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인 필자는 종종 이런 질문을 받는다. “서울에서 가장 중요한 건축은 무엇인가요?” 개별 건물이라면, 문묘나 비원이 중요하겠지만 우리의 삶을 의탁해야 하는 도시 차원에서 생각하면, 서울에서 가장 중요한 건축은 바둑판 모양의 길(어반 그리드, 이하 UG)과 그 길이 만드는 정사각형 땅(어반 블록, 이하 UB)의 관계다. 미국의 UG는 어떻게 시작해서 진화했을까? 미국 도시 대부분은 19세기에 만들어졌다. 그래서 유럽보다 UG 기원을 옛 지도에서 찾기 쉽다. 독립 당시, 미국 도시는 해로와 운하를 통해 무역했기 때문에 UG는 해변이
올해 1월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렸던 ‘CES 2024’ 에서의 화두는 단연 AI(인공지능)이다. 칩 제조사와 PC, 스마트폰 제조사들도 AI를 활용한 제품을 대거 선보였다. AI기술이 전 산업에 확대되는 조짐이 보인다. 인간의 뇌를 모방한 AI기술은 1960년대 이후 오랜 시간 동안 연구되어 온 분야로서 1980년대 전후, 학습에 필요한 엄청난 계산량으로 현실성 없는 기술로 인식되었다.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딥러닝 학습 알고리즘의 개발과 더불어 그래픽 전용 처리장치인 GPU(Graphic Processing Unit) 시스
스코틀랜드는 인구 약 550만 명의 작은 국가이다. 영국 본섬의 일원이지만, 아무래도 그 섬의 중심은 잉글랜드인 탓에 우리의 관심을 많이 받지 못하는 편이다. 그러나 18세기부터 19세기 초까지, 스코틀랜드는 유럽 지성세계의 중심에 있었다. 당시 스코틀랜드 지식인들은 다양한 지적 영역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특히 유럽 계몽주의 운동의 선두에 있었다. 이는 수도 에든버러가 “북구의 아테네”라는 명예로운 별칭을 가졌던 사실에서도 잘 드러난다. 미국의 토마스 제퍼슨은 “세상 그 어느 곳도 에든버러와 경쟁할 수 없다. 잉글랜드와 미국의 대학
1932년 제임스 채드윅이 중성자를 발견한 순간은 물리학 발견 중 세상을 바꾼 위대한 업적 중의 하나로 기억되고 있다. 그는 강한 방사선을 노출시켜 베타 입자를 방출하는 과정에서 중성 입자를 발견하였다. 이 발견은 원자핵 구조에 대한 이해를 혁신적으로 바꿔 놓았으며, 원자로와 핵무기 개발, 핵에너지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중성자는 원자핵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이러한 발견은 우리가 원자핵과 에너지를 다루는 방식을 완전히 변화시키게 되었다. 1953년 제임스 왓슨과 프란시스 크릭이 DNA의 구조를 결정하고 발표
내가 유학생으로서 1999년 처음 도착한 베를린에서 서울은 보이지 않았다. 멀어서 보이지 않았다는 단순한 의미가 아니다. 서울을 들어본 사람들은 있었지만,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물어보면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 길에서 누군가 다가와 일본사람인지 중국사람인지 물어보는 경우는 있었지만, 한국인인지 물어보는 일은 거의 없었다. 독일에 유학 온 어떤 한국인 학생이 박사논문 주제를 결정할 때 실제 일어났던 일이다. 학생은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와 관련된 논문을 쓰고 싶었다고 한다. 외국인이 그렇게 어려운 주제를 선택하는 것을 보고 지도교수
지구상의 생명체는 공생, 기생, 경쟁, 포식 등의 상호작용을 하면서 생존한다. 뻐꾸기가 뱁새에게 알의 부화를 맡기는 기생, 호랑이와 같은 대형 포유동물의 포식, 유한한 자원을 쟁취하기 위한 경쟁과 같은 방식으로 살아가는 생물종은 다른 종의 상태에 따라 쇠퇴할 위험이 크다. 반면에 꿀을 제공하는 식물과 꽃가루를 옮겨주는 곤충과 같이 서로 이익을 주는 공생 관계가 안정적 생존의 바람직한 관계로 보인다. 인간과 다른 생물종의 관계는 인간이 진화하면서 일방적 포식 관계가 된 것이 아닌가 싶다. 이는 생태계 균형을 깨뜨리고 결과적으로 그 폐
21세기는 데이터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는 매일 엄청난 양의 데이터를 생성하고 있으며, 이 데이터는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고 있다. 데이터가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고, 문제를 해결하며, 미래를 설계하는 데 필수적인 자원이 된 것이다. 물론 데이터 자체는 단순한 숫자와 문자의 집합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를 분석하고 해석함으로써 우리는 귀중한 정보와 통찰을 얻을 수 있다. 예를 들어, 고객 데이터 분석을 통해 기업들은 소비자의 구매 패턴을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맞춤형 마케팅 전략을 개발할 수 있다. 또한,
성균관대 건축학과는 매해 10월이 되면, 강학(講學)을 뒤로하고 유식(遊息)을 떠난다. 남한을 수도권-강원권-경상권-전라권-충청권으로 나누어 매해 10월에 전통건축과 현대건축을 엮어 건축 답사를 한 곳씩 떠난다. 그래서 1학년서 5학년까지 남한을 한 바퀴 돌 수 있게 디자인되어 있다. 올해는 경상권 차례였다. 답사 일정과 방문지는 학생회가 주관한다. 지난 몇 년간은 코로나로 답사를 못 해서였을까? 올해 계획은 야심 찼고,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통상 학생회가 고민하는 것은 학생 1인당 내야 하는 비용이다. 8만 원 선이면, 참여율이
이번 학기 자연과학대학 학생들이 주로 수강하는 강의를 맡았다. 자연대 학생들의 인문학적 소양을 기르는 것이 강의의 주된 목표다. 매주 인문학 분야의 외부 강연자가 강의를 진행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나도 강의를 학생들과 함께 들으면서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우고 있다. 물리학과의 익숙한 강의실 풍경을 떠올려본다. 수업의 대부분 시간 강의자는 화이트보드에 수많은 수식을 거의 쉴 틈도 없이 계속 적어나가고, 학생들은 귀로는 설명을 들으면서 손으로는 수식을 노트에 베껴 적느라 바쁘다. 물리학과 수업에서, 말하고 쓰는 쪽
2012년 한여름 피렌체에 머물 때 일이다. 서양 중세와 르네상스를 연구하다보니 피렌체는 들리지 않을 수 없는 곳이다. 유럽을 여행하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관광명소 주변 시내 호텔들은 터무니없이 비싸다. 게다가 시끄럽다. 밤에는 술 취한 관광객들이 몰려다니고 노상 방뇨까지 일삼는 탓에 지린내가 코를 찌르기도 한다. 여름에는 특히 그렇다. 이런저런 궁리 끝에 얻은 것이 버스를 타고 삼십 분 정도 가야 하는 시 외곽의 호텔이었다. 새로 지어서 에어컨 시원하고 방해하는 사람도 없는 곳, 주변에는 가볍게 배를 채울 음식점들이 있는 곳! 가격
우리의 몸은 해발 8,000미터 이상의 높이에서는 장시간 체류 시 살아남도록 설계되진 않았다. 그런 높이에서는 지표면 공기 중 산소량의 3분의 1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산소가 희박하다. 또한 기압이 지표면에 비해 턱없이 낮은 탓에 여름에도 대기권의 열을 쉽게 흩어져 버리기 때문에 상상 이상으로 춥고, 바람을 막아 줄 것이 없어 수시로 불어오는 바람 또한 큰 위험이 된다. 만약 이런 곳에서 고립이 된다면 이들 조건 중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생명의 위협을 크게 받을 수 있다. 일단 산소 부족은 심장과 신경 체계에 상당한 부담을 준다. 추
헌법은 매우 중요한 법이다. 물론 필자가 헌법을 공부하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공부하는 사람은 대체로 자신이 택한 주제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필자는 헌법이 ‘객관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법이라고 믿는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약 1,600개의 법률 혹은 약 5,000개의 법령이 있는데, 헌법은 이들의 성립과 효력을 뒷받침하는 원천이다. 일반법이 국가로부터 만들어져 국민을 규율한다면, 헌법은 그 반대로 국민으로부터 만들어져 국가를 규율한다. 일반법이 국가작용의 산물이라면, 그 국가작용은 바로 헌법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