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권위상 기자 (wisang03@skkuw.com)

역사적 맥락을 상상함으로써 대중의 역사 인식에도 영향 미쳐

팩션은 허구가 섞인 장르임을 인지하는 태도 필요

역사는 객관성과 정확성을 최우선으로 여긴다. 그러나 여기 의도적으로 가짜가 덧붙여진 역사가 존재한다. 바로 팩션이다. 조선 후기 병자호란이라는 배경에 백성들의 이야기를 극적으로 덧붙인 팩션 드라마 ‘연인’은 최고 시청률 12.9%를 기록하며 큰 성공을 거뒀다. 이처럼 가짜를 함유한 역사로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가는 장르, 팩션에 대해 알아보자.


팩션, 새로운 문화예술 장르로 자리잡다 
팩션(faction)은 사실을 의미하는 팩트(fact)와 허구나 소설을 의미하는 픽션(fiction)의 합성어다. 이는 역사적 사실에 작가의 문학적 상상력을 가미해 역사를 재구성하는 장르다. 팩션에서 역사는 작가가 창작한 대사를 사용하거나 인물의 성격을 사료와 다르게 묘사하는 등의 방식으로 재구성된다. 기존 역사서는 사료에 기록된 명백한 사실만 다루기 때문에 해석이 제한적이었다. 이와 달리 팩션은 사료에는 담기지 못한 역사적 맥락을 작가가 주관적으로 덧붙이기 때문에 폭넓은 해석이 가능하다. 과거 팩션은 장르소설의 한 분야로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후 팩션은 미디어의 발달을 토대로 영화와 드라마 등의 영상물로 확산되며 문화예술 장르로 입지를 다졌다. 실제로 관상가라는 허구의 설정을 활용해 수양대군에 의해 일어난 계유정난을 풀어낸 <관상>은 913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큰 인기를 얻었다. 

이러한 팩션은 상상력이 접목된 장르라는 점에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퓨전사극과 유사하지만 분명한 차이가 있다. 실제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해 역사 고증에 신중을 가하는 팩션과 달리 퓨전사극은 배경만 과거일 뿐 역사적 사실과 무관한 인물과 사건을 중심으로 한다. 조선시대 가상의 왕과 무녀의 로맨스를 다룬 드라마 ‘해를 품은 달’ 등이 대표적인 퓨전사극이다. 이에 대해 가톨릭대 국사학과 기경량 교수는 “팩션은 역사의 재현이라는 형식적 틀을 가지고 있기에 인물이나 대사 등은 시대적 특성을 반영한다”며 “반면 퓨전사극의 경우 등장인물조차 현대극과 다를 바 없는 경우가 많기에 사극과는 거리가 멀다”고 말했다. 


그동안 드리웠던 역사를 조명하다
팩션은 사료가 담지 못하는 당시의 분위기나 인물 간의 관계를 작가의 상상력으로 구현해 대중이 역사에 몰입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이에 대해 남서울대 교양대학 오혜진 교수는 “역사의 서술 공간에는 누락된 부분이 있기 마련”이라며 “기존의 역사에 비어 있는 공간을 서술하는 팩션은 역사의 이면을 밝혀내는 하나의 새로운 접근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답했다. 팩션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는 ‘광해군 일기’에 기록되지 않은 15일간의 기록을 작가의 주관을 더해 각색한 작품이다. 이는 위협에 노출된 ‘광해’의 대역이 왕을 대리한다는 허구적 설정을 활용했다. 특히 영화는 폭군으로 기록된 광해군의 인물형에 백성을 아끼는 성군의 측면을 부가해 그를 양면성 있는 인물로 재조명하기도 했다. 이는 역사에 대한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그들이 스스로 역사를 재평가하게 만드는 효과를 낳았다. 이에 대해 김지호(행정 18) 학우는 “영화를 본 뒤 광해군의 새로운 면모에 관심이 생겨 조사하게 됐다”며 “이를 통해 대동법 시행과 같은 실질적 정책도 마련한 왕이었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됐다”고 말했다.

한편 팩션은 그동안의 역사가 주목하지 않았던 숨겨진 인물을 드러내기도 한다. 지난 10일 종영된 팩션 드라마 ‘고려 거란 전쟁’의 경우 실제 전쟁에서 뛰어난 업적을 세운 서희나 강감찬에 비해 크게 주목받지 못한 ‘양규 장군’을 대중에게 알렸다. 양규 장군은 2차 고려-거란 전쟁에서 고려의 승리에 혁혁한 공을 세웠으나 그에 대한 사료는 『고려사』 속 2개월 분량에 그치며 그동안 대중에게 알려지지 못했다. 이에 ‘고려 거란 전쟁’은 제한적으로 서술된 사료에 작가의 극적인 상상력을 더해 양규 장군에게 서사를 부여하고 영웅적인 면모를 부각했다. 대표적으로 양규 장군이 적군을 물리치기 위해 끝까지 저항하다 선 채로 죽음을 맞이하는 연출은 실제 사료에 제시된 내용은 아니나 작가의 상상력이 덧붙여진 내용으로써 양규 장군의 충성심을 강조했다. 이는 대중으로 하여금 애국심을 지닌 양규 장군을 재조명하게 만드는 효과로 이어졌다.
 

'고려 거란 전쟁' 포스터. ⓒKBS 고려거란전쟁 공식 홈페이지 캡처
'고려 거란 전쟁' 포스터. ⓒKBS 고려거란전쟁 공식 홈페이지 캡처

 

게임을 통해 팩션의 지평을 넓히다
지금까지 소설과 영상물을 통해 대중화된 팩션은 최근 뉴미디어를 활용한 새로운 콘텐츠를 통해 풍부하게 향유되고 있다. 특히 팩션 게임은 소설과 영상 등 시각적인 것에 머물렀던 과거와 달리 대중의 직접적인 수용을 이끌어 그들이 현대적으로 팩션을 계승할 수 있게 했다. 대표적인 예시로는 ‘진삼국무쌍’이 있다. 진삼국무쌍은 팩션 소설인 『삼국지연의』를 바탕으로 한 3차원 액션 게임이다. 플레이어는 『삼국지연의』 속 등장인물을 본인의 캐릭터로써 조종하며 적을 물리치는 방식으로 게임을 진행한다. 이때 플레이어는 ‘적벽대전’과 같은 실제 전투를 3차원으로 실감나게 구현한 배경에 본인의 캐릭터를 참여시킴으로써 본인이 마치 『삼국지연의』 속 실제 장수가 된 것 같은 몰입감을 느낀다. 강용희(경제 20) 학우는 “역사 속 인물인 조조와 대화하는 등의 경험을 통해 마치 내가 『삼국지연의』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처럼 팩션 게임을 통해 대중은 팩션 서사에 직접 참여하는 방식으로 더욱 생생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진삼국무쌍8' 게임 화면. ⓒSTEAM 진삼국무쌍 공식 홈페이지 캡처​
'진삼국무쌍8' 게임 화면. ⓒSTEAM 진삼국무쌍 공식 홈페이지 캡처​

 

나아가 팩션 게임은 작가의 상상력을 일방적으로 수용해야 했던 과거와 달리 대중 스스로가 역사적 상상력을 발휘해 본인만의 서사를 제작할 수 있게 발전했다. 팩션 게임 ‘문명’은 이것의 대표적 예시다. 이는 플레이어가 여러 시대에 걸쳐 존재했던 실제 역사 속의 주요 인물과 문명을 직접 선택한 후 타 문명과 경쟁하며 세계를 정복하는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플레이어는 스스로 기원전 인물인 알렉산더 대왕이 돼 국가를 발전시키며 11세기 인물인 칭기즈 칸과 영토를 빼앗기 위한 경쟁을 벌일 수 있다. 본인의 전략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는 점에서 팩션 게임은 자신만의 새로운 역사적 서사를 전개할 수 있다. 이에 대해 기 교수는 “역사가 팩션 콘텐츠로 소비될 경우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재미가 극대화될 수 있다”며 “특히 지나간 역사는 바꿀 수 없기에 끊임없이 가상의 상황을 가정할 수 있는 시뮬레이션 게임과 팩션은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평했다. 


팩션은 팩션일 뿐 팩트가 아니다
팩션은 역사성과 오락적인 성격을 동시에 띤다는 점에서 역사 서술 방식에 있어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그러나 사실과 허구가 공존하는 팩션의 특성상 역사적 사실을 위반하는 허구성의 수준은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조선 태종 시대를 배경으로 악령과 맞서 싸우는 내용을 담은 팩션 드라마 ‘조선구마사’에선 사료와 달리 태종이 백성을 무자비하게 죽이는 학살자로 묘사됐다. 하지만 역사적 맥락과 어긋난다는 논란이 일었고 결국 방영 2회 만에 폐지됐다. 이에 현재 팩션 제작자들에게는 허구적 요소를 덧붙일 경우 신중한 자세가 요구되고 있다. 더불어 대중에게 해당 콘텐츠에 허구가 포함됐다는 사실을 알리는 효과적인 장치 마련도 필요한 부분이다. 오 교수는 “팩션은 치밀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는 장르기에 역사 왜곡 문제는 늘 경계해야 한다”며 “특히 작가의 상상력이 발휘되는 부분에서는 충분히 독자들을 설득할 수 있는 내용이 삽입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더불어 팩션을 소비하는 대중이 스스로 허구를 구분하기 위해 노력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팩션은 의도적인 허구를 활용해 역사를 재구성한다는 부분에서 창작의 영역에 해당한다. 따라서 이를 향유하는 대중에게도 지나친 허구적 요소를 스스로 경계할 의무가 있다. 이에 대해 기 교수는 “팩션이 사실로만 이뤄졌다는 생각을 경계하는 태도가 중요하다”며 “더불어 콘텐츠 소비 이후에는 실제 역사를 확인하는 행위로 이어지는 자세 또한 필요하다”고 답했다.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게임 내에서 정해진 전략을 활용해 타인과 경쟁하는 인터넷 게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