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점상은 도시빈민의 생존 수단의 하나로 전 세계 어느 도시지역에서나 나타나는 사회적 현상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1960년대 이후 도시공간에 본격적으로 노점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도시가 급격히 발전하면서 늘어나는 인구수에 비해 일자리가 부족한 탓에 도시빈민이 발생했고, 이들은 생계 수단을 마련하고자 노점을 차렸다. 이렇게 발생한 노점상은 1970년대 중화학 공업화가 추진되며 그 수가 급증했다. 경공업 중심의 미숙련 노동자들이 직업을 잃고 도시빈민이 됐기 때문이다. 그 후 점차 노동력이 고급화되고 일자리도 늘어 노점상 수가 잠시 감소
# 노점의 메카 종로대로 비우기“어휴, 그때는 노점상이 정말 많았어요.” 종로구청 건설관리과 관계자가 2009년 종로대로의 상황을 떠올리며 말했다. 당시 종로대로는 600여 개의 노점상으로 북적였다. 유동 인구가 많아 노점상이 들어오기 좋은 조건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곳을 지나가는 시민들은 늘어나는 노점상 때문에 통행하는 데 큰 불편을 겪었다. 민원이 들어올 때마다 단속원이 동원됐지만, 노점상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이에 종로구청은 ‘걷기 편한 종로대로’라는 표어 아래 새로운 노점상 관리 방식을 고안했다. 바로 노점특화거리 사업
“저 여기 붕어빵 6개에 얼마인가요?” “네, 1000원이요.” 군것질을 너무나도 좋아하는 나는 어렸을 때부터 학원 수업이 끝나면 주린 배를 채우러 노점을 자주 이용했다. 값이 싸기도 했지만 점포에서는 느낄 수 없는 노점상분들의 친근함에 이끌려 노점에서 자주 군것질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내가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2005년 어느 날 전날까지 분명히 있었던 붕어빵 아저씨가 없어졌다. 나는 궁금했다. 항상 이 자리에 계시던 분이 왜 사라지셨을까? 다음날이 돼서야 친구들로부터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용역 아저씨들이 노점상 아저씨들을
“저희 카페에 오신 것을 환영해요.” 카페 ‘떠나자 배낭여행’(이하 떠배)의 주인장인 장순민(40)씨가 팀플을 하러 온 김수현(사회 13) 학우와 전이주(행정 13) 학우를 반갑게 맞이한다. 시인 이상화에 대한 발표를 준비하며 막막해하는 두 학우의 모습에 그는 서슴없이 카페 서재에 꽂혀 있던 김홍규 교수의 저서 ‘한국 현대시를 찾아서’를 건넨다. 집처럼 편안한 분위기와 주인장의 친절함. 이에 이끌린 학우들은 공부하려고, 연인과의 즐거운 시간을 보내려고 이곳을 찾는다. 인사캠 정문 오른편, 좁은 골목길의 한 모퉁이를 돌면 3층짜리 건
프랜차이즈 업체가 골목 깊숙이까지 확장하며 소상공인들은 어려움에 부딪쳤다. 막대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둔 프랜차이즈 업체와 동등한 출발선에 설 수 없는 까닭이다. 결국 경쟁에서 밀린 소상공인들은 실업자가 되기 일쑤다. 이에 일부 소상공인들은 협동조합을 만들어 프랜차이즈 업체에 대항하는 중이다. 그중 누구보다 다양한 시도를 하며 성과를 거두는 곳은 ‘동네빵네 협동조합(이하 동네빵네)’이다. 지난해 8월 설립된 동네빵네는 서울시 서대문구, 은평구 지역의 영세 자영업자들이 결성한 제과업계 최초의 소상공인 협동조합이다. 1년 동안 프랜차이즈
지난해 3월 영어쓰기 첫 수업이 끝나고 우연히 마주친 성대신문 배포대. 대학에도 신문이 있다는 사실에 마냥 호기심이 들었던 순간, 문지현(문정 13) 학우는 성대신문과 첫 인연을 맺었다. 노동문제연구회 부원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면서도 배포대에 놓인 성대신문을 잊지 않는 그녀를 만나봤다. 처음 접했을 당시 성대신문은 어땠나.세세한 부분까지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구성이 매우 알차다고 생각했다. 학내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사안부터 학우들의 문화적 소양을 채워줄 수 있는 내용까지 담겼던 점이 매력적이었다. 특히 신입생들의 입학에 관한 1면
자과캠에서 버스로 20분. 촘촘하게 들어선 아파트 단지가 보인다. 그곳에선 주민들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칠보산 마을 공동체는 수원시 권선구 금호동 지역의 LG빌리지 아파트를 중심으로 형성됐다. 칠보산 마을에는 현재 △사이좋은방과후 △칠보산도토리교실 △칠보산문화놀이터 등 10여 개의 주민자치단체가 속해있다. 버스에서 내리니 포스터를 붙이는 두 사람을 발견했다. 주민 이계순씨와 박민수씨는 스스로를 각각 ‘달님’과 ‘맞장구’로 소개했다. 칠보산 마을에서는 구성원들 간의 친밀감을 형성할 목적으로 별명을 사용하고 있었
성대신문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에겐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기자의 꿈을 키우기 위해, 다양한 경험을 쌓기 위해, 학내 사안에 대한 관심으로, 그리고 따뜻한 글을 쓰기 위해 등. 이처럼 성대신문에 들어오게 된 사연은 모두 다르다. 창간 60주년을 맞아, 성대신문에서 꿨던 기자의 꿈을 현실로 실현시켜 어엿한 언론인이 된 선배들을 만나보려 한다. 동아일보 윤완준 기자와 한국일보 박소영 기자. 이들이 전하는 생생한 취재 현장 이야기와 기자가 말하는 기자의 삶을 들어봤다.동아일보 윤완준(독문 95) 기자 인터뷰“진실을 통해 삶을 성찰하는 기사
곱게 땋은 댕기 머리, 고상하게 차려입은 한복. 그러나 그림 속 여주인공은 속이 훤히 비치는 치마를 입고선 라면을 허겁지겁 먹는다. 그리고 명품 가방 위로 쏟아지는 커피를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 순간 ‘아차!’ 하며 당황한다. 이 모습을 화폭에 담은 ‘아차Ⅱ’가 내걸리면서 어느 한국화가는 세간의 주목을 받는다. 이후에도 독특한 작품들을 전시하고 지난 6월 개최한 개인전 ‘내숭 올림픽’도 성황리에 끝마친다. “고답적인 한국화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는 작가다.” 한국화의 대중화를 이끄는 선두주자, 한국화의 아이돌로 불리는 김현정 화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