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까지 노후화된 원전 가동을 멈추지 않으면 정말 큰 사고가 날 것이다.” 13년 전 『원자력 신화로부터의 해방』에 남긴 세계적인 탈핵 운동가 다카기 진자부로의 섬뜩한 예언은 2011년 3월 11일 초대형 쓰나미가 후쿠시마를 덮치며 현실화됐다. 후쿠시마 제1원전 1~3호기에서 노심용융*이 일어나고 4호기는 폭발했다. 이 때문에 일본 국토의 70%가 방사능에 오염됐다.시민사회가 뿌린 탈핵의 씨앗후쿠시마 사고 이후 국내 탈핵 운동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후쿠시마 이전의 탈핵 운동이 기존 환경단체들만의 환경운동이었다면 이젠 △교
“지금이 포스트-후쿠시마 시대라 하지만, 오히려 상황은 후쿠시마 사태 이전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지난 11일 오후 8시, 신촌역 6번 출구 앞에 흰색 방진복을 입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몇몇은 ‘핵 Out’, ‘No more 후쿠시마’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있었고, ‘핵발전소 폐기하라’는 글을 적은 헬멧을 쓰고 있기도 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이들을 쳐다봤다. 후쿠시마 3주기 추모 행진이 막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우리나라와 일본에서는 2012년부터 매년 3월 후쿠시마 사태 추모 행사가 열린다. 후쿠시
지난달 26일 오후 7시, 충무로영상센터 오재미동에서 작은 상영회가 열렸다.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이하 친구사이)에서 주최한 ‘게이봉박두’다. 이는 친구사이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 ‘전화기로 만든 나의 첫 영화’에서 만들어진 작품들을 보여준 자리로 이날 △게이 △레즈비언 △트랜스젠더 등 다양한 성별정체성과 성적지향을 가진 성소수자들이 만든 단편영화 6편이 상영됐다.‘전화기로 만든 나의 첫 영화’는 친구사이가 마련한 문화강좌 게이컬쳐스쿨에서 성소수자들이 스마트폰을 이용해 쉽게 영화를 제작할 수 있도록 돕는 프로젝트다. 영화사 레
상영회는 막을 내렸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게이컬쳐스쿨 ‘전화기로 만든 나의 첫 영화’ 강의를 맡은 최영준 강사를 필두로 이날 상영회에 참석한 성소수자 감독들과 함께 게이봉박두의 소회를 풀었다.상영회를 시작한 이유는?최영준(이하 최) : 사실 게이컬쳐스쿨에서는 2006년부터 영화수업을 진행했다. 그때는 김조광수 감독과 같은 유명 인사를 초빙해 특강 형식으로 이론수업을 주로 했다. 그런데 이론만 다루다 보니 수업에 매력이 없었던 것 같다. 수업 공고만 나오고 실제로는 수강생이 없어 운영되지 않은 적도 많았다. 그래서 직
기존 가해자 중심적 시각 벗어나, 피해자 맥락 고려해 바라봐야, 성폭력 통념 바꾸려는 노력도 ‘피해자 중심주의’ 원칙은 피해자의 고통과 심리상태 등을 고려해 피해자의 입장에서 사건을 바라본다는 원칙이다. 이 원칙은 성폭력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이 사건의 전체적인 맥락보다는 ‘객관’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가해자 중심’이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여자가 꽃뱀 아니야?” “피해자의 평소 사생활이 문란하대.” “진작에 싫다고 거부하지 않고 뭐한 거야?” “역시 여자를 고용하면 시끄러워져.”성폭력 사건 이후 피해자들은 제3자 혹은 가해자
피해자 중심주의는 피해자의 권리를 확보하고 사건을 신속하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기에 성폭력 사건 수사 과정에서 중요한 원칙으로 자리매김 왔다. 대학 사회 내에서도 피해자 중심주의 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옴에 따라 학칙개정운동이 전개됐다. 학칙개정운동은 대학 내 반성폭력운동의 일환으로 시행됐다. 90년대부터 대학 내에서 외면 받던 성폭력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97년에는 18개 대학이 함께한 ‘학내 성폭력 근절과 여성권 확보를 위한 여성 연대회의’가 꾸려지기도 했다. 이후 반성폭력운동이 활발해짐에 따라 성폭력 상
성프란시스는 2005년 9월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이하 다시서기)’가 ‘성프란시스 인문학 과정’을 열면서 시작됐다. 다시서기는 외환위기 직후 노숙인 상담을 위해 설립된 기관이다. 컨테이너 한 동으로 시작해 현재는 △거리 상담활동 △급식사업 △무료 진료소 △자활 근로 △주거지원 등 다양한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성프란시스는 다시서기가 정부의 재정 지원 없이 기업의 후원을 받아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사업이다. 매년 약 60명의 노숙인이 지원하지만, 재정구조가 취약한 데다 공간이 좁아 전부 선발할 수 없는 실정이다. △다시서기 소장과 실장
성프란시스에 오기 전 삶은 어떠셨나요? 정원조(이하 정) : 나는 탈북자다. 2002년 한국에 왔다. 정부에서 준 정착 지원금과 주택 보증금을 2년 만에 다 날린 후 일용직 일을 하며 근근이 살아갔다. 충북 제천에 있었을 2011년 크리스마스이브에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술을 먹고 여관비를 다 날렸다. 그리고 서울역으로 올라와 한 달여 간 알코올 기운을 달고 살았다. 겨울이었기 때문에 추운 탓도 있었다. 그러다 다시서기로 오게 됐다.김철수(가명, 이하 김) : 2011년 7월에 서울역으로 왔다. 서울역에서의 일주일은 절망적이었다. 잠
광화문역 지하도에는 1년 넘게 자리를 지켜온 천막이 있다. 대형 서점과 화장품 상점들이 즐비한 길목에 있는 이 천막은 비장애인 중심의 한국사회에서 살아가는 장애인들의 절박한 목소리가 담긴 장소다. 전장연은 지난해 8월 20일부터 '장애등급제부양의무제 폐지 공동행동'을 꾸리고 천막 농성에 돌입했다. 장애인용 화장실과 경사로가 있다는 점을 고려해 광화문역 지하도를 택했다. 그러나 천막 설치를 저지하려는 경찰과 12시간 동안 대치하는 소동은 피할 수 없었다. 말복 더위에 화장실도 가지 못한 채 반나절을 경찰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그
우리 학교 인사캠 학우에게 그렇듯이 대학로는 ‘노들’ 학생들에게도 배움의 공간이다. 마로니에 공원을 지나 ‘예술가의 집’ 옆 건물 2층이 노들의 위치다.노들은 1993년 장애인 교육권 보장을 위해 설립됐다. 20년의 역사를 지닌 노들이 대학로에 번듯한 학교를 세우기까지의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최초의 교실은 빌린 탁구장이었다. 이후 정립회관 장애인 복지관 교실 두 칸으로 거처를 옮겼으나 얼마 뒤 자금난을 겪던 정립회관 측의 퇴거 요청을 받게 됐다. 할 수 없이 2008년 마로니에 공원 공터에서 천막수업을 해야 했다. 각계의 후원을
“덜컹덜컹.” 어두운 터널 속 울려 퍼지는 유일한 소리. 고요함 속에 각자의 스마트폰 액정을 응시한 채 지루함을 달래는 사람들. 우리에게 익숙한 지하철 풍경이다. 그런데 지난 14일, 특별할 것 없던 이곳에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이색적인 광경이 펼쳐졌다. 약 100명에 가까운 인원이 지하철 2호선 9번째 칸을 가득 메운 채 독서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독서 플래시몹 ‘책 읽는 지하철’에 참가한 사람들이었다.지난 1월에 시작한 책 읽는 지하철은 이날로 8번째 운행에 나섰다. 한 달에 한 번씩 신도림역에서 홍대입구역까지 약 1시간 동안
서울시 은평구에는 아주 특별한 의료생활협동조합(이하 의료생협)이 있다. 언뜻 보면 여타 의료생협과 다를 바가 없어 보이지만, 국내 유일 ‘여성주의 의료생협’이다. ‘여성주의’와 ‘의료생협’. 이 둘의 범상치 않은 만남은 ‘살림의료생활협동조합(이하 살림)’을 만들어 냈다. 2012년 2월 창립한 살림은 현재 1200여 명의 조합원과 함께하고 있다. 새로운 주체, 의료 ‘대상’에서 ‘주체’로“내 몸을 제일 잘 아는 사람은 의사가 아니라 나 자신이다.” 살림 조합사무국 박은지 주임은 사람들이 주체적으로 자신의 건강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