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사회적 불안이 크리처물을 통해 드러나기도 해

다양한 주제의식과 캐릭터성 담겨야

넷플릭스 시리즈 ‘스위트홈’은 지난 2020년 12월 8일 공개 후 4일 만에 전 세계 70여개 국에서 넷플릭스 시리즈 인기 순위 TOP 10에 이름을 올렸다. 특히 운동에 대한 집착으로 탄생해 프로틴을 찾는 근육 괴물과 탈모 콤플렉스로 탄생한 털보 괴물 등 다양한 크리처를 선보이며 호평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지난해에는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경성크리처’도 공개되며 크리처물이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다. 징그러운 괴물들이 세상을 사로잡은 이유는 무엇일까?

크리처, 무엇이고 어디서 왔을까
‘크리처(creature)’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생명체 혹은 인간과는 다른 존재를 뜻한다. 우리가 흔히 아는 좀비나 괴물 외에도 ‘에이리언’ 같은 비인간형 생명체, ‘킹콩’ 같은 괴수류들, <쥬라기 공원> 속 공룡처럼 현재에는 존재하지 않는 과거의 생명체를 복원한 것들 모두 크리처에 포함된다. 이러한 크리처가 등장하는 작품을 통틀어 ‘크리처물’이라고 한다. 크리처물의 역사는 1930년대 미국 영화사 ‘유니버셜 스튜디오’가 제작한 <드라큘라>와 <프랑켄슈타인>으로 시작한다. 이후 1950년대에 원자력 발전과 우주 탐사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자 관련 영화가 폭발적으로 제작됐다. 이에 괴생명체와 우주외계생명체를 주축으로 하는 크리처물도 함께 발전했다. 이후 1970~80년대에는 CG 기술이 발전하면서 <죠스>와 <쥬라기 공원> 등 더 섬세한 크리처를 구현한 영화가 등장했다. 크리처물의 대표적인 서사구조는 등장인물들이 크리처로 인한 재난 상황에서 생존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이다. 우리 학교 영상학과 안상혁 교수는 “대부분의 크리처물에서는 핵실험과 바이러스 등의 이유로 인간을 해하는 크리처가 등장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고 설명했다. 이 경우 크리처가 인간을 해하면서 신체가 절단되고 다량의 피가 나오는 등 잔인한 장면을 다수 포함해 제한상영가로 선정되기도 한다.
 

'스위트홈' 속 괴물의 모습. ⓒ'스위트홈' 예고편 캡처
'스위트홈' 속 괴물의 모습. ⓒ'스위트홈' 예고편 캡처


징그러운 괴물들을 자꾸 보게 되는 이유는
크리처물은 상상 속 크리처를 구현한 화면으로 관객들을 사로잡는다. 크리처물의 공통점은 *애니매트로닉스 같은 특수 효과로 구현한 허구의 크리처가 등장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관객들은 상상 속 괴물과 마주하고 공포에 압도당하게 된다. 크리처가 등장하는 환경 또한 관객들의 흥미를 자극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쥬라기 공원> 속 황량한 섬과 <에이리언>의 깊은 우주처럼 고립된 장소는 등장인물들의 탈출 경로를 제한해 관객의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영남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안의진 교수는 “크리처물은 크리처의 존재를 극대화하는 세계관을 활용해 다른 공포 장르보다 관객들에게 공포감을 효과적으로 전달한다”고 설명했다. 

크리처물을 관람하는 관객들은 크리처가 위협적이라고 믿기에 공포감을 느낀다. 동시에 스크린 속 허구의 크리처가 자신을 해하지 않을 것이라고 인지하면서 공포를 즐거움으로 경험할 수 있다. 안의진 교수는 “공포 자극으로 아드레날린이나 도파민 같은 신경전달물질이 분비되면 스트레스나 긴장감 완화에 도움이 된다”며 “이러한 맥락에서 크리처물은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이자 훌륭한 공포예술 장르”라고 설명했다.


사회적 불안을 먹고 커지는 크리처물
크리처물에 등장하는 괴물의 이미지에는 현실 세계에 대한 사회적 관점이 반영되기도 한다. 일본 괴수물의 시초이자 대표적인 일본 크리처 영화인 <고지라>에는 당대 핵폭탄에 대한 일본 사회의 두려움이 담겨있다. <고지라>는 수중 파충류에서 육상생물로 진화 과정에 있던 생물이 인류의 수중 핵폭탄 실험에서 나온 방사능에 노출되면서 거대한 괴수로 변해 일본 도시를 습격하는 이야기다. 다나카 도모유키 감독은 <킹콩> 같은 괴수 영화에 핵폭탄의 공포를 합쳐 방사능으로 돌연변이가 된 괴물을 그린다면 그 공포를 더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 거라 판단했다. 실제로 <고지라>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원폭 투하를 경험했던 일본인들에게 공포감을 효과적으로 전달해 28편의 장편 시리즈로 제작되며 큰 인기를 끌었다.
 

괴수류 크리처에 해당하는 '고지라'의 모습. ⓒ'고지라' 예고편 캡처
괴수류 크리처에 해당하는 '고지라'의 모습. ⓒ'고지라' 예고편 캡처

 

우리나라의 크리처물에서도 이러한 경향을 엿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팬데믹 당시의 사회적 불안감을 반영한 크리처물이 등장했다. 2015년에 개봉해 1,0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반한 <부산행>이 대표적이다. 윤덕환 문화심리박사는 “<부산행> 같은 좀비물의 흥행에는 2015년 당시 메르스의 여파로 만연했던 타인에 대한 불안감이 영향을 미쳤다”며 “팬데믹으로 낯선 바이러스가 누구에게나 전염될 수 있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이러한 크리처물이 급증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한국의 크리처물이 전 세계의 관심을 받기까지
현재 전 세계적인 관심을 받는 한국의 크리처물이 처음부터 인기를 누렸던 것은 아니다. 부족한 CG 기술 및 제작비 등의 이유로 인기를 끌지 못했던 한국 크리처물은 2006년 봉준호 감독의 <괴물>을 통해 주목받기 시작했다. 한강의 물방개를 기반으로 한 독자적인 크리처와 환경오염 등 사회문제를 녹여낸 탄탄한 스토리라인 덕분이었다. 그러나 이후 개봉된 <디 워>와 <차우>, <7광구> 등 다양한 크리처물은 모두 이전의 관습을 모방했다는 혹평을 면치 못했다. 삼육대 글로벌한국학과 음영철 교수는 “많은 제작자본이 필요한 크리처물 특성상 우리나라의 낮은 제작자본으로는 공포 표현에 한계가 있어 관객의 흥미 요소를 자극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한계로 지적되던 크리처 구현은 2013년 VFX 기술을 활용한 영화 <미스터 고>가 개봉되면서 그 토대를 마련했다. <미스터 고>의 고릴라 크리처 구현을 담당했던 ‘덱스터 스튜디오’는 자연스러운 움직임과 수준 높은 디지털 털을 구현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Zelos(젤로스)’라는 VFX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이를 통해 한국 VFX 스튜디오 최초로 할리우드 최고 VFX 학술 컨퍼런스인 ‘DIGIPRO 2013’에 참여해 한국 VFX 기술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러한 VFX 기술 발전에 OTT 플랫폼의 재정적 지원이 더해지면서 본격적으로 한국의 크리처물이 제작되기 시작했다. 특히 넷플릭스 시리즈인 ‘킹덤’과 ‘스위트홈’은 한국적 문화 요소를 녹여내 호평을 받았다. ‘킹덤’은 조선이라는 역사적 배경에 더불어 기존의 느린 좀비와 달리 생동감 넘치는 빠른 좀비를 통해 ‘K-좀비’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 특히 임진왜란 직후라는 배경 위에 좀비물을 그려내 독보적인 스토리라인을 선보였다. 이정희 미디어평론가는 “‘킹덤’은 식상한 콘텐츠로 여겨지는 좀비물을 활용해 역사·문화적으로 새로운 시도를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분석했다. 넷플릭스 공개 후 4일 만에 전 세계 70여개 국에서 넷플릭스 시리즈 인기 순위 10위 안에 든 ‘스위트홈’ 또한 개인사와 가족, 친구와의 연대감 등을 깊게 다룬다는 점에서 한국적인 서사를 보여준다. 음 교수는 “한국의 크리처물은 약자들이 연대해 위기 상황을 이겨내는 공동체주의를 그려낸다는 점에서 서양과 차별화된다”고 설명했다.
 

'킹덤'  속 좀비들이 한복을 입은 모습. ⓒ넷플릭스 홈페이지 캡처
'킹덤' 속 좀비들이 한복을 입은 모습. ⓒ넷플릭스 홈페이지 캡처


크리처물, 잔인함 그 이상을 위해
대부분의 크리처물은 잔인한 크리처를 그려내는 공포물에 한정된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크리처물은 다양한 캐릭터성을 띤 크리처를 포괄한다. <E.T.>처럼 인간의 친구로서 호의적인 크리처가 등장하기도 하고, <아바타>처럼 그들만의 세계를 살아가기도 한다. 또한 일각에서는 일부 크리처물이 메시지 없이 인체가 훼손되는 잔인한 장면만 그려낸다는 비판이 나온다. 그러나 크리처물은 잔인함 속에서도 등장인물 간 관계와 사회적 메시지를 담아내 다양한 주제의식을 전달하기도 한다. 평소 크리처물을 애청하는 전혜민(유동 23) 학우는 “크리처가 등장하는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인물을 보면 분노하고, 반대로 희생적인 인물을 보면 연대 의식을 느낀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음 교수는 “악의 상징인 크리처로 발생한 위기 상황에서 선하다고 여겨졌던 인물의 위선이 드러나며 사회의 모순을 표현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안상혁 교수 또한 “단순히 목적 없이 잔인한 작품보다는 다양한 주제의식을 전달하는 크리처물이 창작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애니매트로닉스=특수 효과 기술 중 하나로 영화 촬영 시 로봇을 만들어 시각효과를 구현하는 기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