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이서연 기자 (sheonny@skkuw.com)

일본에서 유입된 후 우리나라만의 고유한 특징 생겨나

과잉 감정이라는 성질만 강조되며 논란이 되기도 해

영화 평론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단어가 있다. 바로 ‘신파’다. 우리는 주인공이 맥락 없이 엉엉 울며 억지스러운 감정을 극대화할 때 “그럼 그렇지”라며 신파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누군가에게는 억지 슬픔이자, 누군가에게는 눈물겨운 감동을 선사하는 신파. 일제강점기 때의 연극부터 현재의 영화까지, 신파가 걸어온 발자취를 따라가 보자.

신파에 대한 오해 풀기
신파라는 단어를 들으면 보통 개연성이 부족하고 직접적인 감정을 보여주거나 과한 눈물을 유발하는 작품을 떠올린다. <7번방의 선물>에서 사형당하기 직전의 아버지가 예승이를 부르짖으며 우는 결말, <신과 함께: 죄와 벌>에서 자홍이 자신이 어머니께 지은 죄를 떠올리며 오열하는 모습이 대표적이다. 강혜빈(영상 22) 학우는 “<비상선언>에서 생사가 오가는 급박한 상황에 갑자기 등장인물들이 가족들과 영상 통화를 하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보며 신파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신과 함께: 죄와 벌'에서 주인공이 어머니를 떠올리며 격하게 우는 모습. ⓒJTBC Voyage 유튜브 채널 캡처
'신과 함께: 죄와 벌'에서 주인공이 어머니를 떠올리며 격하게 우는 모습. ⓒJTBC Voyage 유튜브 채널 캡처


하지만 단순히 눈물을 동반한 슬픔이 강조된다고 해서 신파라고 단정 짓긴 어렵다. 신파는 하나의 서사 구조로, 다른 비극 서사와 구분되는 구조적 특징을 가진다. 한성대 ICT·디자인학부 영상애니메이션디자인트랙 전영돈 교수는 “신파는 감당할 수 없는 힘에 의해 주인공의 욕망이 억압되며 비극이 시작된다는 특징이 있다”고 말했다. 인물의 감정 변화가 아니라 지병이나 계급의 차이 등의 감당할 수 없는 외부의 힘에 의해 주인공이 이별한다면 이 또한 신파적 설정이라고 볼 수 있다. 이때 욕망이 억압된 주인공은 외부적 힘에 굴복하며 죄의식과 피해의식을 느낀다는 특징을 가진다. 이는 눈물을 쏟아내는 등의 과잉된 감정 표출로 이어진다. 이렇게 신파가 가지고 있는 구조적 특징과 인물형 등을 신파성이라고 한다. 이러한 신파는 대체로 △가족 간의 윤리 △배신 △탐욕 등의 소재와 결합한다. 


신파, 시대를 타고 흘러온 물결
신파라는 단어는 메이지 유신 때 서양에서 일본으로 전파된 새로운 연극 형식을 ‘신파(新派, 새로운 물결)’로 칭한 것에서 기원했다. 이후 신파극은 일제강점기 때 한국으로 들어와 일본의 신파극을 모방한 작품들이 주가 됐다. 하지만 1920년부터 일본과 구분되는 우리나라만의 신파성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당시 3·1운동 이후 문화 통치가 시작돼 한글 신문 발행이 허용되는 등 민중들은 자유를 경험했다. 하지만 일제는 동시에 신문을 검열하는 등 새로운 방식으로 민중을 억압했다. 우리 학교 동아시아학술원 이승희 교수는 “국민들은 문화 검열이라는 억압으로 좌절을 겪었지만, 문화 통치로 누린 자유로 인해 독립에 대한 열망을 갖게 됐다”며 “이러한 독립에 대한 좌절과 열망의 모순적 태도가 감정의 과잉으로 이어진 것이 우리나라 신파성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이는 주로 신파극이나 무성 영화에서 활용됐다. 1926년 발표된 나운규 감독의 <아리랑>에는 사랑하는 남녀와 여성을 겁탈하려고 하는 친일파 남성이 등장한다. 이후 3·1운동으로 잡혀가 모진 고문으로 정신이상이 온 여성의 오빠는 친일파 남성을 살해하고 일본 경찰에게 잡혀간다. 주인공이 일제 통치라는 외부적인 힘에 의해 좌절한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신파성이 드러난다. 전 교수는 “당시 우리나라의 신파극은 일제강점기를 살아가는 선조들의 애환을 반영했다”며 “대중성이 있는 흥행극이지만 식민시대의 무력감과 독립을 향한 욕망이 뒤섞인 우리만의 독특한 극”이라고 말했다. 
 

1920년대 우리나라 신파성을 반영한 작품 '아리랑'. ⓒ네이버 지식백과 캡처
1920년대 우리나라 신파성을 반영한 작품 '아리랑'. ⓒ네이버 지식백과 캡처


광복 후 근대화가 이뤄지며 영화와 드라마 등이 발달했고 신파극은 일제강점기의 잔재로 여겨지며 쇠퇴했다. 일제강점기 서민들의 애환을 반영한 독특한 특질은 사라졌지만 신파극이 가졌던 서사 구조, 좌절하는 인물형, 과잉된 슬픔 등의 신파성은 △문학 △음악 △영화와 같은 우리나라 대중문화에 넓게 녹아들었다. 나훈아의 노래 ‘사랑은 눈물의 씨앗’(1951)의 ‘사랑이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눈물의 씨앗이라고 말하겠어요’라는 구절처럼 이별을 극복하지 못한 애절한 감정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트로트 곡이 대표적이다. 
 

잠시 주춤했던 신파, 어떻게 현재까지 살아남았을까?
신파극이 사라진 후 신파성을 가장 많이 이어받은 분야는 영화다. 신파성을 활용한 영화는 서사 구조가 단순하더라도 관객의 몰입도를 높일 수 있어 상업성이 좋다. 이에 대해 우리 학교 컬처앤테크놀로지융합전공 이주현 교수는 “신파 영화는 논리나 서사 구조가 다소 일반적이더라도 관객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자극해 흥행에 유리하다”고 답했다. 2000년대 이후 천만 관객을 돌파한 20개의 영화 중 <부산행>과 <태극기 휘날리며>를 포함한 6개의 영화가 신파성을 활용했다.

신파성을 활용한 2000년대 영화들은 대부분 가족 서사와 결합한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가족 공동체 중심의 문화와 연결된다. 대표적인 것이 주인공이 외부적 억압으로 인해 좌절해 가족이 고통받고, 주인공이 희생하는 서사다. 이주현 교수는 “우리나라는 긴밀한 인간관계나 가족을 중요시하는 문화이기 때문에 가족 서사를 활용하면 대중과 쉽게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더불어 우리나라는 단일한 역사적 배경을 가졌기에 다양한 인종이나 문화적 배경을 가진 국가보다 공감대 형성에 유리하다. 주인공이 겪는 외부적 고난과 감정을 국내 관객들이 공유하기 때문이다. 1,400만 관객을 달성하며 흥행에 성공한 <국제시장>은 주인공이 한국 전쟁이라는 외부적인 상황으로 가족과 이별한 뒤 가족과 상봉하는 내용이다. 노하린(영문 22) 학우는 “직접 겪진 않았지만 한국 전쟁과 이산가족 상봉이라는 우리나라의 역사를 간접적으로 알기 때문에 가족을 만난 주인공의 감정에 더 잘 이입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나아가 신파성을 활용한 작품은 2000년대 이후 우리나라의 사회·경제적 위기 상황과 맞물려 더 많은 공감을 받았다. 전 교수는 “1997년도 외환위기 이후 국민들은 좌절을 경험했다”며 “당시 척박한 상황 속의 국민들의 고된 정서가 감정적으로 강력한 신파성을 통해 위로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신파, 과하면 독!
때로는 신파성을 활용한 작품은 많은 비판을 받기도 한다. 작품에서 논리적 전개를 무시하고 감정 과잉이라는 신파의 표면적인 특성만 편리하게 활용한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강 학우는 “<더 문>이라는 영화를 봤는데 선우의 아버지와 관련된 과거 서사가 갑자기 나오며 눈물을 자극하는 부분이 달에서 고립된 선우가 탈출하는 전반부의 내용과는 다소 동떨어지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작위적인 상황 속에서 과잉된 눈물을 흘리는 신파의 서사 전개 방식이 과거부터 반복돼 대중들에게는 뻔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이주현 교수는 “신파 영화가 주류였던 60년대와는 다르게 90년대를 넘어가며 다양한 장르와 탄탄한 서사를 가진 영화가 국내에서 창작되면서 개연성 없이 신파성만을 강조한 영화들은 구시대적이라는 평가를 받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신파가 걸어가야 할 길
신파성은 우리나라 콘텐츠 전반에 내재해 있다. 신파는 특정한 장르가 아니라 서사 구조기 때문에 다양한 콘텐츠에서 활용될 수 있다. 국내에서는 개연성 없는 감동으로 비판받는 장면이 해외에서는 오히려 흥미롭게 여겨지는 경우도 있다. 아이를 위해 희생하는 아버지와 이에 따라 울부짖는 딸의 모습을 보여준 <부산행>의 결말은 우리나라에선 신파성이 짙다고 비판받았으나, 유튜브 채널 ‘Yaboyroshi’의 리뷰 영상에서 유튜버들은 부산행의 결말을 보고 눈물을 훔친다. 이는 조회수 147만 회에 달했으며 ‘아버지의 딸의 마지막 장면은 언제나 나를 울게 만든다’는 댓글은 좋아요 약 1만 4,000개로 가장 많은 공감을 얻었다. 전 교수는 “신파는 국가를 불문하고 공감할 수 있는 다양한 소재와 결합할 수 있기에 활용도가 좋다”며 “하지만 그를 위해선 신파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탄탄한 서사 구조에 대한 고민이 선행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