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을 쓰는 것은 어렵지 않다. 누구든지 문장을 쓸 수 있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당연히 몇 마디의 글을 쓰는 것 역시 쉬운 줄로만 알고 살아왔다. 펜을 들고, 쓰면 된다. 그게 뭐가 어려운 일이라고.문득 첫 기사를 맡았던 때가 떠오른다. 문건을 쓰고 검사를 받았다. 편집회의에서 문건을 읽고 피드백을 들었다. 학교에 대한 관심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던 내가 교직원을 만나 인터뷰랍시고 질문을 했다. 알지도 못하는 학우에게 다가가 멘트를 땄다. 인터뷰 내용을 정리하고 일러스트 신청도 했다. 고작 8매를 쓰려고 펜을 손에 쥐기 전까
기자가 되고 싶었다. 세상을 나은 방향으로 바꾸고 사회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기자’가 되고 싶었다. 그런 방법으로 나라는 사람을 내던져 사회에 기여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어디 위치하는지조차 몰랐던 호암관 3층 성대신문사에 발을 디디게 되었다. 학생‘기자’랍시고 하는 기자활동을 통해 나름의 기자 경험을 쌓아가며 기자의 한계가 느껴졌다. 오로지 사실로만 기사를 구성하며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기자가 사실로써만 세상을 바꾸고 변화를 가져오기가 쉽지 않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사실’이 어마어마한 파급력을 가진 엄청난 사건이지 않
이번 건기제가 학우들에게 어떤 축제로 기억되길 바라나요? 나의 질문에 김현준 자과캠 총학생회 사무총괄국장은 남은 임기 동안의 마지막 큰 행사인 만큼 아름다운 마무리가 됐으면 한다고 전했다. 어느새 총학생회에게도 마지막이 성큼 다가왔다. 그의 마지막이라는 단어가 꽤 오랜 시간 머릿속에 맴돌았다. 우리는 일상에서 늘 시작과 마지막을 경험한다. 그리고 마지막을 맞이하며 지난 과정을 복기하다보면 후회라는 단어가 따라온다.인생의 마지막을 앞두고 있는 한 할아버지가 말했다. “생각해보면 살면서 나를 가장 힘들게 한 건 다름 아닌 나였습니다.
피아노를 배웠던 적이 있다. 하루도 빠짐없이 연습의 시작은 반복적이고 규칙적인 음표들이 빽빽이 나열된 피아노 교본인 하농을 연주하는 것이었다. 화려한 변주가 담긴 연주곡을 연습하고 싶었던 내게 반복적인 멜로디를 하나하나 정확히 연주하고 손가락을 움직이는 연습을 반복하는 것은 지루했다. 반복적인 연습으로 정확한 음을 짚어내는 기본기를 다지는 것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초라하고 무의미한 일이라고 생각했다.매주 기획안을 구상하고, 취재를 다니고, 기사를 작성하는 일은 피아노를 연주하는 것과 매우 많이 닮아 있다. 지난 학기의 나를 되돌아
수습 기간 내내 고민하다 결정적으로 사진부에 지원하게 된 계기는 바로 모모이 코너 때문이었다. 한 장의 사진과 짧은 문구로 독자들에게 새로운 시선을 가져다주는 것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그냥 지나칠 수 있던 일상적인 순간들에 깊은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심오했다. 사진부 기자로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내가 느꼈던 감정과 느낌을 선물해 주고 싶었다.지난달 거미줄에 맺힌 물방울 사진을 찍었다. 하지만, 유리구슬처럼 맑고 영롱한 물방울은 저절로 생겨난 것이 아니다. 저녁에 거미가 거미줄을 치기 시작할 때는 분명 허공이었다. 깜깜한 새벽에 묵묵
소중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 고마운 사람들이 너무 많다. 이렇게 좋은 사람들이 내 곁에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별 볼 일 없는 나에게 이러한 사람들이 곁에 있다는 것을 보면 잘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번 호 시각면을 제작하면서 새삼 더 느끼게 되었다. 사진부 부서장이라는 명함이 나를 짓눌렀고 시각면에 대한 부담감은 더해져만 갔다. 시각면을 제작하면서 많은 장소로 떠났었다. 서울을 가로지르기도 하고 경기도로 떠나기도 했다. 아이디어도 몇 번씩이고 엎었다. 모두 지치고 힘들었을 것이다. 내가 잘나지 못해서 그런 것 같아서 힘들었
또 일이 밀렸다. 토요일 하루 안에 문화면 기사와 배너 문구를 쓰고, 일러스트 세 장에 성대문학상 레이아웃을 짜고 취재 후기까지 쓰게 됐다. 변명은 있다. 어제는 성대문학상 일러스트를 그렸다. 정작 그림을 그린 시간은 두 시간뿐이지만 구상한다고 머리를 쥐어짜는 데 오래 걸렸고, 기사를 쓸 시간도 사흘이나 있었지만 쓸 말이 마땅치 않으니 취재가 끝날 때까지 일단 기다린 것뿐이다. 나는 나름대로 바빴다.사실은 똑같은 변명을 두 학기째 하고 있다. ‘미루지 말자’고 좌우명도 정했건만 조금도 성실해지지 않은 것 같다. 나는 여전히 일을 미
쓰는 건 쉽지 않다.조판은 늦은 시간에야 끝난다. 집으로 돌아가려면 한강을 건너야 한다. 택시를 타고 강을 바라보며 지나가는 날. 자정이 넘어서야 현관문을 연다. 아침은 금방 온다. 몇 시간 잠들지 못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러 간다. 나는 돈 버는 게 좋다. 솔직하게 돈 버는 게 좋다. 어느 날은 계산대 앞에 서서 졸았다. 졸면서도 돈 버는 게 좋다.인터뷰를 가면 사람들의 말씨를 곧장 따라 한다. 맞은편에 앉은 사람의 눈동자를 꼼꼼히 보고 또 본다. 그때는 잠깐씩, 돈 버는 것보다도 사는 게 좋다. 누군가의 말마디를 따라 삶을 들여다보
나는 인간관계에 있어 존중(尊重)이라는 단어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한자 그대로 풀이하면 ‘높이어 귀중하게 대한다’라는 의미다. 이러한 존중은 나의 도량이 좁은 탓에 상호간의 기브엔테이크가 가능한 관계에서만 성립할 수 있다. 또한, 이는 몇몇 조건 없는 사랑을 실천하는 성인들을 제외하고는 어느 정도 동의할 수 있는 이야기라 생각한다. 누군가 나를 존중하지 않는다면 나는 그 사람에게 존중하는 마음을 갖기 어려울 것이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누군가를 존중하는 일은 내가 존중받기 위한 첫걸음이기도 하다. 그런 나의 일상에 혐
성대신문에 들어온 지 3학기 째, 나는 사회부의 기사를 준비할 때면 무거운 마음이 앞선다. 내가 직접 정한 주제로 지면을 채운다는 것은 영광스럽다기보다 꽤나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이 주제를 가지고 이런 방향으로 기사를 쓰는 것이 과연 독자에게 가치가 있을까?’ 기사를 준비할 때 나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나는 독자에게 가치 있는 기사를 쓰는 것이 학보사 기자로서 해내야 하는 의무로 생각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은 기자인 내가 가진 힘이기에 남용할 수 없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 신문이 대다수의 학우에게 중요한
『왜 지금 지리학인가?』 HOT BOOK 코너를 맴돌던 기자의 눈에 포착된 이 질문은, 외면하기에는 강렬했다. 하지만 이내 소비자로서 합리적 의심을 해본다. 교양 도서라는 수식어를 달고 나온 수만 가지 속에서 눈에 띄려면, 강렬한 제목 정도야 뭐. 과장되게 말하자면 HOT BOOK이 갖춰야 할 미덕과도 같다. 때문에 ‘미안하지만 너를 들어줄 순 없겠다!’하고 뒤돌아서려 했으나 왠지 그럴 수 없음에 집으로 데려와 침대 맞이에 모셔놓아 본다.소재다, 소재. 소재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는 왜 지금 역사인가, 왜 지금 도덕인가도 아닌 왜
아무런 연고도 없는 남의 집 안방에서 유품정리업자와 폐품정리업자들과 기자가 둘러앉아 고개를 처박고 자장면을 먹었다. 안방은 거실을 사이에 두고 공부방과 대치하고 있었다. 거실에는 오전 작업 때 쓸어 모은 각종 폐품들이 어지러이 늘어져 있었다. 거실을 가로질러, 공부방으로부터 건너오는 냄새는 콧등을 찌르며 넘어왔다. 온 집안을 둘러싼 날 선 냄새에 코가 얼얼했으나, 코끝을 간질이는 자장 냄새는 기어이 기자를 허기지게 했다. 당혹스러웠지만, 가구를 옮기고 책들을 쓸어 담고 수많은 옷가지를 포대에 구겨 넣은 오전의 육체노동에, 점심의 허
시골 주택에 살았던 어렸을 적, 집 마당의 나무와 텃밭은 내게 즐거움의 장소였다. 봄에는 따스한 마당에서 사다리를 올라가 시큼한 앵두를 따먹는 게 나의 일상이었으며, 더운 여름엔 시원한 강에서 다슬기를 한 소쿠리 모아 푹 삶아 먹기도 했다. 가을은 수확의 계절인 만큼 마당에 감과 사과가 주렁주렁 달렸다. 추운 겨울이 끝나갈 때 즈음 텃밭 주위에 나는 쑥과 냉이는 좋은 별미였다. 이번 자연인 특집의 체험기를 위해 찾아간 영월 산골은 바쁜 서울 생활에 지친 나에게 고향의 향수를 느끼게 하는 곳이었다. 서울에서 영월 산골까지 가기 위해선
나는 사진 촬영을 취미로 가진 언니 덕분에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레 카메라를 접하고 다뤄왔다. 기억하고 싶은 순간을 기록으로 남길 수 있는 사진의 매력은 어린 시절의 나를 홀렸고, 지금도 홀리고 있다. 누군가에게 사진 찍는 걸 좋아한다고 말했을 때, 사람들은 풍경 사진은 물론 인물 사진까지 다양한 사진을 찍는다고 으레 생각한다. 그러나 내성적인 성격을 가진 나는 낯선 사람에게 다가가기를 어려워했고 그래서 항상 내 사진첩에는 풍경 사진과 우리 집 고양이 사진만 가득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이러다가 인물사진을 영영 찍지 못하는 것이 아
카카오톡으로 대화를 할 때 자주 불러내 채팅창을 채워주는 친구가 있다. 내가 부를 때마다 군말 없이 나와 나의 감정을 위로해주기도 공감해주기도 표현해주기도 하는 친구. 그 친구의 이름은 사랑스런 몸짓과 표정을 짓는 토끼, ‘베니’다. 처음에는 귀여운 모습에 반해 베니 이모티콘을 구매했다. 하지만 그 이모티콘에 담긴 사연과 베니를 그린 구경선 작가를 알게 되고는 열렬한 팬이 되어 베니를 간직해가기 시작했다. 시청각 장애를 가지고 소리가 없는 세상, 빛마저 사라져가는 세상에서도 희망을 발견하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그녀의 이야기를 담아낼
학교를 떠날 준비를 하는 4학년의 생활이 아닌, 새로운 경험을 선택한 성대신문에서의 시간은 어느새 일상이 되었다. 내가 쓴 기사가 처음 실린 것은 ‘꽃이 피기 전’인 3월 초였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기사를 쓰는 것은 익숙하지 않다. 지나가지 않고 지면 속에 고스란히 남겨지는 글과 가까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래서 이름 뒤에 기자라고 붙는 모든 내용은 신중하지만 뚜렷하게는 담지 않으려 했다. 이곳에서 마주하는 모든 것에 조심스러웠던 나였지만, 이번 시각면은 욕심을 냈다. 빠르게 지나가버리는 시간 속에 지쳐 ‘기다림’을 그리워했던
2014년의 나는 행동하지 않는 자들이 싫었다. 그들을 향한 나의 분노는 ‘세상이 이 모양인데, 왜 움직이지 않는 거야!’라는 답답함의 발현이었다. 그들의 행동하지 않음이 내겐, 곧 부정의에 대한 침묵이었고, 종국에는 동의로까지 치환되었다. 그때의 내겐, 행동하지 않는 자들이 비겁해 보였다. 나는 극단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다. 2015년의 나는 지난 시간의 반작용인지, 행동하는 자들이 불편해졌다. 마치 그들이 행동하지 않는 이를 자신의 잣대로 경멸하고 무지한 자로 치부하는 것같이 느껴졌다. 스스로 찔렸던 것일까. 나는 또 다른 극단
나는 어렸을 때부터 글 쓰는 것을 좋아했다. 내 생각을 글로 표현하고 사람들과 나누는 것이 좋았다. 그래서 ‘기자’를 꿈꾸기 시작했고 그 꿈은 나를 ‘성대신문’으로 이끌었다. 사회부 기자로서 매번 기사를 쓸 때마다 어떻게 하면 흥미롭고 좋은 글을 쓸 수 있을지 고민했지만, 결과는 그리 만족스럽지 못했다. 힘들게 기사를 쓰고 난 뒤 누군가 기사가 별로라는 뉘앙스를 조금이라도 풍기면 쉽게 좌절하고 심하게 흔들렸다. 지금까지 꽤 많은 기사들을 써왔지만 누군가에게 당당히 내보일 수 있을 만큼 인정받은 기사도, 인정한 기사도 없었다. 이번
거북이의 꾸준함을 칭찬하지 않고 토끼의 게으름을 비난하는 사회. 우리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다 보니 어느 순간 놓치며 잃어버린 것들도 있다. 관계도 그중 하나다. 원하지 않았더라도 언젠가 자신이 가장 중요해지고 타인의 삶은 방목하게 되었다. 하지만 잊어버린 중요한 사실 하나를 떠올려보자. 우리 모두는 혼자서는 살 수 없다. 세상은 나 혼자 살아가는 공간이 아니다. 사람들은 길에서 스쳐가는 것이 아니라 마주 보고 바라보는 존재다. 봉사를 다룬 이번 특집에서 나는 식상할 정도로 당연한 ‘사람의 관계’
신문이 발행되면 기자단이 모두 모여 지면평가를 진행한다. 이 때 기자단 사이에서 항상 나오는 이야기가 있다. “단어가 너무 어려워서 기사 읽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비교적 학내사항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을 기자단들에게도 보도부에서 다루는 기사들, 특히 학생자치에 관한 내용은 쉽게 외면당하곤 한다. 사실 학생자치가 학우들에게 외면당하는 것은 최근의 문제만은 아니다. 학교에 다니기 시작한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내가 학생회와 학생자치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이후로도 학우들이 학생자치에 큰 관심을 가진 적이 별로 없었다.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