △관련 기관과의 연계 △생활에 필요한 기본정보 제공 등의 서비스를 지원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이 교수는 “법이 모호하고 불충분해 실질적인 지원이 어렵고 대통령령으로 지정한 사업 수행 조건을 충족하는 주체도 찾기 쉽지 않다”며 “사업 수행 주체를 고용노동부와 같은 정부 부처에 두고 이에 상응하는 로드맵을 세워나갈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또한 전문가들은 독일에 완전히 정착한 파독 근로자의 경우 한국에 연고가 없어 귀국 시 이들을 위한 숙소와 커뮤니티가 제공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 회장은 “국내로 돌아온 파독 근로자에게 독일에서 근로했다는 이유로 보장받지 못하는 의료보험을 지원할 필요도 있다”며 “국민이 파독 근로자에 대한 문제를 인식할 수 있도록 역사 교과서 서술 등의 작업도 필요하다”고 전했다. 파독 근로자에 대한 적절한 예우와 따뜻한 관심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