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권위상 기자 (wisang03@skkuw.com)

향유와 사유 – 영화 <서울의 봄>

본 기사는 영화 내용을 일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11월 22일 개봉한 <서울의 봄>은 관객 1,312만 명을 동원해 지난해 개봉한 영화 중 최고 관객수를 기록하며 큰 성공을 거뒀다. 12·12 군사반란을 면밀하게 묘사한 <서울의 봄>을 두고 대중은 그날에 대해 분노했다. 그러나 역사를 그대로 기록한 것처럼 보이는 이 영화에도 사실 효과적인 고발을 위한 허구적 요소가 활용됐다. 과연 <서울의 봄>은 그날을 어떻게 기록해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았을까.

'서울의 봄' 포스터. ⓒ롯데시네마 공식 홈페이지 캡처.
'서울의 봄' 포스터. ⓒ롯데시네마 공식 홈페이지 캡처.

 

영화의 배경이 되는 12·12 군사반란은 전두환과 노태우 등의 신군부 세력이 권력을 얻기 위해 1979년 일으킨 군사 쿠데타다. 그 이후 40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이를 다룬 콘텐츠는 2005년 MBC에서 방영한 ‘제5공화국’ 정도로 드물었다. 그런 면에서 12·12 군사반란의 맥락을 소상히 다룬 <서울의 봄>은 그동안 가려져 있던 역사에 주목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영화는 신군부 세력이 12·12 군사반란을 통해 권력을 잡게 된 일대기를 그린다. 박정희 대통령이 피살당한 10·26 사태 직후 당시 보안사령관이었던 ‘전두광’은 해당 사건 조사를 위해 합동수사본부장에 임명된다. 이후 권력을 탐낸 전두광은 1979년 12월 12일 군내 사조직 ‘하나회’와 함께 군사반란을 일으킨다. 그러나 평소 군인의 본분을 중시하고 국가에 충성을 다하는 수도경비사령관 ‘이태신’은 이에 맞선다. 이렇듯 영화는 두 세력의 대립을 주축으로 전개된다. 연출을 맡은 김성수 감독은 ‘군사반란에 대항한 사람들을 부각해 반란군 세력의 잘못된 행동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제작 의도를 밝혔다. 이에 영화는 선과 악에 해당하는 인물들의 명확한 대립을 연출해 대중을 몰입시킨다.

영화는 대립 관계를 효과적으로 묘사하는 장치로 팩션의 허구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대표적인 장치 중 하나는 등장인물의 이름을 실제 인물들과 다르게 설정하는 것이다. 반란군 세력의 전두환을 전두광으로, 그와 대립하는 장태완을 이태신으로 설정한 것은 영화가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했으나 세부적인 요소는 각색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가명 사용은 실명을 유지할 경우 사료에 의해 연출이 제한된다는 한계를 넘어 효과적으로 각 인물의 성향을 부각한다. “실패하면 반역, 성공하면 혁명 아닙니까”라고 외치는 전두광을 욕망에 집어삼켜진 인물로 그린 반면 “지든 이기든 원칙대로 싸우겠습니다”는 이태신을 올곧고 정의로운 인물로 묘사하며 둘의 차이를 극대화한다. 

또한 영화는 인물의 성향을 드러낼 수 있는 허구성을 의도적으로 삽입해 대립 관계를 명확히 보여주고자 한다. 영화에서 이태신은 합리적이고 차분한 인물로 묘사된다. 그러나 사료에 따르면 이태신의 모티프가 된 장태완은 실제로 불같은 성격을 지녔다. 그가 영화 중반부에 행주대교를 건너는 반란군의 탱크를 맨몸으로 막는 장면과 군사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반란군 본부로 진격해 전두광을 포위하고 바리케이드를 홀로 넘는 장면 역시 감독의 상상력에 의해 삽입된 허구다. 이러한 허구적 장면들은 이태신의 정의로운 영웅적 면모를 부각함으로써 전두광의 악한 면모를 더욱 효과적으로 강조한다. 영화는 이러한 대립을 통해 대중이 12·12 군사반란으로 권력을 잡은 세력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게끔 의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반란군 세력이 군사반란에 성공했다는 결말로 마무리된다. 이는 한 번 일어난 역사는 결코 뒤바뀌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러나 <서울의 봄>은 작가가 명백한 역사적 사실에 자체적으로 서사를 부여하는 방식을 통해 역사적 인물과 사건을 치밀하게 고발한다. 역사를 기록하는 승자는 모든 사실을 기록하지는 않는다. 각자만의 상상력으로 역사를 채워나가며 기록된 역사 이면에 존재하는 진정한 의미를 사유하는 것, 이것이 우리가 팩션을 향유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