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신문사에 몇 안 되는 자과캠 기자다. 그리고 학술부 기자다. 자연스럽게 나는 과학 전문 기자가 됐다. 이와 함께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 바로 자과캠 모든 학과에 관련된 기사를 하나씩 쓰는 것이다. 그리고 도전한 태양전지. 2주 간 펜을 들고 태양전지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우리 학교 교수들에게 질문이 가득한 메일을 보냈고, 태양전지와 관련된 각종 신문과 과학 잡지를 읽기 시작했다. 예상과 달리 책 한 장을 넘길 때마다 고난의 연속이었다. 처음 들어본 용어와 복잡한 사진들, 그리고 영어로 쓰인 논문들... 하지만 어려움 속에서도
학교에 처음 입학했던 그날의 기억을 가끔 떠올리곤 한다. 600주년기념관의 웅장한 모습이나 성균관의 예스러움을 즐기며 학교 구석구석의 모든 것들이 마치 내 것인 양 의기양양해 하곤 했다. 어쩌면 이런 생각은 새내기 시절을 겪은 모든 이라면 한번쯤 가져봤을 법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지난 방학 간 진행된 정문정비공사는 이러한 생각들이 단순히 학우 개인의 상상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건이다. 종로구의 정문 앞 정비 사업 이후 이뤄진 행정 처리 과정에서 학우들에 대한 의견 수렴 과정은 학교 측에 의해 너무도 쉽게 묻혀 버
중고등학교 시절, 필수적으로 채워야 하는 봉사 시간이 있었다.장애인생활시설에 처음으로 간 건 그 봉사 시간을 채우기 위해서였다. 처음에는 나의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에게 힘이 될 수 있다는 점이 설레고 보람찼다. 그렇게 같은 시설에 계속 방문해 봉사활동을 했다. 한 번, 두 번, 방문을 거듭할수록 보람보다는 피로감이 커졌다. 적극적으로 아이들과 놀아주고, 하나라도 더 챙겨주려고 노력하던 나는 언젠가부터 적당히 시간이 빨리 지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봉사 시간을 채운 후에는 그곳에 가지 않게 됐다.성대신문의 사회부 기자로 일한 지도
내 주위엔 다양한 성향의 사람들이 있다. 똑같은 이야기를 똑같이 해도 누군가는 공감하고, 누군가는 화를 낸다. 하지만 그들의 반응이 다르다 해서 그중 어떤 생각이 더 옳은 것이며, 내 이야기에 대한 적절한 반응이라고 꼽을 수는 없다. 그중에 내 맘에 드는 반응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다 각자 자기가 살아온 방식대로 느끼고 반응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방식을 벗어난 반응은 어색하고 가식적인 반응으로 표현된다. 그림도 그렇다. 오르세 스케치를 쓰기 위해 전시장을 찾았을 때, 나는 작품을 ‘설명’하려고 했다. 인상주의, 후기 인상주의,
“저는 미국 워싱턴 대학원을 나왔고, FIFA 부회장을 맡았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사회복지재단 이사장으로 있지요”자기 피알의 시대라고 하지만 초면부터 자기 자랑을 해대는 사람은 정말 별로다. 내가 이미 그의 스펙을 알고 있는 경우는 더 그렇다. 기자 생활을 하면서 만난 취재원은 대부분 두 가지 스타일로 나뉘었다. 나를 자신을 홍보해 줄 수단으로 여기며 할 말만 하는 스타일, 혹은 자신의 관심 분야와 가치관을 소개하기 위해 노력하는 타입이다. 전자는 대부분 자신의 업적을 소개하기에 바쁘다. 마치 다른 사람의 도움은 전혀 받지 않은
기자는 가만히 있는 걸 좋아한다. 정면돌파보다 피해가기를 잘하고, 어떤 일에 대해 자기주장을 뚜렷이 펴는 편도 아니었다. 학보사 기자로 일하기로 결심했을 때도. ‘불의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자상을 꿈꾼 것은 아니었다. 그저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기자로 활동한 1년여 동안 학내에서 많은 불의를 목격했을 때에도 나서서 입을 열지 못했다. ‘이건 좀 잘못된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속으로 삼켜버리고 말았다. 이번 호 특집 설문조사에서 만난 ‘가만히 있는’ 대학생들은 기자 본인의 모습과 다르지
8년째 표류하던 평택 브레인시티 사업이 결국 무산된 모양새다. 기나긴 기다림이 무색하게 끝나는 건 한순간이었다. 이 작은 농촌 마을의 주민들은 아직 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자신의 토지가 산업 단지로 강제 수용되자 빚더미에 앉았다. 그럼에도 사업을 성사시키고야 말겠다는 일념으로 토지 보상금 수령까지 미루겠다며 버텼다. 이들이 입은 피해는 누가 보상할 것인가. 자본금 5억 원짜리 회사가 4조 억 원 규모의 사업을 맡는데 따르는 위험은 없었을까? 애초에 위험성 검토가 제대로 이뤄졌는지 의문이 생겼다. “위험성 검토는
학생자치. 신문사에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이는 아마 나와는 멀리 떨어진 이야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사실 아직도 학생자치를 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익숙해졌을 뿐이다. 보도부 기자로서 매주 월요일 중운에 참관하고, 매 학기 한 번 열리는 확운과 전학대회에 참석하면서, 내가 매일 지켜보고 이야기하는 것들이 학생자치의 일부라는 걸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그러나 때때로 조금 더 가까이에서 지켜보기 때문에 실망하는 상황을 마주칠 때도 있다. 그러나 지난 11일 열린 인사캠 전학대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날 중운에서는 새로 도입된 의
좋아하는 사람 앞에만 서면 입안에 맴돌던 무수한 이야기가 어디로 숨어 버리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패션 기획이 그랬다. ‘패션’은 필자가 신문사에 들어왔을 때부터 다루고 싶었던 주제였다. 수습 딱지를 갓 떼고 정식 기자로 참여한 첫 기획회의. ‘패스트패션과 슬로우패션’이라는 주제로 자신 있게 2p 기획을 가져갔다. 겁 없는 준정기자의 기획안은 이런저런 이유로 거부당했다. 거절은 날카롭지 않아 더 슬펐다. ‘나도 네가 좋은데 우리 그냥 친구로 지내자’. 당돌한 고백의 결과였다. 그는 재구체화를 하면 생각해보겠다는 고단수의 여지를
나는 구구절절한 사랑 노래가 가끔은 무서웠다.‘사랑해서 미치겠다’거나 ‘지금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사랑의 말들에 설레지 않았다. 내가 메마른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이 말들이 결코 사랑을 의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먼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던 스토킹은 우리 곁에 있었다. 실제로 얼마 전 고려대에서 헤어진 전 여자친구를 2개월간 따라다니며 교제를 요구한 스토커는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다. 피해자는 아무런 도움조차 받지 못한 채 싸늘한 주검이 됐다. 죽은 피해자는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지만 입을 열었다면 상황이 달랐을까. 우리 학교에서
“그건 기자가 아주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네, 지금”“작은 사건을 너무 오래 다루고 있는 것 같아”지난주 게시판 철거 사건을 취재하면서 유학·문과대 행정실과 학생지원팀에서 들은 말이다. 이번 게시판 철거의 주체인 행정실은 ‘철거 이외의 대안이 있지 않았느냐’라는 질문에 “이상한 생각”이라며 “게시판의 모든 권한은 행정실에 있다”고 답했다. 또 게시판에 관해 이야기를 듣고자 왔다는 말을 꺼내자마자 학지팀은 ‘작은’ 사건에 왜 매달리고 있느냐고 반문했다.이 두 마디 말을 통해 학교 본부와 행정실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행정편의주의적 사고를
후쿠시마 기획은 우연으로 찾아왔다. 지난 11월 말 가족 식사를 하던 중 우연히 후쿠시마 원전 사태와 방사능 및 오염수 유출 얘기가 오갔다. 당시 기자는 후쿠시마 사태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다. 기자는 모르는 건 참지 못한다. 내 지적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서라도, 내가 모르는 후쿠시마 원전 사태를 알아야 했다. 그 때부터 이와 관련한 책을 읽고 관련 신문 기사를 열심히 찾아보기 시작했다. 후쿠시마 사태는 공부하면 할수록 큰 교훈을 주는 주제라는 생각이 들면서 이를 기사화해야겠다는 막연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워낙 광범위한