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형정 기자 (hj01465@skkuw.com)

1987년 1월 15일 자 <중앙일보>에 ‘警察에서 조사받던 大學生 “쇼크死”’(경찰에서 조사받던 대학생 “쇼크사”)라는 제목의 기사가 짤막하게 실렸다. 해당 기사가 나간 후, 사건을 축소하여 보도하라는 정부의 보도지침이 내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언론들은 수사기관의 가혹 행위로 인한 억울한 죽음에 대해 계속해서 파헤쳤다. 『특종 1987 - 박종철과 한국 민주화』에 따르면 이 보도는 당시 정권에 대한 국민의 민주화 열망을 촉발시켰고, 6월 항쟁의 기폭제가 되었다고 한다. 이 사건은 언론의 탐사보도가 없었더라면 그냥 묻힐 수도 있었던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이다.
최근 언론이 살아있는 권력을 대상으로 비리를 밝혀낸 또 다른 보도가 있다. 바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보도다. 지난해 <TV조선>의 미르·K스포츠 재단 의혹 보도를 시작으로, <한겨레>에서도 최순실 관련 보도가 이뤄졌다. <JTBC>는 태블릿 PC 입수를 통해 최 씨의 국정 농단 증거를 제시했다. 이 보도들은 모두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 구속되기까지 많은 영향을 미쳤다.

사건의 본질을 보도해야 하는 언론
위의 보도처럼 언론은 사건의 본질을 파헤쳐 대중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이화여대 송상근 언론인 초빙 교수는 “직접 민주주의가 불가능한 현대 사회에서 언론은 현장과 시민을 연결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라고 전했다. 그런데 이때 대중에게 사건의 ‘본질’을 전달하는 것은 단순히 객관적인 사실을 나열하는 것에만 그치면 안 된다. 『비욘드 뉴스, 지혜의 저널리즘』의 저자인 미첼 스티븐스는 ‘5I’ 즉, 교양 있고(informed), 지적이며(intelligent), 흥미롭고(interesting), 통찰력 있으며(insightful), 해석적인(interpretive) 보도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권력형 비리 사건 보도의 경우 사건 자체의 전달뿐만 아니라 △비리 당사자가 누구인지 △어떤 과정을 통해 비리가 생겼는지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예방책은 무엇인지 등을 위주로 다뤄 줘야 한다.

일러스트 | 유은진 기자 qwertys@

언론이 전하는 보도, 과연 본질적인가
하지만 우리나라 언론이 항상 사건의 본질만을 전달했던 것은 아니다. 자극적이고 사건의 핵심을 잊게 하는 ‘곁가지 보도’들도 쏟아져 나왔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사건에서 <TV조선>은 최 씨가 박 전 대통령의 의상을 관리하는 영상을 특종으로 보도했다. 영상에는 대통령이 공식 석상에서 입을 의상을 민간인인 최 씨가 확인하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이 보도는 최 씨가 국가적 극비사항인 대통령의 순방 일정을 알고 있음을 짐작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최 씨가 들고 있는 가방이 명품가방임을 언급하거나 패딩의 가격대를 말하는 등 흥미유발을 위한 내용도 함께 보도했다. 또한 최 씨가 청와대 행정관에게 한 행동을 ‘오만한 모습으로’, ‘하대하듯 부리는’ 이라고 표현하는 등 말초를 자극하는 멘트가 다소 많았다. 이외에도 많은 언론은 자택 압수수색 당시 명품으로 가득 찬 신발장에 주목하는 등 인물의 사생활과 같은 흥미위주의 사실에 집중하기도 했다. 지난달 21일 박 전 대통령의 검찰 조사 보도에서는 그의 점심 메뉴 관련 보도가 포털 사이트 검색어 순위에 올랐다. 이에 대해 김나우(신방 15) 학우는 “대통령의 탄핵이 경제나 외교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에 관한 내용은 찾아보기 힘들다”며 “컨트롤타워의 부재 상황에서 나라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는 다루지 않은 채 흥미유발 기사만 많이 만들어내는 것 같다”고 답했다. 곁가지 보도를 하는 현 언론에 대해 우리 학교 금희조(신방) 교수는 “언론은 돈만 버는 조직이 아니기 때문에 본질적인 부분에 대해 심도 있게 보도를 해줄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흥미 위주의 곁가지 보도뿐만 아니라 기사에 등장한 목소리가 지나치게 편향적인 것도 사건의 본질을 왜곡시킨다. 기자는 취재원으로부터 정보를 얻어 기사를 쓴다. 이때 특정 계층이나 인물에게서만 정보를 얻으면 기사가 한쪽으로 치우칠 확률이 높다. 송 교수의 논문 「취재원 사용의 원칙과 현실 : 세월호 보도를 중심으로」에 따르면 세월호 관련 뉴스에서 취재원으로 가장 많이 등장한 집단은 ‘사고 수습 및 대책을 마련하는 부처(정부)’에 속한 취재원(30.9%)이었다. 일반 국민과 피해자 집단은 전체 취재원 중 1/3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처럼 접하기 쉬운 정부의 보도 자료나 브리핑을 그대로 기사화하는 경우가 문제됐다. 세월호 사건 당시 정부의 자료를 의심 없이 받아든 언론은 ‘학생 전원구조’라는 오보를 내보내 대중으로부터 많은 질타를 받았다. 또한 침몰 원인에 대해 제대로 분석하지 않았기에 언론에 대한 대중들의 실망감은 커졌다.

본질전달, 왜 어려울까
이처럼 언론이 본질을 다루지 않는 모습은 다양한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특히 다양한 매체의 등장으로 보도경쟁이 심해졌고, 언론이 외부의 영향력으로부터 독립적이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심화되는 경향이 있다.
매체의 수가 많아지고 인터넷을 통해 기사를 빠르게 낼 수 있게 되면서 보도경쟁이 과열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2016 언론수용자 의식조사(이하 언론수용자 의식조사)’에 따르면 2011년에 비해 모바일 인터넷 이용률은 42.6% 증가한 반면 종이신문의 이용률은 23.9% 감소로 큰 감소량을 보였다. 이는 언론사가 독자층이 몰려있는 온라인상의 경쟁에 뛰어들 수밖에 없게 한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언론은 △내실이 없는 단독 보도 △사실 확인이 되지 않은 보도 △흥미위주의 보도 등을 내보내기도 한다. 특히 기사가 ‘단독’ 보도일 경우 포털 사이트의 메인 뉴스로 뽑힐 확률이 높아 기사의 클릭 수를 올릴 수 있고 이에 따라 광고 수익도 증가한다. 따라서 중요하지 않더라도 새로운 사실이 들어가기만 하면 기사 제목에 ‘단독’을 붙여 기사를 내보내는 것이다. 실제로 <채널A> 퇴임 기자인 이명선 씨의 다음 스토리 펀딩 ‘나는 왜 종편을 떠났나’에 따르면, <채널A>의 데스크는 포털 사이트에 검색해서 나오지 않는 정보라면 가치가 떨어지는 기사라도 ‘단독 보도’로 내보냈다고 한다.
언론이 외부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 또한 기사의 본질 전달을 힘들게 한다. 언론수용자 의식조사에 따르면 언론사는 매출액 구조에서 광고·협찬비가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데, 주요 수익원이 재벌과 대기업 등의 광고주이기 때문에 자본권력에 의존적일 수밖에 없다. 가령 언론에서 기업의 횡령 문제를 다루려고 할 때, 해당 기업으로부터 쓰지 말아 달라는 압박이 들어오면 이를 외면하기가 힘들다. 자본권력뿐만 아니라 정치권력 역시 언론이 독립적인 상태에 있는 것을 방해한다. 물론 과거 언론탄압 시절의 보도지침처럼 강압적인 힘을 가하는 형태는 아니다. 하지만 공영방송의 경우 여전히 정치권력의 영향을 받고 있다. <기자협회보>의 강아영 기자는 “공영방송인 KBS와 MBC는 이사와 사장을 선임할 때 정치권력의 입김이 많이 작용한다”며 “윗선에서 정권의 눈치를 보기 때문에 정권에 불리한 방송을 편성하지 않는다거나 이에 반대하는 언론인들을 해임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대중과 멀어지고 있는 언론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지난해 2월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언론에 대한 신뢰도는 조사대상 26개국 가운데 23위였다. 본질에 집중하지 않고 한 집단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것에 치중하거나 자극적인 내용을 강조하는 모습을 보이자 대중들의 언론에 대한 신뢰도가 낮아지고 있는 것이다. 대중과 언론의 사이가 멀어지고 있는 이 시점에서 언론은 각종 노력을 통해 본질을 보도하는 것에 힘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