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시절,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한 선생님의 말씀이 있다. 더 많은 모래를 손에 쥐고 싶거든, 손에 힘을 빼야한다는 말이다. 토론대회에 들어가기 전 긴장한 나에게 즐기고 오라며 해주신 선생님의 말씀은 나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여기 더 많은 모래를 쥐려 너무 힘을 준 나머지 모든 것을 잃어버린 사람이 있다. 이반 일리치 골로빈. 그는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살았다. 사실 남부럽지 않은 삶이었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법을 공부하고 법조인으로 살아온 그는 소위 성공한 인생이라고 할 법하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가정을 이루고 평탄하게
약 2년 전, 성대신문에 입사하기 위해 논술시험과 면접을 봤다. 아무것도 모르고 어영부영 보낸 1학년 1학기를 만회하고자 뭐라도 도전해보자는 마음이었던 것 같다. 처음 신문사에 입사해 선배 기자들이 활동하는 모습을 보며 의무학기인 3학기조차 버티지 못할 것이라며 걱정했었는데, 어느새 4학기라는 임기의, 학생 기자라는 지위의 마지막에 와있다. 마지막 회의가 있던 날, 함께 퇴사하는 동기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래도 잃은 것보다 얻은 게 많은 생활이었다’는 말을 했다. 생각해보면 결코 무난하게 지나갔던 시간은 아니었다. 기자로서의 일에
‘역사의 가치’란 무엇일까? 이 질문을 처음 접했던 건 초등학교 역사 시간, 기록된 역사가 어떤 가치를 가지는가에 대해 배울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마도 선생님께서 교과서에 나온 대로 ‘문자가 있기 때문에 글을 사용할 수 있고, 글이 있기 때문에 역사가 기록돼 우리는 몇 세기 전의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일을 겪었는지 알 수 있다’ 정도로 말씀해주셨던 것 같다. 나 역시도 역사책을 읽을 때, 그저 ‘이때는 이런 일이 있었구나’하는 생각을 하면서 마치 나와 동떨어진 세계에서 있었던 일인 것처럼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
나는 어릴 때부터 타인의 기분을 살피고 그 사람의 감정에 나를 맞추는 것에 익숙했다. 생각해보면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 같다. 이 생각은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나아가 타인이 나를 싫어하지 않는지 등의 잡념으로 퍼져갔고, 마침내 ‘내가 생각하는 나’보다 ‘타인이 생각하는 나’가 마치 나의 모습인 것 마냥 착각하곤 했다. 혹자는 ‘타인의 시선을 너무 신경 쓰지 말고 무시하라’고 조언하기도, ‘언제까지 모두에게 완벽한 사람일 수는 없다’고 질책하기도 했다. 실제로 조언과 질책을 따르려고
이제까지 나는 ‘훌륭한 청자’의 자세란 화자의 감정과 상황에 공감하고 완전히 이입해 위로를 건네는 것으로 생각했다. 스스로가 꽤나 좋은 청자라고 생각했고, 실제로 지인들은 나에게 ‘고민을 잘 들어주고, 해결해주는 사람’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줬다. 그런데 얼마 전, 내 생각에 약간의 균열을 가져오는 일이 발생했다. 어릴 적부터 알고 지내던 친구가 연인과 이별했다며 상담이 필요하다고 했다. 친구는 평소 연인과 자주 다투고 자신의 상황을 하소연하곤 했기 때문에, 나는 친구를 만나자마자 “잘 됐다”며 위로를 건넸다. 그런데 친구는 앓던 이가
최근, 오랜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친구는 3개~4개의 과외 일을 하며 아주 바쁘게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한 명의 학생을 가르치는 것도 힘든데, 어떻게 여러 명의 학생을 가르치고 있는지 새삼 대단해 보였다. 연신 칭찬과 질문을 쏟아내는 나에게 친구는 한숨을 쉬며 고민을 털어놓았다. “난 최선을 다해 쉽게 이야기하는데, 왜 이렇게 못 알아듣는지 모르겠어. 이 정도는 상식 아니야?” 한 학생이 설명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는 고민이었다. “학생마다 이해력이 다르니까”라는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넨 후 다음에 한번 보자는 기약 없는 약속을
‘기자는 양쪽 입장을 다 들어본 후에 기사를 써야 한다.’ 선배 기자가 나에게 강조했던 말이다. 그는 한쪽의 입장만 들어서는 진정한 진실을 알 수 없다며 양쪽의 입장을 모두 들어본 후에 각자의 입장을 기사에 담아야 한다고 말했다.사실 나는 이 당연한 것을 지키지 않아 큰 실수를 한 적이 있다. 지난 학기 발간된 1651호 신문에서 나는 총학생회의 인권·복지 공약을 점검하는 기사를 썼다. 기사의 내용 중 총학생회가 대동제에서 배리어프리존의 위치를 변경해 장애 학우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도록 했다는 부분이 있다. 총학생회장과의 인터뷰에
11월이 시작되자마자 커피 프랜차이즈에서 앞다투어 ‘2020 다이어리’를 내놓았다. 처음으로 참여를 결심한 나는 달성 목표를 위한 쿠폰 개수를 보고 그날부터 내 얄팍한 대인관계에 기대어 쿠폰을 구걸하기 시작했다. 결국, 얻긴 얻었다. 새해를 시작하기 한 달도 더 남은 시점부터 다음 해를 준비하기 시작한 것 같아 뿌듯했다.그래서 지금도 그 다이어리를 보며 뿌듯한가? 질문의 대답은 하나다. ‘아니’ 다. 되려 빈 다이어리를 지금부터 채워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나는 너무 빨리 다음 해를 준비한 것 같다. 신, 아브락사스헤르만 헤
세상에 ‘잊기 좋은’ 이름은 없다. 김애란 작가의 잊기 좋은 이름에 나오는 구절이다. 그는 이전 원고를 오랜만에 다시 읽고, 고치고, 버리다 ‘이름’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고 한다. 그동안 그를 스쳐 간 사람의 이름, 풍경의 이름, 사건의 이름을 말이다.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다 그는 눈부신 순간들을 만났다고, 그 이름과 시간을 오래 기억하고 싶다고. 신문사에서 보낸 기나긴 시간을 매듭지으며 나도 잊기 좋은, 그러나 잊어서는 안 되는 이름들을 하나하나 떠올려 본다. 첫 번째 이름, 부사(副詞)와 인사신문사에 막 들어왔을 때 고치기
지난달 두산 베어스는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4연승을 거둔 채 한국시리즈 우승을 확정지었다. 두산의 완벽한 수비와 키움(구 넥센) 타자들의 멋있는 안타를 구경하는 것은 쏠쏠한 재미가 있었다. “졌어도 최선을 다하는 야구를 했다”는 말은 그래도 준우승을 한 키움한테나 할 수 있는 말인 것 같았다. 시즌 내내 하위권에 머물던 KIA, 삼성, 롯데에는 “감독을 바꿔라”, “니들이 그러고도 프로냐” 등의 비난이 쏟아졌다.프로란 무엇인가. 박민규 작가는 소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에서 프로의 세계를 이렇게 규
“What is real? How do you define ‘R.E.A.L’?” 영화 를 본 사람이라면 모피어스의 이 대사를 기억할 것이다. 주인공 네오는 인공지능이 만들어낸 가상의 공간인 ‘매트릭스’를 진짜인 줄 알고 살아왔다. 본인이 살아온 세상이 그저 기계들이 조작해낸 ‘가짜’였음을 알게 된 네오는 절규한다. “이렇게 내 손에 느껴지는 가죽 소파의 감촉이 다 가짜라니? 하물며 매 순간 혀와 코로 느껴온 맛과 냄새는 셀 수조차 없는데!” 혼란스러워하는 네오에게 돌아오는 모피어스의 대답은 냉혹하면서도 깊은 울림이 있다.
#1.새로 이사 온 동네의 A 프랜차이즈 카페는 오후 10시밖에 되지 않았는데 이미 불이 꺼져있었다. 깜짝 놀랐다. 정말 깜짝. ‘전에 살던 동네는 12시까지도 하던데, 여기는 왜 이렇게 빨리 닫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사를 하겠다는 거야 말겠다는 거야”라고 투덜거리며 나는 집으로 돌아갔다.#2.프랜차이즈 김밥가게가 들어온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원래부터 있었던 분식집은 문을 닫았다. 새로운 김밥가게는 깔끔해서 좋았다. 자리마다 신용카드 단말기가 놓여 있어 주문하기도 계산하기도 더 편리했다. 건너편에 ‘상가 임대’라고 쓰인 종이
얼마 전, 동네에 새로 생긴 쇼핑센터에 놀러 갔다. 이런저런 구경을 하다가 아이들이 신나게 뛰어다니는 키즈카페를 보게 됐다. 흠잡을 곳 없이 쾌적하고 좋아 보였던 그 키즈카페의 문제점은 딱 하나뿐이었던 것 같다. ‘입장료 1만 8000원’. 8000 원도 아니고 1만 8000원이라니. 올해 최저임금은 8350원이다. 두 시간 열심히 일해도 아이 한 명조차 키즈카페에 못 들여보내는 현실을 자각하니 약간 씁쓸해졌다.윤이형 작가의 『그들의 첫 번째와 두 번째 고양이』에서 주인공 희은은 부모가 되는 일을 이렇게 표현한다. ‘아이의 양육자가
이번 여름방학에는 신문사 수습 시절부터 함께 한 친구와 호주에 다녀왔다. 여행을 가기 전에는 온 세상이 아름다웠는데, 다녀온 뒤 깨진 적금을 보며 허무함이 몰려왔다. 그럼에도 여행을 아름답고 의미 있는 추억으로 간직해 보고자 하는 마음으로,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를 펼쳐 올 여름 내가 다녀온 ‘여행의 이유’를 되돌아봤다.상처를 몽땅 흡수한 물건들로부터 달아나기김 작가는 집이 아니기 때문에 호텔이 좋다고 이야기한다. 말 그대로 집은 언제나 해야 할 일들이 눈에 띄는 의무의 공간이라는 것이다. 집에는 가족끼리 서로 주고받은 고통
약 2년간의 기자 생활을 책 한 권과 함께 마무리하게 됐다. 예술대학에 속해 있다는 자신감 하나만으로 지원한 문화부에서의 기자 생활은 내가 얼마나 좁은 세계에 갇혀 있었는지를 알게 해줬다. 이 생활을 마무리하면서 다시 한번 나의 편협함을 깨닫고자 『아름다움이란 무엇인가』를 읽고 감히 그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해보려 한다.사실 ‘아름다움’에는 명확한 기준이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것이 누군가에게는 아름답다고 느껴지겠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아닐 수 있다. 이 책에서는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어야 그를 이해할 수 있다고
언어가 사고를 규정한다는 사피어-워프 가설에 흥미를 갖고 있다면 드니 빌뇌브의 영화 (2016)를 재미있게 볼 수 있다. 언어가 세계를 재현하는 방식에 따라 언어 사용자의 세계 경험 방식이 결정된다면 언어로 대상을 재현할 때 숙고해야 할 지점이 생긴다. 신조차 죽어버린 시대(니체)에 고작 언어로 대상의 고정관념을 강화하고 틀 속에 가둬도 되느냐는 의문으로 시작하는 재현의 윤리학, 바로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이다.구병모 작가의 『어느 피씨주의자의 종생기』(2017)는 P라는 소설가가 정치적 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