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의상 기자 (kimcloth1029@skkuw.com)

중국의 외교정책 기조 변화에 따라 판다 외교의 의미도 달라져

미소외교 시기 대(對)중국 인식 개선과 중립적 태도가 필요해

에버랜드 판다월드의 최고 인기 스타 자이언트 판다(이하 판다) 푸바오의 송환이 임박해지면서 국내의 관심이 뜨겁다. 푸바오의 중국 이동 소식이 알려진 지난 1월 넷째 주 주말에는 판다월드 이용객이 전년 동기 3배 이상으로 증가한 바 있다. 하지만 이처럼 귀여운 판다는 세상에서 가장 정치적인 동물로 불리기도 한다. 푸바오는 왜 송환돼야 하는지, 판다는 왜 중국의 털보 외교관이 됐는지 자세히 살펴보자.


푸바오는 왜 중국으로 돌아가야 할까?
중국 정부와 판다가 연관된 까닭은 중국 정부에서 멸종 취약종인 판다 보존을 위해 판다를 관리하기 때문이다. 야생 판다는 자연 파괴로 인해 서식지인 대나무숲이 절반 정도 감소한 것과 1년에 최대 3일밖에 되지 않은 암컷 판다의 가임기 때문에 보전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에 중국은 1963년 국가 차원에서 판다를 보호하고 연구할 수 있는 워룽 판다 자연보호구를 지정했고 1981년 *CITES에 가입해 정부 주도로 판다를 보호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현재 타국에 대여만 가능한 판다는 해외에서 태어난 경우에도 짝짓기 적령기인 생후 48개월쯤 번식을 위해 중국으로 송환된다. 푸바오 역시 이로 인해 중국으로 송환되는 것이다.

러바오와 아이바오의 사이에서 나온 판다 푸바오. ⓒ 한겨레 캡처
러바오와 아이바오의 사이에서 나온 판다 푸바오. ⓒ 한겨레 캡처
2014년 중국이 우리나라에 대여해준 판다 러바오와 아이바오의 입국 장면. ⓒ SBS 뉴스 캡처 
2014년 중국이 우리나라에 대여해준 판다 러바오와 아이바오의 입국 장면. ⓒ SBS 뉴스 캡처 

 

판다, 중국의 외교관이 되다
고려대 사회공헌원 오지혜 교수는 “판다는 중국에서만 볼 수 있었던 토착 동물”이라며 “판다를 성스럽게 대하지 않으면 중국인의 존엄성을 훼손했다고 생각할 정도로 판다는 중국의 정체성과 다름없다”고 전했다. 이에 중국은 오래전부터 우호 약속을 대가로 판다를 타국에 대여해주는 판다 외교를 실행해 왔다. 최초의 판다 외교는 중화민국 통치 시기였던 1941년 미국의 원조에 감사를 표하기 위해 두 마리의 야생 판다를 보낸 것으로부터 시작됐다. 이러한 판다 외교는 오늘날의 중국과 같은 체제인 중화인민공화국 출범 이후에도 지속됐다. 실제로 1957년부터 1983년까지 총 24마리의 판다가 9개국에 선물로 주어졌다. 경희대 중국어학과 주재우 교수는 “중국은 판다 선물을 통해 우방과는 협력을, 강대국과는 친선을 도모했다”며 “특히 1972년 한국전쟁 이후 최초로 중국 정부가 미국에 선물로 준 판다 한 쌍은 양국 간의 긴장 완화를 의미한다”고 전했다. 이후 동물원에 보내진 판다는 귀여운 이미지와 관광객 유치 등의 이유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고, 세계 각국에서는 판다 선물 요청이 빗발쳤다. 이에 1984년 중국 최고지도자 덩샤오핑은 판다 한 마리당 월 5만 달러로 미국 임대를 허가한 것을 시발점 삼아 무상인 선물에서 유상인 임대로 판다 정책을 수정했다. 이러한 임대 정책에는 1991년 연간 100만 달러의 수수료와 임대 기간에 태어난 새끼는 중국의 재산이라는 조항이 추가됐다.

판다 외교는 한중 수교 2주년을 맞은 1994년 우리나라에까지 이륙해 왔다. 하지만 당시 임대해 온 판다인 밍밍과 리리는 IMF 외환위기에 따른 관리비 부담의 어려움으로 5년 만에 중국으로 돌아갔다. 이후 판다는 2014년 시진핑 주석의 방한 과정에서 또 한차례 우정의 징표로 보내졌다. 이때 보내진 러바오와 아이바오 사이에서 태어난 판다가 푸바오다.

1972년 중국이 미국에 선물한 판다 링링과 싱싱. ⓒThat's Shanghai 캡처
1972년 중국이 미국에 선물한 판다 링링과 싱싱. ⓒThat's Shanghai 캡처

 

판다로 살펴보는 중국의 외교정책 기조 변화
오 교수는 “중국은 21세기 들어 자국의 매력과 우호성을 증대할 수 있는 *소프트파워를 향상하기 위해 공공외교 정책의 일환으로 판다를 사용했다”고 전했다. 공공외교란 국가의 협상이나 제재 등을 통한 전통적 외교와 달리, 문화와 예술 전반에서 외국 대중들에게 직접 다가가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는 것을 목표로 하는 외교활동을 말한다.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중국학과 문흥호 교수는 “중국은 귀여운 모습으로 친근함을 주는 판다를 내세워 사람들이 중국을 우호적으로 느끼게끔 했다”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중국은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을 잇는 육해공 경제벨트인 ‘일대일로’의 연구를 촉진하기 위해 관련 주제를 연구하는 세계의 청년 학자들을 아낌없이 지원하는 등 자국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다. 마찬가지로 중국은 1990년대부터 2010년대 초까지 이른바 ‘미소외교’라 불리는 우호적이고 평화적인 외교정책 기조를 사용했다.

하지만 일관되게 미소외교를 유지하던 중국의 외교정책 기조는 2010년대 중반부터 사뭇 다른 모습을 보였다. 우리 학교 동아시아학술원 장무후이 교수는 “중국의 성장과 시 주석의 외교 방식이 맞물려 중국은 자국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강한 모습을 보이는 전랑외교를 전개했다”고 전했다. ‘전랑외교’는 2010년대 중반 중국이 국제정치에서 담론력을 얻기 위해 실행한 강경한 태도의 외교 방식을 뜻한다. 이는 지난해 4월 로이터 통신과 진행한 인터뷰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힘에 의한 대만해협 현상 변경에 반대한다고 발언한 것에 대한 중국의 반응에서 잘 드러난다. 당시 왕원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공식 기자회견에서 주둥이 다물라는 뜻의 욕설인 ‘부용치훼(不容置喙)’를 사용했고 친강 중국 외교부장 역시 란팅포럼의 기조연설에서 ‘대만으로 장난하면 불에 타 죽을 것’이라 공격적인 발언을 일삼았다. 이를 기점으로 한중관계는 냉랭해졌고 이는 지금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처럼 전랑외교가 본격화되던 시기, 중국은 징벌적 의도로 우정의 선물이었던 판다를 잇따라 본국으로 회수했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징벌적 판다 외교’라 불렀다. 오 교수는 “임대 연장 계약을 거절하고 판다를 회수하는 것은 중국의 불편한 심기를 우회적으로 드러내고, 앞으로 실질적인 경제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쇼맨십에 가깝다”고 말했다. 대표적으로 중국은 최고 경쟁자인 미국과의 판다 임대 연장 계약을 줄줄이 거절한 바 있다. 따라서 한때 15마리였던 미국 내의 판다는 현재 4마리로 줄었으며 이마저도 내년 계약이 종료된다.

1994년 중국이 우리나라에 대여해준 판다 밍밍과 리리. ⓒ 경향신문 캡처
1994년 중국이 우리나라에 대여해준 판다 밍밍과 리리. ⓒ 경향신문 캡처

 

중국의 미소외교 시대, 함께 웃음 짓기 위해서는 
하지만 주 교수는 “극심해진 경제난으로 지난해 말부터 전랑외교를 수정한 중국은 미소외교를 통해 미국을 비롯한 주변국과의 관계를 개선하려는 모습을 보인다”고 전했다. 이를 반영하듯 국제정치에서 판다는 다시금 우정과 신뢰의 상징으로 호명되고 있다. 실제로 시 주석은 지난해 11월 미국 기업인들과의 만찬에서 ‘판다는 미중 사이 우정의 사절’이었다며 우호적인 판다 외교의 재개를 암시하는 발언을 했다. 이는 지난달 22일 미국 샌디에이고 동물원에 암수 판다 한 쌍이 보내지며 본격화됐다. 또한 중국 왕이 외교부장은 지난달 6일 있었던 조태열 외교부 장관과의 통화에서 ‘양국 관계가 안정적인 발전의 궤도로 돌아가기를 희망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문 교수는 “현재 중국의 외교정책 기조가 전랑외교에서 미소외교로 변화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며 “중국이 우호적인 태도를 보일 확률이 높은 지금이 소원해진 한중관계에 변화를 줄 기회”라고 전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중국의 미소외교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와 중국의 지리적 인접성과 경제적 의존성으로 인해 중국과의 관계를 고민하는 작업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실제로 중국은 지난해 한국무역협회의 한국무역통계에서 우리나라의 수출 상대국 중 수출액 비중이 가장 큰 19.7%를 차지할 정도로 한국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이에 주 교수는 “현재 한국 국민은 중국발 미세먼지와 같이 예전부터 쌓인 부정적 이미지 때문에 판다는 호감이지만, 중국은 호감이 안 가는 상황”이라며 “중국과의 활발한 외교를 위해서는 양국 국민 간의 오해와 부정적 인식을 해소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전했다. 실제로 미국 여론조사 기관 퓨리서치센터가 지난해 7월 발간한 ‘중국의 글로벌 이미지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의 77%가 중국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주 교수는 “미래를 주도할 양국 젊은 층들이 함께 즐길 거리를 마련해 대면으로 교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장 교수는 “한국이 중국의 미소외교에 웃는 얼굴로 대응하려면 미중 반도체 경쟁에서 곤경을 겪고 있는 중국에 무역 확장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 필요하다”며 “거대한 시장을 가진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중립을 지키며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2023 정보통신산업 월별 주요 국가 수출 추이’에 따르면 대(對)중국 수출은 지난해 평균 65.1%로 1위를 기록하며 2위인 베트남(26.8%)을 2배 이상 뛰어넘었다. 이에 문 교수는 “연애와 다르게 외교는 좋은 사람과 우호적인 국가만을 대상으로 할 수 없다”며 “중국과 얽힌 과거사와 부정적 인식을 잠시 뒤로하고 주어진 상황 속에서 어떻게 최선의 외교를 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고 전했다.

 

◆CITES=△상업 △연구 △학술적 국제 거래를 금지하거나 규제하는 멸종 위기에 처한 동식물의 국가 간 교역에 관한 국제적 협약.

◆소프트파워=무력과 제재 등 물리적 힘을 나타내는 하드파워와 달리 상대방에게 강제력을 사용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외교적 목표를 획득할 수 있는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