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가받는 것이 일상이 된 세상이다. 개인의 일생을 돌아볼 때 ‘평가에서 자유로운’ 시기는 몇 년이나 될까.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한글을 떼는 순간부터 직장에 입사해 끊임없이 경쟁력을 확인받아야 하는 시기까지. 혹은 그 이후까지 평가는 이어진다. 그리고 평가 결과에 맞춰 자신을 정비하는 것은 어린아이에게도 익숙한 일이 됐다. 평가를 받는 것은 개인뿐만이 아니다. 대학 또한 평가의 잣대를 피해갈 수는 없었다. 대학구조개혁평가 계획이 재작년에 발표되고 작년에 평가 결과가 발표되면서 대학들은 일괄적인 첫 ‘공식 성적표’를 받았다. 지
또다시 개강이 왔다. 방학 말미에는 개강이 싫다는 볼멘소리를 하게 되면서도 개강 후의 캠퍼스를 걸어 다닐 때면 활기찬 분위기가 몸을 감싼다. 새 식구를 맞으려는 학내 단체들이 건물 앞에서 힘찬 목소리로 홍보를 하고 있을 때면 새내기도 아닌데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언제나 그렇듯 ‘시작’이라는 단어는 설렘과 함께 온다. 시작의 설렘을 안은 건 비단 혼자만이 아닌가 보다. 학기 초마다 수습 기자 모집을 할 때면 각자 나름의 희망 사항을 가지고 지원한 이들의 설렘과 마주하게 된다. 자신이 기대했던 바를 신문사 안에서 실현할 수 있을지
“논에 들에 / 할 일도 많은데 / 공부시간이라고 / 일도 놓고 / 허둥지둥 왔는데 / 시를 쓰라 하네 / 시가 뭐고 / 나는 시금치씨 / 배추씨만 아는데” (소화자,「시가 뭐고」,『시가 뭐고』). 지난해 겨울, 한글을 막 뗀 경상북도 칠곡군 ‘할매’들이 시집을 냈다. 시집에는 나날의 노동에 대한 태도, 먼저 간 영감과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 한글을 배우고 익히는 즐거움 등이 할머니들의 방언 섞인 꾸밈없는 언어로 표현돼 있다. 시집을 읽는 내내 소박한 그네들의 삶과 솔직함에 미소 짓게 된다. 시집을 덮고 나면 문학이 그리 거창한 것
최근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비극적 사건들의 피해자는 공통적으로 영유아·여성·노인 같은 사회적 약자들이었다. ‘약육강식’의 논리가 지배하는 정글도 아닌 문명화된 국가에서 이런 사건들이 연달아 발생한다는 것은 분명 비극이다. ‘강남역 살인 사건’과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 대한 얘기다.애덤 모턴이라는 철학자는 잔혹함에 대하여라는 책을 통해, 악인과 보통 사람은 근본적으로 다른 사람이 아니며 대부분의 악은 오히려 보통 사람들의 잘못된 행동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논증한다. 그는 악의 개념을 정립하는
우리 학교를 포함해 전국의 많은 대학이 봄 학기를 맞아 ‘대동제’라는 이름을 걸고 축제를 준비한다. 본래 대동제는 80년대 중반 부산 지역대학들을 중심으로 도입된 새로운 형식의 축제였다. 학생들은 사회현실에 대한 고뇌가 담긴 노래와 시를 발표하고 마당극 놀이를 했다. 소비문화 중심적인 대학 축제를 좀 더 의미 있게 바꿔보자는 자성에서 시작된 대동제는 학원 자율화와 민주화의 열망을 담고 있었다. 90년대 이후 이념대립이 줄어들고, 절차적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자리 잡으면서 대동제는 탈정치적으로 변했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사회가 대학
“인공지능 시대에는 무노동 계급이 탄생할 것입니다. 이 계급에 속한 수많은 사람을 어떻게 할 것이냐가 인류 최대의 과제가 될 것입니다.”지난달 26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유발 하라리 교수의 강연에 참석했다. 하라리 교수는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사피엔스』의 저자이다. 이스라엘의 역사학자인 그는 이 저서를 통해 여섯 개의 인간종 중 하나에 불과했던 사피엔스가 어떻게 다른 인간종을 누르고 세계의 지배자가 되었는지 설명하고 있다.이날 강연에는 진화 생물학자인 최재천 교수가 토론자로 배석했다. 최 교수는 하라리 교수가 언급한 ‘
프랑스의 정신과 의사 프란츠 파농은 2차 대전 이후 알제리의 참혹한 현실을 목도한다. 당시 프랑스의 식민 지배를 받던 알제리엔 인종차별과 폭력이 난무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알제리인의 폭력 행위는 프랑스인을 향하기보다는 같은 알제리 민중을 향했다. 원주민 중 자신보다 만만한 대상을 골라 충동적으로 살해하고 범죄를 저지르는 일이 빈번했다. 파농은 이런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수평 폭력’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수평 폭력은 자신을 억압하는 근원이 아닌 자신과 비슷하거나 나약해 보이는 사람에게 대신 분노를 표출하는 것이다.우리 사회에서도
마틴 루터가 살았던 16세기 로마 가톨릭교회의 부패는 극심했다. 루터는 가톨릭교회를 반박하는 '95개의 논제'를 내건다. 성서를 읽었고 진실을 알아버렸기 때문에 루터는 달리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그가 알고 있는 진실과 세상의 괴리가 너무 크고 고통스러워 그는 긴 밤을 지새웠다.루터는 보름스 국회의 소환에 응한다. 주장을 철회하라는 국회의 요구를 거절하고 그는 이렇게 말한다.“나의 양심은 신의 말에 사로잡혀 있다. 왜냐하면 나는 교황도 공의회도 믿지 않기 때문이다. 교황이나 공의회는 자주 잘못을 저질렀고, 서로 모순된 것이
바둑은 인류사 5000년을 겪으며 가장 정교하게 다듬어진 놀이다. 바둑판은 가로, 세로 19줄의 괘선이 교차하면서 361개의 착점을 이루고 있다. 첫수를 주고받는 경우의 수만 대략 13만 가지, 전체 경우의 수는 10의 360승에 달한다. 관측가능한 우주의 전체 원자 개수보다 많다.바둑은 계산이 아닌 직관의 영역이다. 바둑을 두는 사람들은 ‘젖히고’, ‘갈라치고’, ‘넘긴다’. 바둑의 수는 엷음과 두터움의 이치로 환원된다. 이런 이치를 깨달은 자는 ‘신의 경지에 다다랐다’라고 밖에 딱히 표현할 길이 없다. 바둑에서 9단은 ‘입신(入
지난 학기 기말고사 기간 학우들의 SNS는 양 선거운동본부(이하 선본)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중선관위), 전 자과캠 총학생회장 등의 성명문으로 뒤덮였다. 각자가 자신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상황 속에서 학우들은 혼란스러웠다. S-Wing 선본(이하 스윙)은 중선관위와 선거 시행세칙을 둘러싸고 유권해석 논쟁을 벌였다. 여기에 전 자과캠 총학생회장이 전 자과캠 부총학생회장과 Askk U 선본의 자과캠 정후보 그리고 당시 자과캠 중선관위장의 야합 의혹을 제기하고 나서면서 선거는 더욱 미궁 속으로 빠져들었다. 학우들은 ‘머드축제가 열렸다’
입학식. 봄. 새내기. 시작. 형용사나 부사가 없이도 오롯이 빛나는, 설렘과 희망이 담뿍 담긴 단어들이다. 12년 혹은 그 이상의 치열한 입시경쟁을 통과한 새내기들을 진심으로 환영한다.나는 보통의 입학식 연사들처럼 높은 지위에 있거나 막대한 부를 갖고 있지는 않다. 단지 여러분보다 조금 일찍 대학에 왔을 뿐이다. 선배의 입장에서 여러분께 들려줄 얘기는 애석하게도 어두운 얘기뿐이다. 며칠 전 EBS에서 방영된 이라는 다큐멘터리를 흥미롭게 봤다. 다큐는 서울대 교수학습개발센터 이혜정 연구소장의 특별한 연
매 학기 10번. 한 학기에 16주라는 점과 중간·기말시험 기간을 고려하면 매주 신문이 발행된다. 그리고 신문이 나오는 주는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모든 기자가 바쁘게 움직인다. 2015년에는 이번 호를 마지막으로 더는 신문이 발행되지 않는다. 나 또한 편집장 임기를 마치고 신문사를 떠난다. 12월, 떠나보내야 할 것이 많아지는 달이다.얼마 전, 제48대 총학생회장단 선거가 끝났다. 개표 결과 학우들의 마음은 'S-Wing' 선본 측으로 기울었다. 개표가 있던 목요일 밤, 성대신문 보도부 기자들은 개표현장으로 나가 개표 소식을 실
“다른 사람에게 자신이 믿고 따르는 가치관과 종교를 믿도록 강요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기가 결정하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말을 맹목적으로 믿고 그들에게 선택을 맡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전자의 사람이나 후자의 사람이나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것입니다.” - L. N. 톨스토이학생회 선거철이 돌아왔다. ‘학우들이 후보자의 공약을 잘 읽어보고, 선택하길 바란다’는 진부한 말로 글을 시작해보려 한다. 명언도 하나 적었다. 끝으로 ‘한 해 동안 학생자치의 흐름을 결정할 선거니 반드시 투표를 부탁한다’는 투표 독려의 말도 빼먹지 않고
가을비가 내린다. 가을 햇살에 물들었던 나뭇잎이 떨어져 땅을 붉게 적신다. 이맘때면 어김없이 추워진다. 대학수학능력시험평가. ‘보통’의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겪었을 일이다. 나에게는 5년 전 일이라, 그 날 일이 비 내리는 하늘처럼 흐릿하다. 입학 후 나는 낯선 환경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했다. 분명히 대학 수업을 받을 수 있는 능력을 ‘공인’받아서 입학했는데도, 남들처럼 학교를 다니지 못했다. 나는 1학년 1학기도 제대로 마치지 않고 학교를 떠났다.혜민 스님은 자신의 책에서 이렇게 묻는다.“왜 정말로 인생에서 중요한 것들은 학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 “어떤 사람들은 운명의 솟구치는 파도에 휩쓸리거나 시대와 나라가 만들어내는 혼란스러운 물줄기 속으로 밀려들어가면서도 늘 그 위에 코르크처럼 까닥거리며 떠 있다.” 교과서를 두고 갑론을박이 끊이질 않고 있다. 국정화 바람은 대학 캠퍼스도 한바탕 휩쓸고 있다. 교수들은 물론이고 학생들 역시 공개적으로 문제에 관한 자신들의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국가의 정책을 두고 여러 계층에서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좋은 현상이다. 시민들의 다양한 의견은 민주주의를 끌고가는 힘이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수의 학생들이 의견을
이틀간 열렸던 인사캠 축제 ‘성대한밤’의 마지막 날, 신문사에서 마감하다 잠시 바람도 쐴 겸 바깥에 나갔다. 경영관 앞 난간에 몸을 기댄 채 금잔디를 내려다보았다. 무대에는 킹고응원단이 올라와 있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킹고응원단의 응원 무대를 본 것은 11년도 신입생 OT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추억에 젖어 꽤 오랫동안 그들을 지켜보았다. 응원이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던 때, 응원단장이 마이크를 잡고 OB 선배들의 무대가 준비되어 있다고 말했다. 내 나이 또래의 OB들이겠거니 생각하며 그 무대를 기다렸다.곧이어 무대는 킹고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운명의 지침’을 바꿔 놓을 만큼 강렬하다. 처음은 늘 우리 마음에 오래 남는다. 아련한 첫사랑의 기억, 군대에서 눈 뜬 채 지새우는 첫날 밤, 비행기를 처음 탔을 때의 느낌. 또, 처음은 사람들의 관심을 한 눈에 받는다. 처음 내리는 눈, 처음 피는 꽃. 이번 특집팀에서 다룬 '첫' 기획 역시 그러한 취지에서였다. 이런 생각을 해본다. 우리의 '끝'은 어떨까? 우리는 마지막에 관해 이야기할 때 사뭇 진지해진다. "이번이 진짜 마지막이야"라고 말하며 다짐을 하기도, "너랑은 끝이야"라고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번 성대신문을 훑어보기만 해도 이를 알 수 있다. 문화부에서는 한국의 전통 의상인 한복에 대해 다루는 한편, 학술부에서는 차세대 프린팅 기술을 취재했다. 한복을 입고 3D 프린터 앞에 서서 인쇄를 하는 모습을 자연스럽지 않지만 어렵지 않게 떠올릴 수 있다.전통과 최신이 어울리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막상 이들을 한 데 놓고 보면 생각보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눈앞에서 펼쳐질 수도 있다. 이번 호 사회부에서 다룬 ‘독거노인-대학생 룸 셰어링’이 바로 그것이다. 할머니와 여대생. 우리는
청첩장을 받았다. 청와대 사랑채에서 결혼식을 올리니 참석해서 축하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청와대 사랑채에서 한다고 하니 결혼 상대가 정부의 고위직이라도 되나 싶었다. 결혼식 당일, 나의 추측이 틀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식장에는 ‘2015 여성가족부 가족가치확산 사업, 청와대 사랑채 작은 결혼식, 청년여성문화원’이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이번 주 사회부 박범준 기자가 취재한 ‘작은 결혼식’을 글로만 보다가 직접 눈으로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작은 결혼식’을 하는 부부 중에는 두 부류가 있다고 한다. ‘작
새 학기를 1일이 아닌 31일에 시작하니 어설프고 찝찝한 기분이 든다. 왠지 손해 본 것 같다. 주변에는 정말 31일이 개강하는 날인지 물어보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왜 그런 느낌이 드는 것인지 자문에 해보았다. 나에겐 아쉬움이 가장 큰 이유였다. 종강과 동시에 알찬 방학을 계획하던 ‘나’와 개강을 앞두고 빠르게 지나간 시간에 허무함을 느끼는 ‘나’ 사이의 괴리감도 한몫했다. 방학 때가 되면 뭔가를 해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다. 일상을 돌이켜 보면 사람들은 대부분 무언가를 채우는 일을 하며 살아간다. 우리 기자들만 보더라도 학기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