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하고 싶다” “요새 한강물 온도가 어떻대?” “살기 싫다” 등의 말들이 어느 순간부턴가 우리 주변에 널리 퍼지게 되었다. 심지어 한강물 온도를 알려주는 애플리케이션까지 만들어졌을 정도이니 이러한 말들이 사회에 얼마나 만연해 있는지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사람들은 날씨가 조금만 더워지거나 수업이 지루한 경우와 같이 조금만 자신에게 불편한 일이 생겨도 이러한 말임을 어렵지 않게 내뱉고 있다. 특히 과제 철이나 시험 기간과 같이 학생들이 삶에 부담을 느끼는 기간에는 하루에도 몇 번씩 이러한 말을 종종 접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요즘 대부분의 20대는 페이스북을 한다. 당연히 해야 할 것이 아님에도 안 하는 사람을 오히려 신기해한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 친해지면 페이스북으로 친구를 맺는다. 페이스북이라는 네트워크가 너무나도 커져 버렸다. 어떻게 보면 하나의 사이트일 뿐인 것이 사람의 인간관계에, 기업의 마케팅에, 사람들의 정치적 움직임에 영향을 주고 있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은 페이스북을 할까 라고 생각해보자.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은 자신을 알리고, 드러내고 싶어 하는 인간의 특성 때문이 아닌가, 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SNS’는 오래전부터 계속되어
어떤 연인이 동물원 데이트를 즐기고 있다. 남성은 두 다리로 서 있지만, 여성은 뜻밖에도 유모차에 앉아있다. 이 특별한 연인은 이렇게 사랑하는 중이다. 그러나 조제와 츠네오의 사랑을 그저 장애인의 사랑 이야기로만 치부하고 영화를 보기엔, 왠지 모르게 가슴 한편이 먹먹해진다. 조제는 눈에 보이는 장애를 겪고 있는 것뿐, 우리도 누구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그리고 차마 남에게 말하지 못했던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기 때문은 아닐까. 그래서 우리는 조제의 삶을 바라보던 시선을 우리 각자의 이야기로 조금씩 옮기게 된다.이 영화를 전반적으로 이
학교에서 집에 돌아가는 길. 귓가에 이어폰을 꽂고 버스 창가에 앉아 무심코 밖을 쳐다본다. 몇 년째 같은 버스, 같은 시간에 지나는 길엔 추억이 묻어있다. 논술 시험을 보러온 날, 첫 OT를 가던 날, 첫 수업을 듣던 날, 군대 가기 전 마지막으로 학교에 가던 날. 그 순간들은 빠르게 지나갔지만,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순간이지만, 아직도 머릿속에 향초처럼 그윽한 추억으로 남아 내 과거를 장식하고 있다. 시간과 공간이 교차하는 곳에는 추억이 함께 존재한다. 그 순간에 노래가 있다면 더더욱. 새내기 시절의 일이지만 아직도 잊지 못하는
가볍지 않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자리는 흔치 않다. 속 깊은 이야기를 하는 자리가 오더라도 돌이켜 생각해보면 아쉬움이 남을 때도 많다. 그래서 이번 칼럼 작성은 나에게 소중한 기회다. 나는 진부한 주제일망정 나의 시선으로 삶을 성찰해보고 싶었다. 내가 혹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죽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을 하며 생각을 정리하고 싶었다. 그러면서도 내가 누군가에게 작은 위안이라도 줄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그저 나를 적어 내려갔다. 그러다가 문득 남들이 궁금해졌다. 남들의 표현방식을 참고한다면 내 생각을 표현하
봄이다. 누구에게는 마지막인 듯, 누구에게는 다시 태어난 듯한 봄. 남쪽에서부터 꽃은 피기 시작한다. 산수유, 매화, 개나리, 동백 그리고 벚꽃까지. 매화와 벚꽃을, 산수유와 개나리를 구분하지 못해도 좋다. 새로운 생명도, 새로운 의지도 그리고 삶의 모종의 순간을 맞이한 새내기의 도전도 봄과 새로이 핀 꽃 앞에서 공평하다. 누구나 공감한다. 순식간에 필 수는 없는 꽃과 우리네 젊음은 동의어란 것을. 도종환 시인의 유명한 시 구절을 외워본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시대, 피울 곳이 마땅찮은 열정을 악용한 소위
영화 『설국열차』에 나오는 ‘엔진’의 진실에 대한 장면을 기억하시는지? 열차의 ‘엔진’은 작품 내에서 마치 ‘영구운동기관’과 같은 것으로 여겨지며, 결함 없고 고장도 나지 않는 완벽한 기계장치로 등장한다. 그러나 이는 환상이었을 뿐, 영화의 막바지에 ‘엔진’ 속에서 어린아이들이 고장 난 부품의 역할을 대신 수행한다는 것이 폭로된다. ‘완벽한 시스템’을 움직이는 것은 결국 ‘가장 아래의 존재들’이었다는 역설적인 상황을 보여주는 듯한 장면이었다.『설국열차』의 해석 중 하나는 ‘열차’와 ‘엔진’이 금융자본주의를 상징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성균관대학교는 617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그 역사는 학교 홍보에 곧잘 쓰이는 617이라는 숫자나 다른 곳에선 볼 수 없는 유학대학 같은 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지만, 난 언제나 뭔가 부족하다고 느껴왔다. 성균관대학교에서 지낸 1년 동안 나는 617년 역사의 향취를 전혀 맡을 수 없었다.내가 새내기로 우리 학교에 입학했을 때, 나는 많은 기대를 하고 있었다. 입학식에 갔더니 우리 학교의 선배들은 이이, 이황 같은 조선의 슈퍼스타들이었고, 필수 과목인 ‘논어’는 평소 두리뭉실하게 알고 있던 유교에 대해서 제대로 배워볼 기회라 생각했다.
2015년 3월이 아닌 2014년 3월. 나도 이때 새내기였다. ‘킹고 킹고 에스카라 킹고’를 외치면서 어깨동무하고 좌우, 앞뒤로 움직이면서 덩실덩실 거렸다. 어색한 LC 친구들과 한마디씩 주고받으면서 친해지려고 하던 내가 보인다. 대학의 로망을 생각하면서 들뜬 상태였고 정말 정신이 없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새내기 배움터 관문 통과에서 춤추고 있었다. 생전 해본 적 없는 걸그룹 댄스를 연습하고 술도 엄청 마시면서 즐거워했다. 그러고 나서 동아리 부스에 여기저기 구경 다니며 여기 이름 쓰고 저기 이름 쓰고 하면서 고등학교와 전혀 다른
요즘 학원에서 근무하면서, 아이들에게 많은 질문을 받게 된다. 예를 들어 “남자아이가 카톡을 읽고 답을 하지 않는데 어떻게 해요?”와 같은 개인적인 질문에서 “선생님은 나중에 뭐 하고 싶어요?”와 같은 질문까지 다양하다. 그중에서 가장 많이, 그리고 가장 강렬한 질문은 바로 “저 문과 가고 싶은데 문과 가면 진짜 그렇게 힘들어요?”이다. 이런 질문을 하는 학생이 있으면 옆 친구들은 바로 “야 이과가 답이야, 문과 가서 뭐하냐?” 라는 답변을 곧잘 하고는 한다. 사실 경영대 학생으로서 그러한 이야기를 들으면 꽤 마음이 동한다. 이 아
1. 사랑, 잊을 수 없는, 다른 사람과 비교할 수 없는 그런 연애를 해봤나. 언제 누구와 얼마 동안 했는지 상관이 없다. 다만 그 사람에게 쏟은 마음이 커서 후에 만났던 사람에게 그와 같거나 그 이상의 감정을 줄 수 없을 것 같은 그런 연애를 묻는 것이다. 나는 그 마음을 ‘사랑’이라고 말한다. 사람에게 호감을 느끼고 좋아하게 되는 것까지는 쉽게 될 수 있다고 본다. 일명 금사빠(금방 사랑에 빠지는 사람들)들이 아마 그 좋아하는 감정을 사랑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아닐까 싶다. 그들을 비아냥거리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나에게 있어서
나의 전공은 사학이다. 인문학이 생소한 사람들에게 나의 전공이 사학과라고 소개하면 “그곳에서는 무엇을 배우냐고, 역사는 지루하지 않으냐고, 졸업해서 뭐하냐”고 되묻기도 한다.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지루하고 재미없는 과목이고, 청년 실업이 심각한 요즘 뛰어난 경쟁력이 없는 전공으로도 보인다. 하지만 나는 그런 질문들에 대해서 웃어넘기곤 한다. 나는 나의 전공이 자랑스럽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왜 사학과를 선택했고, 사학도로 어떻게 생각하며 살아가는지 얘기해보려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사학’이라는 전공을 살려 미래에 직업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