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이종윤 기자 (burrowkr@skkuw.com)
한 남자가 말한다. “나이는 46이고요. 지금 아내와 중학교 1학년 아들, 8살 난 딸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평범해 보이는 대한민국 가장의 자기소개다. 그런데 갑자기 그의 입에서 예상치 못한 얘기가 나온다. “일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문을 잠그고 밤새도록 음란물을 보고 자위행위를 했어요” 남자는 성 중독자였던 자신의 지난날과 회복과정에 대해 차분하게 고백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서울중독심리연구소(이하 중독연구소)에서 자체 제작해 방송하는 팟캐스트 ‘미친변기’ 21회의 첫 부분이다. 미친변기는 국내 유일의 중독회복방송으로 과거에 중독자였지만 지금은 회복에 성공한 사람들의 진솔한 얘기를 다루고 있다.
2004년 온라인 활동을 시작한 중독연구소는 2007년 본격적으로 문을 열었다. 온·오프라인에서 여러 중독자 회복 모임을 진행하고 있으며, 외부 강의와 세미나도 열고 있다. 상담전문가 양성 과정을 운영해 중독에 대해 배우고자 하는 외부 강사나 일반인들이 주로 찾고 있다. 중독연구소에서 진행하는 강좌를 이수하면 상담사 자격증을 수여하기도 한다.
미친변기라는 이름은 중독자들이 자신들을 미치게 하는 감정들을 이 방송을 통해 쏟아내길 바라는 의미로 지었다. 중독연구소에서는 정신분석적 연구를 통해 어린 시절 부모와의 관계에서 느끼는 열등감과 수치심 등이 중독의 원인을 제공한다고 본다. 정누리 중독연구소 심리상담사는 “양육환경으로부터 생긴 마음의 상처는 스트레스의 통제력을 상실케 한다. 이 경우 스트레스를 받을 때, 그 고통을 피하고자 술이나 성 등 중독 매개체에 기대게 된다”고 설명했다.
중독연구소에서는 방송을 접하는 많은 중독자가 중독을 이겨낸 사

     
 
람들의 사연을 통해 변화하기를 바란다. 중독자 대부분은 세상에서 자신만 그런 고통을 겪는 존재라고 생각하며 외로워한다. 그래서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의 가치를 부정하고, 중독의 늪으로 빠지게 된다. 그러나 자신과 같은 처지에 놓인 타인의 존재를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중독자들은 힘을 얻을 수 있다. 미국에서 알코올중독자모임(AA)이 시작된 것도 그러한 연유에서다. 서로가 자신에 관해 얘기하고, 상대방에게 지지를 보내며 용기를 얻는 과정에서 중독자들은 회복의 길로 들어설 수 있다. 실제로 방송에서 솔직하게 고백을 하는 출연자나 방송을 듣는 중독자 모두 만족스러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청취자 ‘미친놈’님은 “출연자의 이야기를 들으면 나와 똑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만 특별한 고통을 받는 줄 알았는데, 나와 비슷한 처지와 기분을 공감할 수 있어 좋다”고 청취 소감을 전했다.

▲ 정누리 심리상담사가 중독 심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한영준 기자 han0young@
   
팟캐스트 제작에 앞장선 정 심리상담사 역시 중독과 관련된 경험이 있다. 멀쩡하던 남편이 갑자기 도박 중독에 빠져 실종된 것이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이해할 수 없었어요. 다른 사람에게 조언을 듣고 싶었지만, 들을 수 있는 곳이 없었죠” 그녀는 직접 중독 심리에 대해 공부하기로 맘먹고, 지금의 자리에 왔다. 그리고 현재 미친변기 진행을 맡고 있다.
미친변기 제작은 연구원들이 하나에서 열까지 직접 맡고 있다. 그래서 아이폰 녹음기로 방송하던 초창기에는 방송 음질이 굉장히 안 좋았지만, 서서히 장비를 사들이면서 지금은 어느 정도 체계를 갖춘 상태다. 현재 미친변기는 잠시 재충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방송하는 동안 다른 연구업무가 많이 밀렸기 때문이다. 6개월 정도 쉬고 다시 찾아올 예정이라는 시즌2에서는 △게임 △성형 △쇼핑 중독 등 현대인들의 피부에 보다 와 닿는 주제에 관해 얘기를 나눌 계획이다. 시즌2에서는 어떤 이들이 자신의 동료들을 변화의 길로 인도할 수 있을지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