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파인애플의 단단하고 거친 껍데기를 처음 본 사람이 그 속에 있는 노랗고 부드러운 과육
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껍데기를 벗기고 그 속에 숨겨져 있던 속을 만났
을 때야 비로소 우리는 새로운 파인애플을 만날 수 있다. 그로테스크 예술도 마찬가지다.
겉모습은 사람들에게 공포로 다가오지만, 사실 그것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진짜 그로테스
크의 의미는 무엇일까. 예술 속에 녹아든 그 아름다움을 조명한다.

ⓒ한효석

그로테스크 예술의 탄생
그로테스크(grotesque)라는 단어는 그로테(grotte)라는 이탈리아어에서 유래했다. 이 단어는 동굴과 발굴을 뜻하는데, 유물이나 유적이 발견된 후 거기에 나타나는 그림들을 지칭하는 말로도 쓰였다. 그로테스크가 지금의 의미를 갖게 된 것은 15세기 말 이탈리아에서 발굴된 유적의 벽과 천장에서 인간 및 식물이 결합한 형태나 들짐승과 새가 결합한 모습 같은 충격적인 이미지가 발견된 이후다. 이 충격을 매력으로 느낀 미술가들을 통해 유럽 전역에 이러한 미술 양식이 알려졌고, 이것이 그로테스크 예술의 시초가 됐다.
15세기, 그로테스크 예술은 인간의 이상을 중시했던 르네상스 시대의 전통적인 미학 개념을 벗어났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낭만주의 시대가 되면서 예술가들은 감각현상에 주목했고, 그 결과 그로테스크 예술은 본격적으로 하나의 연구 분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예술비평가가 그로테스크 예술을 단순한 부조화나 조잡한 형태로만 이해하며 그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놓지 않았다. 이렇게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던 그로테스크 예술은 20세기에 스위스의 학자 볼프강 카이저를 중심으로 긍정적 측면이 조명되기 시작했다. 카이저는 갑작스러움과 놀라움을 핵심 요소로 바라보고 부조리를 중요한 측면으로 제시하면서 그로테스크 예술의 개념을 확립했다. 그리고 추상적 표현을 중요하게 여긴 후기 표현주의와 함께 세계에 본격적으로 알려졌고 국내에도 문학 작품이나 미술 작품을 중심으로 소개되기 시작했다. 현재 그로테스크라는 말은 가장 대중적으로 ‘이질적인 것의 결합’을 뜻하며 그로테스크 예술은 불일치함으로 발생하는 괴기스러움과 서로 다른 감정에서 나타나는 이미지를 표현한 예술을 말한다.

공포와는 달리 메시지 담아
그로테스크는 단순한 공포가 아니다. 괴기함을 다룰 수 있다는 점에서는 공포와 소재가 겹칠 수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이질적인 것을 다루는 예술인 것이다. 게다가 단순히 불쾌한 정서적 반응애 불과한 공포에 비해 그로테스크 예술은 그 안에 작가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수용자들이 작품을 보고 받을 충격에 자신의 메시지를 담는 것이다. 여러 개의 다른 형상을 하나의 이미지에 담으면서 대립에서 느껴지는 존재의 근원적 문제를 다루거나 뒤틀리고 뒤섞인 이미지로부터 인간 사회의 문제를 고발하려는 경우도 있다. 여기에 그로테스크 예술만의 의의가 있고 아름다움이 있다. 남인숙 미술평론가는 “지금까지 억압받거나 조명되지 않았던 소재를 통해 작가의 예술관을 조명할 수 있다”며 그로테스크 예술을 시대를 표현하는 하나의 방법으로도 바라봤다.
작가의 메시지는 그로테스크 예술 속에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데 특히 시각적 효과가 부각되는 미술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미술 작가들은 정상적이지 않은 형태를 화면 위에 구성함으로써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한다. 서로 다른 개체를 하나의 이미지에 융합하거나 하나의 개체를 형태로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형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문학 △연극 △영화에서도 그로테스크를 엿볼 수 있다. 문학 작품의 경우에는 그로테스크가 작품의 내용에 녹아드는 경우가 많다. 그 내용에서 이질적인 것들이 충돌하면서 그 안에서 작가가 말하려는 주제가 드러나는 것이다. 혹은 소설 자체가 죽음 따위의 괴의한 소재를 가지고 진행되면서 그로테스크를 담는 예도 있다. 연극이나 영화는 소재 자체의 괴의함을 통해 그로테스크를 표현하기도 하지만, 배경과 내용의 괴리를 통해 주제를 강조함으로써 이에 다가가기도 한다. 이 외에 사진 작품이나 만화에도 작가의 의도를 표현하기 위해 그로테스크적 장치가 사용되는 경우가 있다.

 

그로테스크(grotesque)라는 단어는 그로테(grotte)라는 이탈리아어에서 유래했다. 이 단어는 동굴과 발굴을 뜻하는데, 유물이나 유적이 발견된 후 거기에 나타나는 그림들을 지칭하는 말로도 쓰였다. 그로테스크가 지금의 의미를 갖게 된 것은 15세기 말 이탈리아에서 발굴된 유적의 벽과 천장에서 인간 및 식물이 결합한 형태나 들짐승과 새가 결합한 모습 같은 충격적인 이미지가 발견된 이후다. 이 충격을 매력으로 느낀 미술가들을 통해 유럽 전역에 이러한 미술 양식이 알려졌고, 이것이 그로테스크 예술의 시초가 됐다. 15세기, 그로테스크 예술은 인간의 이상을 중시했던 르네상스 시대의 전통적인 미학 개념을 벗어났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낭만주의 시대가 되면서 예술가들은 감각현상에 주목했고, 그 결과 그로테스크 예술은 본격적으로 하나의 연구 분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예술비평가가 그로테스크 예술을 단순한 부조화나 조잡한 형태로만 이해하며 그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놓지 않았다. 이렇게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던 그로테스크 예술은 20세기에 스위스의 학자 볼프강 카이저를 중심으로 긍정적 측면이 조명되기 시작했다. 카이저는 갑작스러움과 놀라움을 핵심 요소로 바라보고 부조리를 중요한 측면으로 제시하면서 그로테스크 예술의 개념을 확립했다. 그리고 추상적 표현을 중요하게 여긴 후기 표현주의와 함께 세계에 본격적으로 알려졌고 국내에도 문학 작품이나 미술 작품을 중심으로 소개되기 시작했다. 현재 그로테스크라는 말은 가장 대중적으로 ‘이질적인 것의 결합’을 뜻하며 그로테스크 예술은 불일치함으로 발생하는 괴기스러움과 서로 다른 감정에서 나타나는 이미지를 표현한 예술을 말한다.그로테스크는 단순한 공포가 아니다. 괴기함을 다룰 수 있다는 점에서는 공포와 소재가 겹칠 수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이질적인 것을 다루는 예술인 것이다. 게다가 단순히 불쾌한 정서적 반응애 불과한 공포에 비해 그로테스크 예술은 그 안에 작가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 수용자들이 작품을 보고 받을 충격에 자신의 메시지를 담는 것이다. 여러 개의 다른 형상을 하나의 이미지에 담으면서 대립에서 느껴지는 존재의 근원적 문제를 다루거나 뒤틀리고 뒤섞인 이미지로부터 인간 사회의 문제를 고발하려는 경우도 있다. 여기에 그로테스크 예술만의 의의가 있고 아름다움이 있다. 남인숙 미술평론가는 “지금까지 억압받거나 조명되지 않았던 소재를 통해 작가의 예술관을 조명할 수 있다”며 그로테스크 예술을 시대를 표현하는 하나의 방법으로도 바라봤다.작가의 메시지는 그로테스크 예술 속에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데 특히 시각적 효과가 부각되는 미술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미술 작가들은 정상적이지 않은 형태를 화면 위에 구성함으로써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한다. 서로 다른 개체를 하나의 이미지에 융합하거나 하나의 개체를 형태로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형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문학 △연극 △영화에서도 그로테스크를 엿볼 수 있다. 문학 작품의 경우에는 그로테스크가 작품의 내용에 녹아드는 경우가 많다. 그 내용에서 이질적인 것들이 충돌하면서 그 안에서 작가가 말하려는 주제가 드러나는 것이다. 혹은 소설 자체가 죽음 따위의 괴의한 소재를 가지고 진행되면서 그로테스크를 담는 예도 있다. 연극이나 영화는 소재 자체의 괴의함을 통해 그로테스크를 표현하기도 하지만, 배경과 내용의 괴리를 통해 주제를 강조함으로써 이에 다가가기도 한다. 이 외에 사진 작품이나 만화에도 작가의 의도를 표현하기 위해 그로테스크적 장치가 사용되는 경우가 있다.

 

한효석 作 <불평등의 균형>


그로테스크 예술의 봄날
다양한 형식의 작품을 통해 그로테스크 예술이 대중들과 만나는 길의 폭은 넓어졌고 더 많은 형태로 발전하고 있다. 연극계에서는 그로테스크를 소재로 한 작품들이 만들어지고 있고 이질성을 통해 주제를 말하는 소설가들도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아직 많은 사람이 예술의 내면을 보지 않고 표면에만 집중하는 경우가 있고, 이는 그로테스크 예술을 예술이 아닌 단순한 공포에 머무르게 한다. 그러나 그로테스크 예술은 미술 사조의 변화를 등에 지고 점차 현대 미술의 하나의 사조로 자리 잡고 있으며 많은 예술가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특히 이질적인 존재라는, 소외돼 왔던 세계를 예술로 바라본다는 점에서 주목받는다. 게다가 여러 가지 예술 장르에 그 형태가 결합하면서 다양한 측면으로 그로테스크 예술이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그로테스크 예술. 공포라는 오해와 두려움이라는 편견에 꽁꽁 둘러싸여 본연의 아름다움을 발하지 못하고 있는 하나의 보석이다. 그로테스크 예술의 겉모습에 연연하다가는 그 속에 담긴 작가의 메시지를 볼 수 없다. 그로테스크 예술을 통해 형식 속에 담긴 내면의 아름다움을 발견해내는 즐거움을 느껴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