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와 외교의 이름으로 가해진 국가 폭력
안보와 외교의 이름으로 가해진 국가 폭력
  • 나영인 기자
  • 승인 2014.05.12 17:30
  • 호수 156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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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월 1일 열린 ‘경기도 기지촌여성 지원 등에 관한 조례안’의 상정을 요구하는 기자회견. 나영인 기자 nanana26@skkuw.com
 
“조례안을 상정하라!”
지난 4월 1일, 경기도의회 염동식 도의원 사무실 앞에서는 ‘경기도 기지촌여성 지원 등에 관한 조례안’의 상정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조례안은 기지촌 여성에 대한 주거 및 생활안정 지원에 대한 내용을 골자로 한다. 현재 과반수가 넘는 35명의 경기도 의원들이 이 조례안의 발의에 찬성했지만, 도의회 여성가족평생교육위원장이 본 회의에 상정하지 않고 있는 상태다. 기자회견이 끝나고나서야 현장에 도착한 염동식 의원은 4월 도의회 상정에 부정적 입장을 내비쳤다. 상정은 위원장의 권한임에도 “집행부의 의견을 모아야 한다”고 말할 뿐이었다. 조례안의 상정이 정체 단계인 가운데, 하주희 변호사를 포함한 변호인단 10명이 기지촌 여성들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묻기 위한 국가소송을 준비 중이다.

묵인·관리 통한 인권침해에 대한 국가 책임
“당시 불법이었던 성매매를 정부가 ‘기지촌 정화위원회’란 국가 기구를 만들어 성매매를 △방조 △묵인 △관리한 것과, 그 과정에서 적법한 절차 없이 진행된 행위들에 대해 책임을 묻는 것.” 하 변호사는 미군기지촌여성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이렇게 요약했다. 1970년대 국가는 미군에게 안전한 성을 공급한다는 취지로 모든 기지촌 여성들을 대상으로 성병 검진을 진행했다. 국가의 안보와 국제 정치를 위해 개인의 성을 관리한 것도 문제지만, 그 과정에도 위법적인 부분이 있었다. 성병의 유무와 치료 방법, 검진 방법에 대해 여성들에게 구체적으로 설명하거나 공지하지 않았으며, 성병이 있을 경우 여성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감금시킨 것이다. 이를 보호조치로 볼 수도 있지만, 영장이나 법적 근거 없이 인신을 구속하고, 사람을 통제한 것은 인권침해의 소지가 있다.
이와 같은 국가의 성매매 방조·묵인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인정한 판례가 있다. 2004년 대법원이 ‘2000년 군산 대명동 집창촌 화재 참사’에 대해 국가가 유족에게 손해배상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한 것이다. 당시의 판결은 성매매행위에 대해서 단속을 게을리한 국가에 대해 책임을 물은 것이었다.
불법행위를 이유로 손해배상청구를 할 경우, *소멸시효가 지난 것이 문제 될 수 있다. 그러나 지난 4월 내려진 과거사 문제로 국가가 행한 인권침해 사건에 소멸시효를 인정하지 않는 판결이 있었다. 낙태·단종된 *한센인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재판부는 국가가 한센인에게 정관절제수술·임신중절수술을 강요한 사실에 대해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과거사 문제에 대한 국가의 소멸시효 주장이 권리 남용이라는 선례를 남긴 것이다.

기지촌 여성에 대한 인식 바꿔야
하 변호사는 “이번 소송을 준비하면서 ‘위안부 여성은 끌려갔지만, 기지촌 여성은 자발적으로 간 것인데 왜 책임을 묻느냐’는 일반 사람들의 인식을 극복하는 과정이 어려웠다”고 말했다. 또한 ‘매매춘 여성’ 자체에 대한 편견으로 그들이 어떠한 형태로든 피해자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실제로 기지촌 여성 관련 활동가들은 조례안 상정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런 편견에 부닥쳐 힘들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사람들의 일반적인 인식과 달리 국가 책임을 묻는 근거는 ‘기지촌 정화 운동에 국가의 직접적 개입 유무’로 판단된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역시 일본의 국가적 책임을 묻는 근거는 ‘강제연행’에만 있지 않다. 일본군 위안소 제도를 연구하는 윤명숙 박사는 “일본의 국가 책임은 △군위안소의 설치 및 운영 △군 위안부의 징집 및 이송 △패전 이후의 군 위안부 유기 등을 총체적으로 파악해 묻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국가적 책임은 강제연행뿐 아니라 군위안소가 운영되는 과정에서 일본의 직·간접적인 개입 여부로 판단되는 것이다.
하 변호사는 준비 중인 국가 소송에 대해 “국민에 대한 국가의 보호 의무가 어디까지 있는가를 검토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기지촌 여성들이 자신들의 존재를 드러내는 것 자체가 의미 있다”고 전했다. 한동안 여성들은 기지촌에서 일했다는 사실만으로 자신들에게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을 피해 기지촌에서 일한 사실과 그 안의 폭력에 대해 침묵했었다. 그러나 그들은 지금 세상 밖으로 나오고 있는 중이다. 지금이야말로 국가의 책임뿐 아니라, 기지촌 여성들이 다시금 사회로 나올 수 없게 고립시킨 사회를 돌아볼 때다.

◆소멸시효=권리자가 그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음에도, 일정한 기간 그 권리를 행사하지 않는 상태가 계속될 경우 권리를 소멸시키는 제도.
◆한센인=나병 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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