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지 8매. A4 용지로는 절반이 조금 넘는 분량. 신문에 사용하는 베를리너판에서는 한 손바닥으로 충분히 가릴 정도의 크기. 지금 읽고 계신 편집장의 글이 갖는 물성입니다. 이것을 시간으로 치환하면 어떨까요. 재빠르신 분들이라면 1~2분 만에 다 읽으실 수 있으시겠지요.그렇다면 기사는 어떨까요. 이번 학기 성대신문은 호외를 제외한 8개의 호를 발행했습니다. 열여섯 면일 때도 있고 열두 면일 때도 있지만, 확실히 한 권의 책보다 얇은 두께입니다. 8개의 호를 쌓아야 그만한 두께가 될까 말까 하지요. 신문이 갖는 물성입니다. 이것을
‘그땐 그랬지’라는 말은 하나의 문화가 된다. 이 말을 하는 이들은 과거와는 많이 달라진 자신의 모습에 씁쓸함을 느끼기도, 지난날 열정의 순간을 떠올리며 흐뭇한 미소를 짓기도 한다. 김영하 작가가 1997년 출간한 『전태일과 쇼걸』은 운동권이던 두 남녀의 현재를 담았다. 대학에서 만난 두 남녀는 강성한 운동권이었다. 서로 마음이 맞던 둘은 어느새 연인이 돼 함께 청춘을 보냈다. 연인을 ‘형’이라 부르는 모습은 그 시절의 전형처럼 느껴진다. 졸업과 동시에 자연스레 헤어진 둘은 7년이 지나 서울극장에서 마주친다. 영화
인생의 기간이 아닌, 열정이 있는 모든 순간입니다.
시작은 늘 들뜬 마음만큼 어렵다. 스물한 살 여름방학의 기억은 전부 교내 청소노동자의 이야기를 담은 첫 기사 준비에 있다. 학교 행정실의, 용역업체 사무실의, 노동자 휴게실의 문을 두드렸다. 양 캠퍼스 건물을 뛰어다니며 층별 휴게실의 위치를 기록했다. 자과캠 청소노동자 권 반장님의 하루를 동행하며 수세미를 들고 계단을 닦았다. 힘든 건 몸이 아니라 어찌할 줄 모르던 내 서툶이었다. 입이 도무지 떨어지지 않아 문 앞에서마다 망설였다. 친절하지 못한 답변 하나에 반나절이 서러웠다. 그리고 발간주 목요일 새벽, 몇 시간짜리 인터뷰 텍스트
5월 초는 축제의 물결이었다. 지난 3일에서 4일은 자과캠에서 성균제가 열렸고 7일과 8일은 인사캠에서 대동제가 열렸다. 성대신문 제1711호에서 보도면은 양 캠퍼스의 축제를 다뤘으며, 문화면에서도 대학축제의 현주소를 짚었다. 보도면의 ‘다시 분리된 대동제 콘셉트, 성균관 어떻게 담아냈나’에서는 지난해와 달라진 축제의 컨셉 전반을 다뤘다. 이번에 양 캠퍼스가 다른 컨셉으로 축제를 전개한 이유와 각 컨셉의 의미에 대한 학우들의 의문을 해소해 준 기사라고 생각한다. ‘성공적인 축제 뒤 숨겨진 땀방울’에서 숨겨진 실무단과 학교 측의 노력
지금은 즉문즉답의 시대이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바로 질문하고 답도 바로 얻을 수 있다. 잘 발달된 인터넷과 우수한 검색 엔진들, 그리고 최근에는 챗GPT라는 생성형 인공지능 덕분에 원하는 답을 쉽고 빠르게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지식의 양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듯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역시 빠르고 민첩하게 움직여야 한다. 지식이 폭발하는 시대를 살면서 지식은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공유하는 것이 되어 버렸으며, 대량의 정보가 실시간으로 제공되면서 주어진 정보에 대해 즉각적으로 반응해야 하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현재를 4
처음 만나던 날을 종종 떠올립니다. (3,-1). 공책을 펴고 좌표평면을 그려 당신의 위치를 표시했습니다. 그때 작게 그려 넣은 검은 점이 작도의 시작이었다면, 어쩌면 모든 건 늦여름에서부터 출발했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습니다.분주하고 소란스러운 공기 속에서, 당신은 책상 아래로 살짝 꼬은 다리를 늘어뜨리고는 통-통, 느린 속도로 발 리듬을 탔습니다. 목이 짧은 양말을 신은 탓에 리듬에 맞추어 복사뼈가 사라졌다가 나타났습니다. 당신의 모든 차림은 계획되어 있었고, 차림새에 있어 실수를 용납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실수를 만들지 않
2023년 성균관대학교 대동제(大同祭)는 자과캠 ‘성균제-유록화홍(柳綠花紅)’과 인사캠 ‘해방, 금지함을 금지하다’라는 각각의 다른 콘셉트로 진행되었고 ‘화려하게’ 막을 내렸다. ‘유록화홍(柳綠花紅)’은 소동파가 읊었던 바, 버들은 푸르고 꽃[복숭아꽃]은 붉다는 뜻이다. 조금도 인공을 가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상태, 즉 청춘의 순수함과 생명력을 상징한 슬로건이라고 생각된다. 인사캠의 ‘해방, 금지함을 금지하다’는 프랑스 68혁명의 구호인데 “억압에서 벗어나는 것이 핵심이었던 혁명처럼, 역사의 중심인 성균관에서 다시 한번 해방감을
2주에 걸친 축제가 막을 내렸다. 언제나처럼 올해도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로 교정이 인산인해를 이뤘고, 양 캠퍼스에서 각기 축제가 진행되는 동안 많은 학우가 수원과 서울을 오가며 행사에 뛰어들었다. 곳곳에서 녹색 옷이나 소품으로 무장한 이들을 찾는 일 역시 어렵지 않았다. 지난 6일, 입하(立夏)와 함께 초여름의 시작을 알렸던 녹음은 우리 학교의 색과 어우러져 장관을 이뤘다. 개강 후 다소간의 시간이 지나 한결 한적해졌던 캠퍼스에도 다시금 활기가 맴돌았으며, 공연을 보거나 부스에 참여하기 위한 긴 줄에도 학우들은 서로 장난치고 웃으며
선선한 초여름을 뜨거운 젊음으로 가득 채우는 대학 축제 시즌이 다가왔다. 화려한 축제 시즌의 포문을 여는 건 다름 아닌 우리 학교다. “요즘 축제하지 않니?” “나 학생 때도 싸이가 왔는데.” 흐뭇하게 과거를 추억하는 어른들의 초여름에도 축제의 기억이 배어있나 보다. 풀 내음이 풍겨오면 잔디밭에 슬슬 설치되기 시작하는 무대장치처럼 우리 삶은 변치 않는 것투성이다.변치 않는 것은 오랜 친구처럼 안락함을 준다. 이맘때가 되면 벚꽃이 피겠지, 여름이 오면 하루하루가 맑아 기분이 좋겠지. 당연히 오리라는 믿음과 함께 기대도 설렘도 찾아온다
춥고 두꺼운 벽을 뚫고 역경과 고난을 이겨내며 올라오다.
세차게 비가 오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쨍쨍한 날씨가 이어진다. 변덕을 부리는 봄날의 날씨처럼 하루를 살아가는 나의 태도도 이랬다저랬다 하는 요즘이다. 어느 날은 아무것도 하기 싫은 무기력함이 찾아오다가도, 때로는 새로운 무언가를 찾고 싶다는 갈증이 샘솟기도 한다.변덕스러운 날씨, 오락가락하는 내 기분과 다르게 시간은 진득하리만큼 정직하게 흘러간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반복되는 일상 가운데였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학원 강사 알바를 하러 지하철에 올랐다. 그때부터 꽤 긴 시간을 가야 했기에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