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박선영 기자 (sun00nus@skkuw.com)

인터뷰 - 이병률 시인

여행이란 지구 바깥에서 사람들을 구경하고 또 나를 내려다보는 일

결국 ‘나를 만드는 여행’이 오래 남아

‘삿포로에 갈까요. 이 말은 당신을 좋아한다는 말입니다.’ 한때 SNS에서 유행하던 감성 문구로, 사랑하는 당신과 함께 삿포로로 떠나고 싶다는 마음이 담긴 말이다. 사랑을 고백하며 삿포로로 떠나자던 시인은 여행 산문집 『끌림』,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등으로도 유명한 여행 문학가다. 시를 쓰고 돌아다니는 것만으로 엄청난 힘을 얻는다는 이병률 시인과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자 만났다.

‘삿포로에 갈까요. 이 말은 당신을 좋아한다는 말입니다.’ 어떤 생각으로 이 문장을 썼나. 
삿포로는 큰 도시임에도 호젓하고 시적이라 아주 좋아하는 곳이다. 주로 겨울에 가는데 눈이 많은 곳이라 스스로가 가지런히 정리되는 기분을 느낀다. ‘혼자 이곳에 자주 오곤 하는데 만약 누군가와 함께 삿포로에 온다면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한 한 줄이다. 나는 혼자서만 여행하는 사람이라 많이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면 절대 그런 제안을 하지 않을 거다. 그럼에도 누군가와 동행한다면 그곳은 당연히 삿포로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주로 어떤 곳으로 여행을 떠나는가. 여행을 떠났던 나라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예전에는 사람들이 나와 전혀 다른 삶을 사는 곳을 가고 싶어 했다. 하지만 지금은 많이 다녀봐서 그런지 일상을 살게 되는 곳을 가고자 한다. 아침 식사를 챙겨 먹고 오후에 잠깐 동네 산책을 다녀오는 여행지라면 어디든지 가능할 것 같다. 

가장 인상 깊었던 나라는 인도였다. 인도는 음식도 문화도 어떤 한 가지 색이라고 규정지을 수 없는 만상이 존재하는 곳이다. 길을 물어도 다 다르게 답하고, 물건값도 천차만별이다 보니 혼란을 느끼게 되지만 그 혼란이야말로 그 나라의 진짜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인도는 자잘한 충격이 늘 존재하는 곳이자 모든 고정관념이 무너지는 곳이다. 


계획형 여행과 무계획형 여행 중 어느 쪽을 선호하나.
나는 무계획형 여행자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러진 않았다. 내가 여행을 통해 얻을 것이 무엇인지도 중요했고, 여행 가서 아무것도 몰라 허둥대지 않도록 기본적인 것들을 준비하는 시간도 필요했다. 여행에 대한 준비가 너무 부족하면 고생이 당연할 테고 여행에 대한 의지도 꺾일 것 아닌가. 준비 과정으로부터 세계를 찬찬히 읽어나갈 수 있으니 계획형 여행부터 시작하는 것도 좋겠다.


20대 대학생들이 꼭 해봤으면 하는 여행은 어떤 여행인가. 
외로움과 고독을 느끼고 즐길 수 있는 곳으로 혼자 여행을 떠나보는 것을 추천한다. 군산이나 목포, 남해처럼 바닷가나 산이 좋겠다. 혼자 지내는 동안 고통스러울 거다. 그런데 그 무료함 속에서 자기가 무엇으로 허둥대고 뭐가 부족하거나 간절한지 깨달아 보면 좋겠다. 여행지에서 혼자 겪는 시간들은 나를 늘 나은 쪽으로 견인해 준다. 그런 방식으로 ‘나를 만드는 여행’이 결국 오래 남는다. 이때 이문재 시인의 『여기가 맨 앞』이라는 시집과 함께하는 것을 추천한다. ‘내가 혼자 세상을 살아가는 게 아니구나’라는 안심이 속을 따뜻하게 채워줄 것이다. 


혼자서 하는 여행의 매력이 무엇이라 생각하나.
혼자라는 어마어마한 시간은 선택의 연속이다. 먹는 것부터 이동 수단까지 자잘한 선택들이 모두 자신의 몫이 된다. 그리고 혼자 다니다 보면 자신에게 다가오는 사람이 있을 거다. 이 사람이 말을 걸면 나는 대화를 할지, 이 사람이 건네는 사과 반쪽을 먹을지 등의 선택도 해야 한다. 이러한 선택들은 여행을 풍성하게 해준다. 좋은 사람들이 이 지구별 안에 같이 살아가고 있음을 즐길 수 있기도 하다.


여행에서 느끼는 아름다움을 중시하더라. 어떻게 하면 이를 발견하고 느낄 수 있나.
여행의 목적은 좋은 걸 보고 경험하는 과정에서 아름다움을 찾는 것이다. 아름다움이라고 했을 때, 일반적으로 그림이나 음악, 일출이나 일몰 등을 떠올린다. 그러한 기본적인 아름다움을 많이 느끼고 경험하다 보면 더 깊고 진동이 강한 것을 욕망하게 되고, 보통 이 일련의 과정을 통해 아름다움을 보는 눈이 갖춰진다. 그러나 그것들이 아름다움의 전부는 아니다. 아름다움을 느끼는 대상과 방식이 정해져 있지는 않다. 어떤 아름다움이든지 그것을 자주 느끼고 싶다고 욕망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름다운 요소들이 내 삶을 받치고 있다고 믿게 되면 자연스레 몸은 그쪽으로 움직이게 된다. 살아가다가 길을 잃었을 때 불쑥 예상하지 못했던 아름다움을 대면하기도 하는 것이다.


여행가가 간직해야 할 태도란 무엇일까.
우리가 꽤 드넓은 세상에 살고 있다는 인식, 즉 많은 사람이 살고 있고 그 사람들은 결코 모두 같지 않다는 인식이다. 내가 그 모두를 사랑할 수도 없고 모두가 나를 좋아할 수도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다 보면 이 세상이 찬란하게도, 황량하게도 느껴질 거다. 그렇지만 이 모든 것을 눈으로 목격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누구와도 닮지 않은 나,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는 자기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바꿔 말해 ‘자유’를 획득할 수 있다. 그 사실을 유념하는 것이 이상적인 여행의 태도가 아닐까 싶다. 


여행에 대한 자신만의 정의와 함께, 젊은 여행가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나에게 여행이란 지구 바깥에서 사람들을 구경하고 또 나를 내려다보는 일이다. 박노해 시인의 ‘혼자 여행을 가서 돌아올 땐 또 다른 나를 만나 손잡고 오라’는 말처럼 또 다른 내가 세상 그 어딘가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부디 여러분도 또 다른 자신을 만나고 돌아오기를 바란다.

이병률 시인. ⓒ이병률 시인 제공
이병률 시인. ⓒ이병률 시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