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하진 (noterror0404@skkuw.com)

다채롭고 찬란하게,
사회를 의미 있게 만드는 색

색은 사회를 비추는 거울

 

“정말 많이 보라합니다, 아미 여러분.” 방탄소년단 멤버 뷔가 팬미팅에서 팬들에게 한 말이다. 이후 부산의 광안대교부터 런던의 웸블리 스타디움, 뉴욕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까지 방탄소년단이 방문하는 도시의 랜드마크들이 보라색으로 물들었다. 최근 방탄소년단과 콜라보를 진행한 맥도날드는 ‘The BTS 세트’의 포장을 보라색으로 꾸미기도 했다. 고대 로마 황제의 색에서 방탄소년단의 색이 된 보라색. 색이 지니는 의미는 지금도 시시각각 달라지고 있다.


눈으로 들어오는 색의 향연

색은 물체에서 반사된 빛이 망막에 맺힐 때 느껴지는 사물의 색상, 명도, 채도를 모두 아울러 가리키는 물리적 현상이다. 망막에 특정 파장의 빛이 닿아 상이 맺히고 망막의 시각세포들이 이를 대뇌로 전달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는 색을 인식할 수 있다. 시각세포에 이상이 있을 경우 색을 제대로 지각하지 못하는 색각이상을 겪을 수 있다.

색은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 주변 배경과 물체를 구분하는 특성인 명시성과 색으로 눈길을 끄는 힘인 유목성이 변화한다. 색은 인간의 심리와 미감에도 영향을 미친다. 한색과 난색으로부터 온도감을 느끼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채색하지 않고 흑백을 활용해 심리적 편안함을 주거나 몰입을 고조하는 등의 효과를 내기도 한다. 이처럼 채도를 낮추거나 무채색을 이용해 더 깊은 정서가 표현되는 것을 탈채도 효과라고 한다. 색의 부재까지도 하나의 효과로서 영화, 광고, 사진과 같은 다양한 시각 매체에 활용되고 있다.

의미를 담는 그릇, 색

색은 단순한 시각적 요소가 아니다. 인간은 오랫동안 색과 함께 지내며 각각의 색에 의미를 부여해왔다. 이화여대 불어불문학과 이수미 교수는 “인간은 물체를 인식할 때 형태뿐만 아니라 색까지도 활용하기 때문에 색과 대상을 연결 짓게 된다”고 설 명했다. 색을 단지 자연물을 구별하는 데만 사용했던 인간은 직접 색을 칠해 사물을 구분짓기 시작했다. 이처럼 색을 구별 및 구분의 용도로 사용하는 단계를 ‘경계짓기’라고 하며, 이는 색이 기호화되는 과정의 시작이다.

이후 특정 색에 원형적 대상의 특성 또는 가치가 부여돼 사회구성원들이 그 인식을 공유하면 색 이미지가 형성된다. 빨간색의 원형적 대상, 즉 자연에서 찾을 수 있는 가장 흔한 빨간색은 불과 피다. 불과 피가 가 지는 따뜻함, 위험의 특성이 빨간색과 연결돼 빨간색 자체만으로도 그 의미를 담을 수 있다. 구체적인 대상의 색을 지시하는 것에서 벗어나 추상적인 관념을 표현하게 되는 것이다.

최종적으로 색이 이미지를 넘어 기호로서 기능하기 위해서는 다른 색과의 대립 관계가 필요하다. 색 이미지는 추상적 가치를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정도에 머무른다면 색 기호의 경우 확실한 의도를 전달한다. 신호등의 빨간불은 빨간색이 가지는 위험이라는 색 이미지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녹색, 노란색과 대립 관계에 있을 때 비로소 ‘멈춰라’는 뜻을 가진다. 이 교수는 “빨간색은 신호등의 기호 체계 내에서만 멈추라는 뜻을 내포한다”며 “프랑스 국기에서의 빨간색이었다면 박애를 뜻할 것”이라고 같은 색이 다른 기호 체계에서는 아예 다른 뜻으로도 사용이 가능한 점을 언급했다. 또한 이 교수는 “기호 체계의 형성은 해당 사회의 언어 및 문화적인 관습과 맞물려 있기 때문에 사회마다 다르게 형성될 수 있다”며 색 기호 또한 사회구성원의 약속과 승인을 통한 것임을 설명했다.

이심전심 색으로 소통하다

현대 사회에 이르러 색은 함축적이면서도 신속한 정보 전달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정보의 홍수 시대에서 짧은 시간 안에 즉각적으로 의미를 지각 및 구별하도록 만드는 색은 활용도가 매우 높다. 이러한 특성을 활용한 분야가 컬러마케팅이다. 컬러 마케팅이란 색을 통해 브랜드 이미지를 정립하거나 소비자의 구매 욕구를 자극하는 마케팅 기법이다. 노란색과 갈색의 조합은 ‘카카오’, 초록색은 ‘네이버’를 상징하는 것 처럼 색과 색의 조합만으로도 브랜드를 연상시킴으로써 브랜드의 정체성을 형성한다. 충북대 프랑스언어문화학과 고봉만 교수는 “소통 수단으로서 색은 즉각적 지각이라는 측면에서 장점을 가진다”면서도 “색 자체에 어떤 의미가 고정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아니므로 색에 부여된 의미도 여러 가지로 읽힐 수 있다”며 색이 소통 수단으로서 한계가 있음을 지적했다.

너와 나를 구분하는 울타리

색은 집단의 상징으로서 결속력을 제고하고 정체성을 표출하는 데에도 사용된다. 색은 접근성과 활용도가 높기 때문에 집단 전체가 공유할 수 있는 요소로 쓰기 적합하다. 쉽게 접할 수 있는 예시로는 아이돌 팬덤 색이 있다. 풍선 색을 통해 팬덤을 구별하던 것이 시작이었지만 팬덤 문화가 발달한 현재는 소속사에서 공식 팬덤 색을 지정해 팬덤 간 차이를 두고 고유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있다.

색의 기능은 타자를 배척하고 차별하는 데 쓰이기도 한다. 서양에서 노란색은 겁쟁이와 배신자의 색으로 치부돼 왔다. 예수를 팔아넘긴 배신자 유다가 노란 옷을 입었다는 이야기에서 비롯된 이미지다. 때문에 중 세 시대에는 유대인에게 노란색 고리 모양의 표지를 착용하게 했고, 이는 나치가 유대인들에게 황색 ‘유대인의 별’ 표지를 강요한 것으로 이어진다. 이처럼 색은 공동체를 집결하는 효과도 있지만 동시에 다른 집 단을 낙인 찍어 차별하는 형식으로도 작용할 수 있다. 이에 대해 고 교수는 “상징을 악용해 특정 집단을 배척하는 사례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있으므로 상징의 맹목적 수용을 항상 경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열린 사회로의 길을 터주며

오랜 시간을 걸쳐 굳어진 색 이미지도 사회의 의식을 반영해 변화한다. 빨간색 역시 논란의 중심에 서 있던 색이다. 공산주의의 상징색으로 사용되던 빨간색은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정당 색으로 쓰이지 않았다. 고 교수는 “기성세대가 정치적이고 이데올로기적 시선에서 빨강을 바라봤다면, ‘붉은 악마’로 집결한 젊은 세대에게 빨강은 정열과 약동의 기호”라며 2002년 월드컵의 ‘붉은 악마’가 색 이미지를 전환했다고 설명 했다. 동시에 “색채상징의 가변성은 사회의 변화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말하며 색의 의미는 사회에 따라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음을 전했다.

현대 사회는 ‘여자는 빨간색, 남자는 파란색‘ 등 기존에 형성된 색 이미지를 허물고 있다. 고 교수는 이에 대해 “이러한 현상은 사회의 다양성과 관용의 지표가 될 수 있다”며 “색을 통해 우리 사회는 고정 관념에서 탈피해 다양한 개성과 가치가 인정되는 열린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고 밝혔다.

 

일러스트 ∣ 서여진 외부기자 webmas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