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성대신문 (webmaster@skkuw.com)
일러스트 l 정선주 외부기자 web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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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 지역의 민간인 피해자만 해도 백만 명 이상"

더이상 피해자들이 두려워하지 않는 세상이 오길

지난 21일, 한국전쟁전후민간인희생자 거제유족회는 거제시와 함께 한국전쟁 전후에 학살된 이들의 넋을 위로하고자 합동 위령제와 위령비 제막식을 열었다. 당시 거제 지역에서는 약 1000여 명에 이르는 민간인이 국가에 의해 희생돼야만 했다. 이는 거제 지역만의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민간인 학살 유해 매장 추정지는 168곳에 달한다. 과연 이들에겐 어떤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민간인 학살이란 무엇인가
민간인 학살이란 적대행위를 할 자격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일반 주민들을 가혹하게 살해하는 것을 의미한다. 민간인은 적대행위에 따른 위험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하지만, 한국전쟁 전후 시기 우리나라에서는 제주 4·3사건과 국민보도연맹사건 등이 발생하며 수많은 민간인 학살이 시행됐다. 금정굴인권평화재단 연구소 신기철 소장은 “남한 지역은 100만 명이 넘는 민간인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된다”며 “민간인 학살로 인한 피해가 상당하다”고 전했다. 제주 4·3사건은 제주도에서 1948년부터 1954년까지 일어난 민중 항쟁에서 민간인이 희생된 사건으로, 이로 인해 2만~3만여 명의 무고한 제주도민들이 희생됐다. 국민보도연맹사건은 한국전쟁 초기에 국민보도연맹원을 대상으로 예비검속과 즉결처분을 단행한 사건이다. 이외에도 미국의 폭격 또는 재판으로 인한 학살 등 다양한 유형의 민간인 학살이 수없이 벌어졌다.

이러한 민간인 학살은 전쟁범죄에 해당한다고 보는 시각이 존재한다. 국제형사재판소에 관한 로마규정에 따르면 전쟁범죄는 ‘민간인 주민 또는 적대행위에 직접 참여하지 않은 민간인 개인에 대한 고의적 공격’으로 규정돼있다. 국군 수복 직후 부역혐의를 받던 주민이 학살당한 사건과 국민보도연맹사건 등이 이에 해당된다. ‘군사목표물이 아닌 대상물에 대한 고의적 공격’ 또한 전쟁범죄 중 하나인데, 1950년 7월 미군이 노근리 철교 밑에서 민간인 약 300명을 사살했던 노근리 사건이 이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신 소장은 “민간인 학살을 전쟁범죄로 규정하지 않으면 민간인의 죽음을 전쟁 상황에서 겪게 되는 부수적 피해로 인식하게 될 수도 있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자칫 잘못하면 진실을 은폐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며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을 전쟁범죄라고 규정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설명했다.

과거 역사에 대한 과오를 바로잡고자 하는 오늘날의 노력
오늘날에는 과거에 대한 과오를 바로잡기 위한 노력이 지속되고 있다. 2005년부터 2010년까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는 국가적 범죄와 인권침해 사건에 대한 진실규명 등 과거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활동을 진행했다. 지난 5월에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개정안이 통과되며 과거사정리 위원회가 재가동하게 됐다. 또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 문제를 해결하고자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 전부개정안이 21대 국회에 다시 발의되기도 했다.

학살사 청산을 위한 재심도 이뤄지고 있다. 지난 2월 창원지방법원 마산지원은 국민보도연맹사건의 희생자 유족 6명이 신청한 재심 사건에 대해 최초로 무죄를 선고했다. 이에 대해 법무법인 지향(대표 남상철) 이상희 변호사는 “모두를 위해야 하는 법이 국가에 의해 악용된 것”이라 지적했다. 이어 그는 “재심은 유가족들이 진실에 대한 권리를 추구하고 가족의 죽음에 대한 피해를 회복하는 것에 큰 도움을 준다”며 재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더 나은 사회를 위해선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민간인 학살 사건의 가해자 처벌이 미미하다는 비판이 존재한다. 국민보도연맹사건의 경우 피해자가 대략 10만~30만 명으로 추산되지만 징계를 받거나 책임을 진 이는 단 한 명도 없다. 신 소장은 “민간인 학살과 관련해 처벌이 이뤄진 경우가 일부 있었으나 집단 살인 행위에 비해 형량은 터무니없이 가벼운 경우가 많았다”며 “처벌이 제대로 이뤄졌다고 보기 어렵다”고 전했다. 그는 “특히 경찰서장 등의 고위급 책임자가 중형으로 처벌 받은 경우는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유해발굴 또한 활발히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진실화해위는 출범 이후 유해발굴 활동을 진행했지만, 2010년에 활동기간이 종료되며 유해발굴은 오래 이어나가지 못했다. 진실화해위는 유해발굴을 이어가기 위해 조사보고서를 발간하며 정부기구 설립 등을 권유했으나, 추가적인 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이후 유해발굴 재개 가능성이 점점 작아지자 민간단체가 8곳을 추가로 발굴했지만 여전히 더 많은 유해발굴이 필요한 상황이다.

신 소장은 과거사 진실 규명을 위한 민간인 학살 연구의 활성화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70년이나 지난 민간인 학살 연구 자료를 여전히 공개하지 않는 국가기관이 많다”며 “이제는 모두 공개하고 누락된 역사의 한쪽을 채우는데 기여해야 한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인권 의식과 사회과학 연구를 지원하기 위한 연구 기관의 역할에 대한 진지한 고민 또한 필요해 보인다”고 설명했다. 유해발굴 현장을 보존하고 ‘기억의 터’로 남겨놔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연세대 국학연구원(원장 신형기) 한성훈 연구교수는 “유해발굴 현장은 유해발굴 장소로서의 의미뿐 아니라 사건 현장이라는 의미도 가진다”며 유해발굴 현장은 사건의 진실을 규명하는 굉장히 중요한 장소임을 강조했다. 또한 그는 “현 유물발굴 방식은 유해발굴을 한 후 다시 현장을 흙으로 덮어버리는 방식”이라며 “이는 후대 교육에 있어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 지적했다. 그는 “사람들이 사건을 파악하고 피해자들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학살현장을 보존하거나 교육 현장으로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오늘날 민간인 학살은 우리 사회 속에서 어떻게 기억되고 있는가
과거에 비해 민간인 학살에 대한 교육은 개선돼가고 있다. 실제로 올해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에는 제주 4·3사건과 관련된 내용이 대폭 수정됐다. 이외에도 민간인 학살은 대중들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전달되고 있다. 인디게임 개발팀 COSDOTS는 제주 4·3사건을 다룬 게임인 '언폴디드 : 동백이야기'를 개발해 제주 4·3사건의 역사와 의미를 전달하고자 했다. 또한 뮤지컬 <고스트 메모리>와 다큐멘터리 영화 <레드 툼>은 각각 *경산코발트광산사건과 국민보도연맹사건을 다루고 있다. 이처럼 현 한국 사회는 다양한 방식으로 많은 이들이 민간인 학살 사건을 잊지 않게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아직까지 진상 규명에 두려움을 느끼는 피해자가 많이 남아있다. 신 소장은 “여전히 민간인 학살 사건과 관련한 면담과 진술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많다”며 “피해자들 사이의 사회적 공포가 해소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경산코발트광산사건=경산 코발트 광산에서 한국전쟁 기간 중에 보도연맹 회원들을 처형한 사건.

다큐멘터리 영화 〈레드 툼〉에 삽입된 국민보도연맹사건 실제 사진.ⓒ네이버 영화 캡처
다큐멘터리 영화 〈레드 툼〉에 삽입된 국민보도연맹사건 실제 사진.
ⓒ네이버 영화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