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이서연 기자 (sheonny@skkuw.com)

감성스케치 - '신파의 세기'

신파극을 소재로 오디션에 참가하며 전개되는 서사

K-신파에 대한 자조와 풍자 담아

오는 17일까지 열리는 연극 '신파의 세기'는 우리나라의 신파극을 가상의 중앙아시아 국가 ‘치르치르스탄’에 수출하러 간다는 설정의 코미디 연극이다. 신파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을 담아내며 재미와 풍자를 동시에 잡은 ‘신파의 세기’에 빠져들어 보자.

신파극을 수출하러 떠나는 여정
공연 장소는 종로구 혜화동 서울문화재단 대학로극장 쿼드였다. 200석이 넘는 자리가 ‘신파의 세기’를 관람하기 위해 모인 관객들로 가득 찼다. 공연을 관람한 이슬기(24) 씨는 “평소 신파를 떠올리면 영화가 먼저 떠올랐는데 신파를 소재로 한 연극은 처음이라 신선했다”고 말했다.

이야기는 연극 제작자인 미스터 케이가 치르치르스탄의 국민 문화 진흥사업을 따내기 위해 그곳으로 출장을 떠나며 시작된다. 극의 배경인 치르치르스탄은 경제 발전을 이루기 위해 외국의 우수한 대중문화를 국내에 도입하고자 한다. 그 대가로 3조의 예산과 치르치르스탄 자원의 사용권을 걸고 오디션을 진행한다. 작품 전반은 우리나라의 신파극과 K-POP, 브라질의 삼바가 오디션에서 경연을 펼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극중극 구조로 전개되기 때문에 오디션에 활용되는 신파극 또한 극 속에서 그대로 재현된다. 

'신파의 세기' 커튼콜. 사진 | 이서연 기자 sheonny@
'신파의 세기' 커튼콜. 사진 | 이서연 기자 sheonny@


신파극과 K-신파 사이에서
작품의 제목인 ‘신파’는 이중적 의미를 지닌다. 20세기 초반 신파는 우리나라에서 유행했던 새로운 형식의 연극 장르를 의미했다. 하지만 현재에는 억지 감동을 유발하는 과잉된 표현 방식으로 통용된다. 극 중에서 20세기 초반의 신파는 ‘정통 신파극’으로, 현대의 부정적 의미의 신파는 ‘K-신파’로 불린다. 미스터 케이는 정통 신파극을 준비해 오디션에서 1930년대 대표 신파극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를 재현했다. 홍도가 사랑하는 영호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으며 처절하게 우는 모습은 관객의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곁에서 극 중 상황을 해설하는 변사는 해당 장면에 “눈물 없이 볼 수 없는 비극!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이냐”고 말끝을 늘이며 감정을 고조시켰다. 홍도가 신분 장벽으로 실연을 겪고 오열하는 모습은 자책감을 담은 정통 신파극의 특징을 잘 드러냈다. 또한 과거 연극에만 존재하는 변사의 존재는 잠시나마 우리나라의 정통 신파극을 엿볼 수 있게 했다.

배우들이 정통 신파극 '사랑에 울고 돈에 속고'를 재현하는 모습. ⓒ서울문화재단 대학로극장 쿼드 제공
배우들이 정통 신파극 '사랑에 울고 돈에 속고'를 재현하는 모습. ⓒ서울문화재단 대학로극장 쿼드 제공


하지만 이를 관람한 첫째 공주 ‘클리셰’는 예상 밖의 반응을 보였다. 그는 “내가 원하는 건 정통 신파극이 아니라 K-신파야, 마약처럼 강렬하고 질질 짜는 그거!”라며 미스터 케이에게 현대적 의미의 신파를 요구했다. K-신파의 자극적인 전개와 과잉 감정을 활용해 국민의 정서를 단결시키고 싶어 한 것이다. 정통 신파극을 준비한 미스터 케이는 K-신파에 대해 “눈물은 있지만 논리가 부족한 얄팍한 신파예요!”라며 비판했다. 그러나 미스터 케이는 예산을 따내기 위해 <국제시장>이나 <명량> 등 신파적 요소가 있다고 평가받는 현대 영화를 패러디하며 계속해서 오디션에 출마했다. 


단순한 코미디가 아닌 풍자극
작품은 오디션에 활용되는 패러디 연극을 통해 과잉된 감정을 보여주며 관객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그러나 작품 전반에는 K-신파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내재했다. 미스터 케이는 “정통 신파극은 20세기 초 우리나라 대중들의 한을 표현하는 창구였고 그 신파성이 남아 트로트 등 다양한 문화에 스며든 것”이라며 정통 신파극의 예술성을 주장했다. 그는 K-신파로 오디션을 보는 것에 대해 “가볍고 무게가 없어 K-신파를 활용해선 좋은 예술을 만들 수 없다”며 현재 상황에 억울함을 토로했다. 신파극을 연기하며 눈물을 쏟았던 배우들도 오디션 도중 자리를 박차고 나가거나 “이게 정말 울만한 상황이 맞냐”며 감정만을 앞세운 작품에 회의를 느끼기도 했다. 

조건으로 내건 치르치르스탄의 자원이 모두 가짜 자원임이 밝혀지며 극은 마무리됐다. 미스터 케이는 작품의 제목처럼 “신파의 세기가 언제까지 지속될 것 같냐”고 대중을 향해 물음을 던졌다. ‘신파의 세기’를 관람하며 과거부터 현재까지 우리에게 흘러온 신파의 자취를 돌아보는 것은 어떨까. 
 

◆극중극 구조=극 속에서 또 다른 가상의 연극이 진행되는 이중 구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