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명 이유진 기자 (nipit616@skkuw.com)

아무리 좋게 봐 줘도 이상한 행위다. 공포영화를 보는 것은 말이다. 왜 일부러 자신을 놀래킬 장면을 찾아 비명을 지르는 것일까? 이 가학적인 행위는 영화의 역사가 시작된 뒤로 지금까지 계속돼 왔다. 공포영화를 전혀 보지 못하는 기자가 대표작 3편으로 공포영화의 변천사를 조명하며 공포영화의 재미를 탐구해 봤다.
‘공포영화’라고 불리는 장르는 1920년을 전후해 등장했다. 그 뒤로 저예산 영화의 한 축으로 이어지다가, 1960년대에 이르러 알프레드 히치콕의 ‘싸이코’, 조지 로메로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등의 명작들이 탄생하며 당당하게 영화의 한 장르로 자리매김했다. 이후 ‘식스센스’로 대표되는 반전 스릴러, ‘쏘우’같은 슬래셔 무비*등 장르 내 수많은 시도가 축적되며 다양한 하위장르를 포함하게 됐다.


▲ ⓒ네이버 영화 정보
몬스터 영화 '노스페라투'
‘노스페라투’는 브람 스토커의 「드라큘라」를 토대로 한 흡혈귀 영화의 원형으로, 초창기 공포영화 중 최고로 꼽히는 작품이다. 이 영화가 발표된 1922년은 세계 1차 대전 직후의 독일에서 표현주의 영화가 전성기를 이뤘던 시기였다. 현실주의의 대척점에 있는 표현주의 영화는 비현실적이고 과장된 극적 장치를 특징으로 했다. 노스페라투는 그러한 표현주의 영화의 전형으로서, 표현주의 영화의 특징이 공포영화에 응용되는 데 기여했다.
주인공인 부동산 업자 허터는 인적이 드문 곳에 아름다운 집을 사고 싶다는 올록 백작의 편지를 받는다. 백작이 사는 성을 방문한 그는 백작이 뱀파이어란 사실을 알게 된다. 허터는 가까스로 올록 백작의 손아귀에서 탈출한다. 허터를 찾아 그의 마을로 온 올록 백작은 마을 사람들에 의해 태양빛에 노출되고 결국 죽고 만다.
▲ ⓒ길벗영화
슬래셔/스릴러 영화 '아메리칸 사이코'
1980년대는 공포영화의 최전성기였다. △‘스크림’ △‘할로윈’ △‘13일의 금요일’등의 슬래셔 무비가 흥행에 성공해 공포영화의 상업적 가능성을 입증했다. 슬래셔 무비는 잔인하게 신체를 난도질하는 장면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같은 하위 장르인 스플래터 무비와 공통점을 갖지만, '사이코 킬러'의 등장이 필수적이라는 면에서 구별된다.
‘다크 나이트’시리즈의 크리스찬 베일이 등장하는 2000년 작 ‘아메리칸 사이코’는 슬래셔 무비로 분류할 수 있는 영화다. ‘아메리칸 사이코’의 주인공은 미국 상류층의 생활을 즐기고 있는 패트릭 베이트만이다. 그는 고급식당과 명품 등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려는 물질만능주의에 매몰된 인간형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패트릭은 상류층의 최상위에 군림하고 있지는 못했다. 그보다 잘나가는 친구 폴에게 질투를 느낀 나머지 그는 폴을 죽이고, 이어서 연쇄살인을 저지르기 시작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여성들을 난도질하고 태연하게 일상을 지속하는데도 그에게는 아무런 제재가 가해지지 않는데, 그것은 연쇄살인이 모두 그의 환각이었기 때문이다. 영화는 ‘공포’와 함께 물질만능주의·인간소외로 뒤틀린 현대인의 내면을 보여준다.
요즘은 귀신이나 괴물이 등장하는 공포영화보다 범죄자가 살인을 저지르는 것을 보여주는 공포영화가 많아지는 추세다. 우리 학교 영상학과 안상혁 교수는 이에 대해 “현대사회에서 점차 자기 내면의 불확실한 부분에 대한 불안이 커져가는 것을 반영하는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귀신’과 같은 초자연적 존재는 인간 외부에 존재하는 이질적인 것으로서 쫓아버려야 할 대상이다. 하지만 연쇄살인마가 드러내는 광기는 관객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아직 인식되지 못한 자아의 한 부분이다. 공포영화의 관객들은 평소 인식하지 못하고 있던 자기 내부의 광기가 공포영화의 기법을 통해 갑작스럽게 다가오는 것을 보며 공포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한국 공포영화의 흐름, 그리고 인간적인 공포영화 '소름'
▲ ⓒ브에나비 스타 인터네셔널 코리아

 영미권 뿐만 아니라 일본, 이탈리아, 한국 등에서도 활발하게 공포영화를 제작해 각국의 공포영화마다 서로 다른 특징을 갖고 있기도 하다. 한국 공포 영화는 토속적 여귀(女鬼)영화의 전통을 지니고 있다. 60년대 ‘하녀’, ‘월하의 공동묘지’등 공포영화에 한 획을 그은 작품들이 등장하며 부흥했지만, 1970~80년대 독재정권 시기에 점차 모습을 감췄다. 영화예술에 대한 검열도 심했고, 무사히 개봉하더라도 미신에 대한 거부감 때문인지 흥행에는 실패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가 1998년 박기형 감독의 ‘여고괴담’이라는 걸작이 등장했다. 여고괴담은 한국에서 중고등학교를 나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로 뛰어난 영화를 만들었다. 이후 한국에서는 중고등학생들을 다룬 영화를 필두로 공포영화가 해마다 몇 편씩 꾸준히 만들어졌다.
‘소름’은 2001년 그런 추세 속에 개봉한 한국 공포영화다.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김명민, 장진영 등 배우들의 호연과 촘촘한 서사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미금아파트 504호를 중심으로 한 인물들에게 드리운 저주를 주 소재로 하고 있어 전형적인 공포영화처럼 보이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순간적인 공포보다는 ‘불행한 인간’에 초점을 맞춘 슬픈 영화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공포영화의 작품성을 논할 때에는 긴장감, 공포심을 불러일으키는 갖가지 장치들에 대한 평가가 필수적일 것이다. 하지만 빠질 수 없는 요소가 하나 더 있다. 김봉석 영화평론가의 말을 빌리면, “공포라고 하는 존재가 현실적으로 어떤 사회 문제들을 환기시키는가도 중요하다”. ‘여고괴담’은 학교폭력 등 사람들이 자주 마주치는 부조리를 다뤘고,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은 정치사회적 우화로 풀이되는 등 수작으로 꼽히는 공포영화들은 그 영화가 탄생한 시대를 다양한 방식으로 반영하고 있다. 올여름 공포영화를 보러 상영관을 찾았다면, 이 영화가 어디 얼마나 나를 두렵게 하는지, 그리고 얼마나 ‘수작’의 지위를 따낼 자격이 있을지 가늠하며 보면 어떨까.

◇슬래셔 무비=끔찍한 살인마가 등장하는 공포 영화의 하위 장르. 일명 난도질 영화라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