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김기진 기자 (skkujin@skkuw.com)

▲ 김지은 기자 kimji@skkuw.com
평일 오후의 한 극장. 객석 절반이 휑하게 비었다. 자리를 채운 나머지 반도 상당수가 초대석이다. 극단 관계자는 어두운 얼굴로 "요즘엔 다 이렇다"며 볼멘소리를 했다. 2000년대 들어 시작된 대학로 공연계의 경기 침체는 멈출 줄 모르고 있다. 예술경영지원센터(대표 정재왈)의 ‘2012 공연예술경기동향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의 57%가 하반기 대학로 공연 경기가 악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대학로는 불황을 모르고 서울 내 주요 상권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2012년 대학로가 있는 종로구 동숭동은 평균 매매가가 평당 8000만 원으로 서울 시내에서 두 번째로 상가 땅값이 높은 곳으로 기록됐다. 천정부지로 오른 임대료는 가난한 극단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 2010년 대학로 지역 공연장의 월평균 임대료는 약 600만 원으로, 1년에 약 7200만원을 공연장에서 임대료로 지출하고 있었다. 이는 공연장 연 평균 총 지출액의 37%로 상당히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다.
1984년 정한모 당시 문예진흥원장에 의해 ‘대학로’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대학로는 90년대 초 극단이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하면서 국내 최고의 공연 클러스터로 성장했다. 대학로의 가장 큰 매력인 저렴한 임대료를 통해 가난한 연극인들의 터전이 됐다. 임대료가 현재 수준으로 급격히 오른 시점은 2004년 대학로가 문화지구로 지정됐을 때였다. 대학로의 한 부동산 대표는 “당시 임대료가 2배 이상 올랐다”고 말했다. 소극장 활성화를 위한 정책이었지만 실제로는 도움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악화시킨 것이다. 세제 감면 지원 등 건축주 위주의 정책으로 건물이 우후죽순 세워졌고 이로인해 부동산 가격이 크게 올랐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극단이 부담하는 임대료도 올랐다. 또 유동인구가 늘어나면서 △식당 △주점 △커피숍 등 편의시설이 들어선 것도 임대료를 올리는 데 한몫했다. 선돌극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배우 홍성춘 씨는 “대학로에는 건물주의 횡포가 존재한다”며 “극단 입장에선 나가라고 하면 나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건물주가 임대료를 갑자기 높여 이를 견디지 못하고 대학로를 떠난 극단이 많다.
대학로가 상업화되면서 공연의 콘텐츠 역시 상업적으로 변모했다. 연극단 사이에서도 관객을 끌어모으기 위한 각축전이 벌어지면서 코믹적이고 자극적인 소재의 연극을 올리게 된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티켓예매 사이트인 인터파크에서 가장 많이 판매된 상위 10개의 대학로 연극 중 8개의 연극이 연애극과 코믹극이었다. 대학로 소극장의 모임인 한국소극장협회(이사장 정대경) 이민정 축제팀장은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라는 연극 본연의 의미가 사라졌다”며 “관객들도 재밌는 연극만 찾다 보니 극단도 거기에 맞춰 따라가게 된다”고 답했다.
▲ 대기업이 운영할 예정인 동숭동복합공연장의 건설현장. 김지은 기자

이런 상황에서 한 대기업이 대학로에 대형 극장을 세운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많은 논란을 낳았다. 지난해 5월 <한국일보>에 실린 기사에 따르면, 현재 대학로에 건립 중인 동숭복합공연장이 롯데그룹 총수 일가 중 한 명에 의해 운영될 예정이다. 공사가 진행 중인 이 건물은 총 1000여 석의 공연장으로 지상 6층, 지하 5층 규모로 알려졌다. 이에 군소 극장들은 반발하고 있다. 모 극단 관계자는 “지금도 어려운데 대기업이 들어와 해외 수입작을 공연한다면 소극장들은 죽으라는 꼴”이라고 말했다. 군소 극장들이 만들어 온 공연 생태계에서 대기업의 등장은 ‘황소 두꺼비’인 격이다. 반면 대기업의 등장이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대기업이 건축하고 있는 뮤지컬 전용 공연장의 티켓 가격은 8만 원 이상의 고가이고 이는 2만 원 가량인 소극장 티켓과는 대상 관객이 다르다는 것이다. 이민정 팀장은 “오히려 대기업과의 협력을 통해 대학로 상권이 일어설 수도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높은 임대료와 극장 포화 상태를 피해 혜화동과 명륜동 일대에는 ‘OFF 대학로’가 조성됐다. △꿈꾸는 공작소 △동숭무대 △선돌극장 등의 소극장이 있는 OFF 대학로는 하루 30~50만 원의 임대료로 혜화역 부근 고가 공연장의 25% 수준이다. OFF 대학로는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공연이 무대에 오르며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임대료 부담에 관객 수를 의식한 무대를 만들어야 하는 대학로의 극단들과는 다른 상황이다. 연극을 보러온 여대생 이정현 씨는 “난해하지만 예술성이 높고 실험적인 작품이 많아 자주 보러 온다”고 밝혔다.
상업화된 대학로 문화에 대해 권경우 문화평론가는 “대학로에서 일어난 현상은 어느 도시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과정이다. 그런 흐름을 인위적으로 수정하려 하기 보다는 △연극인 △주변 대학교 △지역 주민 등 대학로의 주체들이 지역의 특색을 살릴 수 있는 축제를 기획하는 등 생존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