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뇌가 달라졌어요
우리 뇌가 달라졌어요
  • 한연수 기자
  • 승인 2019.10.07 21:49
  • 호수 16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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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풀리는 세상

기억상실증, 완치는 불가능해
서번트 증후군, 우뇌의 과한 활동으로 발생해

 

영화 <첫 키스만 50번째>의 주인공 헨리는 우연히 루시를 만나 첫눈에 반하게 되고 다음 날 아침을 같이 먹기로 약속한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 헨리가 루시를 찾아가 애정표현을 하자 루시는 그를 변태로 취급한다. 루시는 1년 전에 당한 사고 전까지의 일은 기억하지만 사고 후에 생긴 일은 자고 일어나면 모두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한편 영화 <레인맨>에서 레이먼드는 한번 본 것을 카메라로 찍은 듯이 기억하는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다. 레이먼드와 동생 찰리는 비상한 기억력을 이용해 도박장에서 돈을 벌기도 한다. 루시와 레이먼드는 왜 이렇게 정반대되는 현상을 보이는 것일까.

영화 '첫 키스만 50번째' 스틸 컷.ⓒ영화의 전당 캡쳐
영화 '첫 키스만 50번째' 스틸 컷.
ⓒ영화의 전당 캡쳐

기억상실증이란?
기억상실증은 심리적 혹은 신체적인 원인에 의해 기억을 상실하는 증상이다. 기억상실증은 일반적으로 순행성 기억상실증과 역행성 기억상실증으로 나뉜다. <첫 키스만 50번째>에서 루시는 사고 전의 기억은 가지고 있지만 그 이후의 기억을 가지지 못하는 순행성 기억상실증에 걸렸다. 이는 루시가 측두엽을 다쳤기 때문이다. 측두엽에는 해마가 있기 때문에 이 부위를 다칠 경우, 새로 입력되는 기억이 장기기억으로 전환되지 못한다. 따라서 루시는 사고 이후의 기억을 갖지 못하는 것이다. 또한 한양대학교병원 신경과 김희진 교수에 따르면 전두엽을 다친 경우에도 순행성 기억상실증에 걸린다. 전두엽이 다친 경우 집중력이 중요한 작업기억이 측두엽에 정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역행성 기억상실증은 사고 전의 기억 전부나 일부를 상실하는 증상이다. 역행성 기억상실증은 뇌의 손상 외에 심리적인 요인에 의해 나타나기도 한다.

그렇다면 기억상실증은 현대의학으로 완치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 김 교수는 “아직 완치는 불가능하지만 해당 기능을 다른 부위가 대체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18살에 교통사고로 전두엽을 다친 환자가 있었다. 그 환자가 현재 26살이 돼 유치원 교사 자격시험을 준비하는데 기억 저장이 되지 않아 8번을 떨어졌다. 그러나 계속 연습을 하니 1차 시험에는 합격했다”며 연습을 통해 손상된 뇌 부위 기능을 다른 부위가 대체할 수 있음을 설명했다. 이로 비춰 볼 때 특정 뇌 부위의 기능을 잃는 것은 완전히 치료되지는 않지만 증상이 조금씩 호전되게 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기억상실증과 비슷해 보이는 치매와 건망증
치매와 건망증은 기억을 상실한다는 점에서 기억상실증과 비슷해 보인다. 그러나 이들은 자세히 들여다보면 완전히 다르다. 김 교수는 “건망증은 갑상선을 비롯한 내분비계통에 문제가 있거나 몸이 피곤하고 스트레스를 받을 때 발생한다”며 “특히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는 전두엽의 기능이 떨어져 기억력이 저하된다”고 강조했다. 건망증은 뇌세포에 본질적인 문제가 생겨 발생한 것이 아니므로 일시적인 것이며 피로를 해소하는 등 전두엽이 제 기능을 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주면 호전된다.

이와 달리 치매는 플라크와 탱글이라는 변칙단백질이 뇌세포를 공격해 발생한다. 뇌세포 중에서도 특히 해마를 먼저 공격하기 때문에 치매에 걸릴 경우 기억장애가 초기 증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뇌 부위가 사라지지 않아 손상된 부위의 기능이 다른 부위로 대체될 수 있는 기억상실증과 달리 치매는 뇌의 특정 부위가 사라진다는 문제에 의해 발생했기 때문에 현대 의학으로는 완치하기 힘들다. 또한 치매는 기억상실증, 건망증과는 달리 계속 진행되기 때문에 기억장애 증상 이후 인지능력에도 장애가 생긴다는 차이점이 있다.
 

카메라 같은 기억력, 서번트 증후군
기억상실증과는 반대로 모든 것을 완벽하게 기억하는 증상도 있다. 바로 서번트 증후군이다. 서번트 증후군은 자폐증이나 지적장애를 지닌 사람이 특정 분야에서 천재적인 지능을 보이는 현상을 의미한다. 이 증후군에 걸린 사람은 보통 기억력, 계산, 예술 등의 영역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인다. 영화 <레인맨>에서 찰리는 레이먼드가 잠자리를 거절하자 전화번호 책을 무심코 던져준다. 레이먼드는 이 전화번호 책을 하룻밤 사이에 통째로 암기한다. 레이먼드의 실제 모델 킴 픽은 책 9000권을 통째로 외우는 놀라운 기억력을 가지고 있다.

서번트 증후군 환자들이 놀라운 기억력을 보이는 것에 대해 김 교수는 “서번트 증후군은 뇌의 한 부위가 손상돼 다른 부위가 과하게 활성화돼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이는 일명 ‘좌뇌의 손상과 우뇌의 보상이론’이라 불린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좌뇌와 우뇌의 역할을 살펴봐야 한다. 우뇌는 감각적이고 구체적인 사고를 담당하는 반면 좌뇌는 추상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를 담당한다. 더불어 좌뇌는 우뇌의 역할을 억제하는 기능도 한다. 따라서 구체적인 기억을 담당하는 우뇌가 좌뇌에 의해 지배당하기 때문에 뇌가 정상적인 사람은 구체적인 기억보다는 추상적인 기억이 대부분인 것이다. 그러나 서번트 증후군 환자들은 공통적으로 좌뇌와 우뇌의 연결이 끊어져 있고 좌뇌에 문제가 있어 우뇌가 과도하게 활성화된다. 좌뇌가 역할을 상실하고 구체적인 기억을 담당하는 우뇌가 활성화됨에 따라 서번트 증후군 환자들은 남들보다 뛰어난 기억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기억력이 뛰어난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 사회에서는 머리가 좋은 사람보단 다른 사람과 융합할 수 있는 인재를 원한다. 기억력이 너무 뛰어나면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마저 기억하게 돼 우울증과 같은 정신병에 걸릴 수도 있다. 따라서 서번트 증후군 환자들은 사회에서 어려움을 겪는다”고 설명했다.

일러스트 | 정선주 외부기자 webmaster@
일러스트 | 정선주 외부기자 web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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